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할 수 없는 것

오후에는 시럽을 잔뜩 넣은 아이스 플랫 화이트(Ice Flat White)를 마셔야 한다. 반드시. 왜 그래야 할까? 알 수가 없다. 내 오후의 컨디션과 시럽을 넣은 아이스 플랫 화이트 사이에 뭔가 잘 맞는 궁합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달콤한 설탕 때문에 그러는가 싶어 탄산 음료로 대체해 보았다. 진저비어, L&P, 콜라, 사이다 등등……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저 달기만 했다. 어떤 지인들은 에스프레소를 마실 줄 알아야 진짜 커피를 즐길 줄 아는 거라며 에스프레소를 추천해줬다. 그래서 한 동안은 그렇게 마셔보았다. 하지만 너무 썼다. 행여나 포만감 때문인가 싶어 쉐이크(Shake) 같은 유지방 음료로도 대체해 보았지만 역시나 부족했다. 오후의 나를 만족 시키지 못했다.

달기만 해도 안되고 쓰기만 해도 안됐다. 우유만으로도 부족했다. 나른한 오후, 지쳐가는 심신, 그 시간대에는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며 유지방도 들어있는, 그러면서도 시원한 ‘아이스 플랫 화이트’ 여야만 했다. 대체가 되지 않았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지 십 여 년 째, 오후에는 반드시 이걸 마신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대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구원의 문제이다. 기독교는 어떤 종교보다 사랑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종교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한일서 4:8,16). 교회를 다닌다면 모두 이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론(救援論 : 사전적 의미의 구원론 의미)’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구원’에서 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부분으로 인해 편협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류 역사의 많은 이단들은 유난히 이 부분에 물타기를 시도해 왔다. 구원의 통로가 오직 예수라는 핵심 진리에 뭔가를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며 왜곡을 시도했다. 똑같은 성경을 읽고 똑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인가?’ 라는 질문에서는 이상하게 답을 살짝 비껴 갔다.

99.9%가 유사 하더라도 마지막 1%에서 다른 결론을 내고 있는 것. 그렇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성경 해석이나 교리 해석 차원이 아닌 ‘구원론(救援論 : 사전적 의미)’에서 만큼은 말이다.

결국 그들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체하는 다른 무언가이다. 그 무언가의 대부분은 단체의 교주거나 나이 들어 죽은 이전 교주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것이 이단의 특징이며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결론’ 부분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한국이 시끄럽다(늘 시끄러웠지만). 바이러스와 어떤 이단 단체로 사회가 들썩거린다. 그리고 그 단체는 예전부터 늘 주류 교회를 어지럽게 하던 단체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장 민감한 ‘전염병’이라는 이슈와 맞물려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단의 활동이 창궐 할 때는 주류 교회가 바르게 서있지 못 할 때라고 한다. 이단은 교회의 돌연변이와 같아서 교회가 건강하지 못 할 때 파생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종교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나는 전문적으로 신학이나 비교 종교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문제가 되는 그 단체로 들어간 몇몇의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교회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거나 교회 내 갈등에 심하게 시달렸거나 아니면 말씀이 갈급한데 교회로부터 충족 받지 못한 경우들 이었다.

물론 그 단체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 같은 이유로 들어 갔을 리는 없다. 게다가 그 단체를 변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주류 교회를 비판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바른 신앙 생활을 위해 씨름하고 고민하는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고 좋은 교회들도 여전히 많다.

나는 그저 지금의 문제를 어떤 특정 단체를 비판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비판할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로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부족한 한 명의 평신도로서.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은 어떠했나? 나는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었나? 어떤 이단 단체는 그 단체의 멤버가 되기 위해 2년간 무조건 해외 선교를 나갔다 와야 하는 곳도 있다. 검은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성경을 가르쳐준다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내 평생에 2 년이란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 본 적이 있던가? (오해 마시길 이 단체 역시 변호하려는 마음이 추호도 없으니)

일련의 많은 사건들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 상황을 이렇게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어떨까? 분명 헛되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바이러스로 인해 고생하시는 분들의 쾌유를 빔도 물론이다.

한참을 쓰고 나니 다시 오후가 됐다. 어김없이 아이스 플랫 화이트를 마셔야 할 시간이다. 설탕과 카페인과 유지방이 고루 섞인 아이스 플랫 화이트. 이 시간만큼은 다른 걸로 대체 할 수 없다. 대체해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내를 대체하려고 하면 ‘불륜’이 되고 하나님을 대체하려고 하면 ‘우상’이 되며 예수님을 대체하려고 하면 ‘이단’이 된다. 대체 할 수 없는 것을 대체하려 하면 실패하는 법이다. 오후의 플랫 화이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