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멜 마끼아토’도 커피냐?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추운 겨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낯선 스타벅스 안에서 처음 맛 본 ‘카라멜 마키아또(Caramel macchiato)’를. 그날 처음으로 ‘커피 혼합음료’라는 것을 경험 했고, 나에게 그것은 신세계였다. 달콤하고 고소하며 씁쓸한 커피 향이 더해진 그 맛. 이후로 나는 커피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지금은 조금씩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도 즐기는 단계이다.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 논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카라멜 마끼아토는 커피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진영 사이에 공통된 견해는 ‘많이 팔리면 장땡이다!’이다.

결국 커피도 비즈니스의 한 분야 이기에 고수익(高收益)을 창출하는 품목에 대해선 아무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관점을 벗어나 ‘정통성’ 이라는 부분만을 가지고 커피를 다룬다면 어떨까? 카라멜 마끼아토는 커피일까? 아닐까? 여전히 갑론을박은 치열하다. 결론부터 나누자면, 내 의견은 ‘커피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이다.

교묘히 피해 간다고? 맞다. 나는 조금 비겁해 보이는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내 생각에 카라멜 마끼아토는 커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카라멜 마끼아또는, 그냥 ‘캬라멜 마끼아토’일 뿐이기 때문이다. 커피와 일반 음료 사이의 경계선 상에 있는, 나름의 독특한 독립음료.

지난주 칼럼에 마지널리티(Marginality)에 대해 나눴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아마도 기억 못 하시겠지만) 마지널리티는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심이 아닌 중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부정적 관점도 있지만, 또 다른 관점은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한 면과 또 다른 면을 연결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마지널리티의 또 다른 역할은 바로 ‘다리(Bridge)’ 역할인 것이다.

기독교 미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변두리 인생이라 여겨 왔는데, 오랫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경계선 상의 역할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교회와 예술(문화)을 연결하는 일이다.

예술은 오래 전 교회의 일부로 존재해왔었는데(아주 가까운 예로 지금 아버지 세대의 분들만 해도 교회에서 기타를 배우신 분들이 아주 많다) 언제부터 인가 세상의 영역으로 넘어가 교회와 분리되기 시작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예술과 문화가 많지 않다는 점에 늘 목마름을 느껴왔는데, 그 목마름이 기독교 미술을 시작하게 된 중요한 동기 중 하나였다. 그렇게 십여 년을 그리다 보니 이제는 ‘예술선교사(Art Missionary)’라는 호칭도 생겼다.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선교사로 산다는 것. 어느 한 분야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경계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두 분야를 연결한다는 것. 거창하진 않지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일은 오직 내가 마지널리티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우리는 본질적으로 모두 ‘그리스도’ 인이다. 그것도 그냥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이다. 그렇다면 다리가 되 어 주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만의 역할일까?

그렇지 않다. 성경은 삶을 잠시 왔다 가는 ‘여행’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나그네’로 표현하면서도 세상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 말한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과 세상의 경계선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마지널리티인 것이다(지금 내가 말하는 개념이 계시록에서 지적하는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계시록 3:15)’는 ‘양다리를 걸치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다시 캬라멜 마키아또로 돌아와서
되돌아보니 그랬다. 처음에는 그 달콤함과 씁쓸함에 끌려 커피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 음료를 즐기다 보니 커피에 대한 진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씩 아메리카노도 마셔보고 에스프레소도 마셔 보다가, 이제는 싱글오리진까지 즐기고 있다.

원두 하나 하나의 향과 개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다 나중에 로스팅까지 한다고 설치진 않을지… 게다가 이제는 커피를 소재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있으니 커피는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알 수 없다. 그냥 이 모든 여정의 시작점에 바로 그 논쟁의 ‘캬라멜 마끼아토’ 가 있었을 뿐이다. 커피인지 아닌지 도통 알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