결국 사람이다

제자들과 함께한 3년간, 예수님께서 단순히 말씀만 가르치셨을 리가 없다. 그분께서는 먹고 마시며 같이 삶을 사셨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필요한 살림 정도는 손수 만들어 쓰지 않으셨을까?

그분은 목수 아닌가? 그것도 가업을 이은 목수이신 예수님이 목수가 아닌 바리스타로 오늘 오셨다면 어땠을까? 어떤 모습으로 제자들과 커피를 나누셨을까? 오늘 그림은 그런 상상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예수님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마무리 단계로 갈수록 예수님의 ‘사람들’을 그리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 이렇게 주변 인물에 집중하고 있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메시지가 있는 걸까?(가끔은 그림이 그림을 그려나갈 때가 있다). 그리고는 묵상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남기고 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화려한 성전? 탄탄한 조직? 아니면 뛰어난 프로그램?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이 땅에 아무것도 남기고 가지 않으셨다. 오직 제자들만을 제외하고.

단골 카페 사장님이 몇 주간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인이 대신했다. 금방 돌아오리라 믿으며 카페를 찾은 나는 늘 마시던 커피를 주문했다. 사장님이 미리 만들어 놓은 원두와 늘 내리던 방식으로 내려진 그 커피.

그런데 첫 모금을 들이킨 순간, 뭔가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하다? 커피 맛이 다르네?’ 내가 착각한 건가 싶어 다음 날 또 그 커피를 주문했다. 여전히 동일한 원두와 동일한 방식으로 내려진 커피. 하지만 맛은? 역시나 달랐다.

며칠간 이런 일이 반복됐다. 커피 맛이 변한 건가? 내가 변한 건가? 내가 느끼던 그 맛과 향은 어디로 갔을까? 사장님이 자리를 비운 몇 주간, 나는 결국 내가 좋아하던 그 커피의 맛과 향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온 사장님. 모처럼 그가 내려준 커피를 다시 한 잔 받았다. 첫 한 모금을 삼킨 순간, 이럴 수가! 커피 맛이 돌아와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늘 즐기던 그 맛과 향으로. 뭐가 달랐던 것일까? 사장님이 내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분석에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그가 커피를 내려주는 모든 과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는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내가 마신 것은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니었다는 것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 이윽고 주고받는 근황과 잡담들(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그리고 가끔 교회 이야기), 자영업자를 걱정하는 나와 예술가를 걱정하는 그사이에 오고 가는 눈빛과 소통. 이어져 내려지는 커피 한 잔, 거기에 덧붙여지는 원두 설명. 설명을 들으며 넘기는 그 한 모금 속에는, 원두에 대한 이해가 더해져 맛과 향이 배가 된다.

주문에서 시작되어 다 마시기까지의 모든 과정, 이 모든 과정이 바로 ‘그의 커피’ 였다. 그래서였을까? 이 과정이 배제된, 아니 다시 말해 이 과정 자체인 사장님이 배제된 커피는 부족함을 느끼게 할 수밖에 없었다. 맛과 향이 그대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카페로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은 커피였지만, 머물도록 만드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교회 공동체도 실상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회자의 영성과 설교, 탁월한 조직 시스템과 프로그램. 좋은 교회 공동체는 이런 조건들을 균형 있게 갖추고 있다. 이런 조건들은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교인으로 남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사람 아닐까? 함께 신앙 생활하는 형제자매들, 내 사정을 알고 기도해주는 집사님들, 따뜻하게 바라보고 안아주시는 권사님과 장로님, 공동체 사람들과의 풍성한 교제와 관계, 이것이 결국 우리로 하여금 교회에 소속되게 하는 것 아닐까? 교회를 사람보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떠날 수 없는 것도 교회가 아니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니 세상만사 사람을 기반으로 돌아가지 않는 일이 없다. 본질적으로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이라는 정답에 성(聖)과 속(俗)이 구분이 따로 있으랴 ……

한참을 쓰다 보니 또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당장 달려가 주문해야겠다. 사장님과 수다도 떨고 농담도 하다 보면 맛과 향도 더해지고 오후의 피로도 풀어질 것이다. 물론 나는 단순한 커피 한 잔을 주문할 생각이 없다. ‘그의 커피’ 한 잔을 주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