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7일(화) 10일 차 : 가스틸델까도~비양프랑까 22km (누적 253km)
오늘은 어제의 교훈으로 겸손하게 가려고 한다. 목적지는 비양프랑까이다. 새벽에 걷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상쾌한 새벽공기가 낮의 뜨거운 공기보다 몇 백배 낫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출발하는데 같이 잤던 스페인 친구들은 더 일찍 출발했다.
작은 마을이라서 새벽에 가는 순례자들이 없다. 헤드 랜턴의 불빛을 의지해서 속도를 내보지만 배낭의 무게 때문에 쉽지 않다. 지난 3일 동안 매일 30km 내외를 걸었기에 배낭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배낭을 메니 무겁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음성이 생각난다. 내가 지는 무거운 짐보다 영적인 짐들이 더 많겠다 싶다. 내가 지는 것보다 주님께 맡기는 훈련도 필요하겠다. 하지만 내가 지고 가야 하는 짐도 있겠지. 그 짐을 지는 훈련도 필요하겠지.
2시간 정도 가니 동이 터오는데도 사람은 없다. 내가 어제 머물렀던 곳이 지나가는 동네이기에 더 없는 거 같다. 첫 번째 마을인 벨도라도에 도착했다. 벨도라도 성당 앞의 카페에 있는데 성당의 모습이 참 평안해 보이고 좋다. 커피와 빵을 먹으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잠깐 묵상한다.
마을을 나오려고 하는데 앞에 한 순례자가 길을 못 찾는 것 같아 같이 가자며 걷는다. 그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같이 걸었다. 숙소도 같이 묵었다. 캐나다에서 온 67세 할머니인 카르멘과 3시간 동안 걷는데 한 번도 안 쉬고 걷는다.
은퇴하고 남편은 바빠서 못 오고 혼자 왔는데, 까미노는 7년 전에 하고 두 번째란다. 이번에는 동생을 위해 왔단다. 동생이 5년 전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왔는데 기독교인이지만 신앙에 대한 회의가 들고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동생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생을 향한 기적도 바라면서 이번 까미노를 왔다고 한다.
그녀와 짧은 영어이지만 많은 대화를 하며 3시간을 걸었다. 내가 목사라고 하자 놀란다. 목회를 하다가 쉼이 필요해서 까미노에 왔다니까 쉬어야지 왜 왔냐고 한다. 참으로 쉬운 영어로 편안하게 말을 이끌어주었다.
가족 이야기, 캐나다 이야기, 신앙 이야기 등등. 대화를 하다 보니 11시 반에 비양프랑카에 도착했다. 이래서 까미노에 오면 나이와 국적을 떠나서 많은 친구들을 만난다고 하나 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다음 마을 12km를 더 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어제의 일이 생각나서 일찍 쉬기로 했다. 숙소를 정하는데 카르멘이 내가 묵는 곳이 좋다고 하니 따라온단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인데 싱글침대로 칸막이도 있고 너무 좋다. 서로 호텔 같다고 좋아한다. 지금까지 가장 일찍 도착한 날이다. 숙소도 좋고, 여유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이다.
저녁은 순례자 메뉴로 호텔 레스토랑이니까 좋을 거라 생각하고 갔다. 예상대로 좋았다. 오늘은 몸이 호강을 하는 날인가보다. 카르멘과 함께 호주에서 온 가족, 그리고 영국에서 온 모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기본적인 영어로 하니까 그냥 가벼운 대화 정도이다.
오늘은 걷고 쉬고 먹고, 때로는 이런 날도 있어야 하겠지. 내일은 가장 힘든 하루가 될 거 같다. 일찍 자자. 오늘도 부엔까미노~~~
2018년 8월 8일(수) 11일 차 : 비양프랑카~부르고스 41km (누적 294km)
오늘의 목적지는 까미노 중에 가장 큰 도시인 부르고스까지다. 무려 41km이다. 대도시에서 하루 정도 쉬려고 가장 긴 거리를 걸으려 한다. 새벽 5시에 출발하는데 길을 못 찾고 헤매다 다시 숙소 앞으로 가서 출발한다. 까미노니까 길을 잘못 가도 다시 되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인생의 길을 잘못 가면 끝이다. 되돌릴 수 없다. 그 길 되신 주님을 잘 따라가야 하겠지.
다음 마을까지 12km인데 헤드 랜턴을 의지하며 간다. 산길을 혼자 가니 정말 섬뜩하다. 앞만 보고 정말 열심히 걸었다. 드디어 오르테가에 도착했다. 성당이 참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고 수도원이 함께 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쉬다 다시 출발한다.
여기서부터 원래의 까미노 길과 도로와 함께 가는 두 갈림길이 나온다. 산의 돌길이 너무 지긋해서 도로 길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원래의 길로 가기 때문에 부르고스 도착까지 5시간을 혼자 걸었다. 이렇게 혼자 가니 외롭다. 내 인생이 혼자라고 하면 정말 힘들 거 같다. 주님이 동행하는 인생이라 행복하고, 가족과 함께하니 행복하다. 그래 난 행복한 사람이다.
도로를 따라가는데 때로는 아스팔트 길과 흙길과 도로의 옆길을 따라 거의 평평한 길을 가서 잘한 선택이라 생각하며 걷는다. 2시간 정도 가다가 마을의 정자에서 바게트에 하몽(스페인산 생햄), 그리고 치즈로 만든 샌드위치 도시락을 먹는다. 그리고 또 걷는다.
드디어 부르고스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2시간을 더 간다. 대도시라서 그런지 들어가는데만 엄청나다. 미리 예약해둔 호스텔로 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부르고스 탐방이다. 대성당이 유명해서 가봤는데 내가 지금까지 봤던 성당중에 가장 웅장하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나 싶다. 부르고스가 넓은 도시라 다 볼 수가 없어서 꼬마 기차로 시내 관광을 했다.
40분 정도 부르고스 볼만한 곳을 다니는데 중세 성당과 교회 중심으로 돈다. 대성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 많다. 장로 교회도 있다.
오늘도 덥다. 왜 스페인 순례자들이 새벽에 걷는지를 알겠다. 내일은 이곳에서 나의 몸을 하루 쉬게 해주어야겠다.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쉬어도 된다. 오늘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