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광을 받는 임상심리학자이자 토론토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조던 피터슨(Jorden B Peterson)은 그의 베스트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12 Rules for Life: An Antidote to Chaos)”에서 “누구에게나 그 인생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비극이 존재하며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감정은 찰나에 스쳐 지나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게 되면 일상에서 허무감과 절망, 우울감 등을 느낄 수 있다. 또 과정보다는 ‘행복’이라는 짧은 결과를 중시하게 돼 여전히 고통뿐인 현실에 좌절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인생은 곧 고통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내 삶의 진정한 의미
사춘기 시절에 대부분의 사람은 한 번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또는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런 인생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은 사람도 있겠지만 다수는 여전히 찾고 있거나 마음 깊은 한구석에 묻어 둔 채 외면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 폰의 대중화 등으로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순식간에 얻을 수 있고, 또한 온라인 게임과 동영상 등을 통해 즉각적인 재미를 얻거나 온라인 채팅으로 인간관계를 이어 가는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깊은 의미는 점점 상실하고, 깊은 만남과 관계는 더 소홀하게 되어 더욱 고독하고 우울하며,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욱더 많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더불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범유행(pandemic)으로 인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고통 소리를 들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불안과 고통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더욱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고독하고 공허하며 또는 고통스러운 오늘의 현실 속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1979년 늦여름의 어느 수요일 밤에 예수님께서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찾아오셨다. 당시 나는 서울 성동구에 있는 왕십리 중앙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해 여름 고등부 수련회 이후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 고등부 학생들 십여 명은 수요예배 참석 후 교회 다락방에 가서 통성으로 뜨겁게 더 기도하는 시간을 매주 가졌다.
나는 모태 신앙인으로서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요일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중, 나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진실로 깨달았다.
내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창으로 찌른 죄인이라는 사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절실하게 깨닫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엉엉 울고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눈물을 그치고 눈을 떠보니 친구들은 다 가버렸고 나만 홀로 남았다.
그런데 교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예수님께서 죄인 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죄 용서의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하게 흘러 넘쳤다.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의 찬양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샘물처럼 가득 솟아 나왔다.
예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나의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 그 후로 예수님을 따라가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리라고 결심하고 법대에 진학하였다.
그 후 약 10년 지난 어느 날 신림동 고시원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나에게 다시 한번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과 함께 넘치는 기쁨을 주시며 주의 종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셨다. 그래서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영원토록 나의 생명이시며, 내 삶의 진정한 의미이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누가복음 5장 8절 이하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자신의 참된 실존을 깨달았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삶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로서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고 말씀하셨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14)고 말씀하였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고 따르면 생명으로 가득하고 의미로 충만한 삶, 열매가 가득한 삶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분을 떠나면 생명도, 의미도,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에게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을 주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주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
첫째로, 사람을 낚는 삶이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삶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에 참여한다면 최고로 의미 있고 복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의미 있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베드로와 바울 등의 제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는 말씀과 같이 살아갈 때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얻고 부활의 생명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셋째,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는 예수님의 계명에 따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며(요한복음 14:21, 15:11), 많은 열매를 맺으며(요한복음 15:5),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며(요한복음 15:8), 또한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요한복음 15:15)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을 끝까지 잘 따라가면 썩을 면류관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얻는다(고린도전서 9:25, 디모데후서 4:8). 그러므로 이 마지막 어두움의 때에 나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나의 목자이시며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의 강하고 따듯한 손을 굳게 붙잡고 끝까지 잘 따라가기를 결심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