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거듭나 복음전하며 살아온 45년

목사 은퇴 후에 로토루아 한글학교 교장으로 7년 동안 봉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어 오랫동안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장학회를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도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의 성도로 노년에 할 수 있었던 보람된 일 중의 하나였다.

타우랑가 항구에 입항하는 선박에도 계속 다녔었는데 나이가 80이 다 되어 가던 2016년 말에는 항구에 출입할 때 필요한 출입증 카드를 재발급하지 않았다. 또한 로토루아에서 타우랑가까지 운전하기도 힘들어지고 배에 올라가는 사다리를 오르기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며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우리 부부의 간단한 아침 만들기가 전에는 10분이면 되던 게 요사이는 이리저리 두서없이 무언가를 찾느라 30분 이상이 걸리는 것 같다.

온몸이 부으며 집안에서만 걸어도 숨이 차서 힘들어하는 증세로 심장 정밀검사를 앞둔 아내의 표정이 오늘 아침엔 무척 밝아 보였다.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45년이 되는 동안 처음 사 본 새로운 냉장고와 세탁기의 약효가 지속하는가 보다.

요사이는 부쩍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내 몸의 상태는 3년 전 차가 크게 손상되는 교통사고를 겪은 뒤부터 기억력의 갑작스러운 감소와 함께 특히 언어를 기억하는 기능이 많이 손상된 것 같다. 나를 진찰한 전문의로부터 결국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운전면허도 연장할 수 없어 3개월 전에 말소시켰다. 쇼핑하는 것뿐 아니라 교회에 가는 것 모든 활동을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외항선원의 아내로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리며 살았던 한국에서의 결혼생활, 그리고 아주 초창기 뉴질랜드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지났던 시간, 신학 공부할 때의 뒷바라지, 그리고 직장생활의 수입을 절약하며 힘들여 장만했던 집을 팔아 선교 활동을 하면서 물질을 다 소진하면서도 큰 원망없이 따라주었던 아내에게 이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처음에는 영어단어가 기억이 안 나더니 이제는 한글도 기억이 안 나 표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주위의 사람들과 하나님 안에서의 삶을 나누며 또 젊은 사람들을 격려하며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생을 마치고 싶었는데 나약해지는 마음과 육체와 더불어 마음을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게 한동안 받아들일 수 없는 갈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 하는 자도 있는데 아직 어눌하지만, 말을 조금은 할 수 있으며 많은 말 대신 이웃과 주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은혜를 깨달았을 때 순종해야 된다는 마음과 함께 나의 여건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화 연락도 없었는데 문밖에서 갑자기 목사님하고 부르는 정겨운 얼굴의 지난 시절 교회 성도들을 만날 때, 그리고 일주일이면 한 번씩 오클랜드와 멜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며 전화하는 손자 손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어릴 적부터 우리 부부가 많이 사랑했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따르며 기쁨을 주었고 선박에 방선 할 때는 같이 가자고 떼를 쓰던 손자 손녀가 이제 성인이 되어 나를 위로하는 말을 해올 때 더욱 감사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80이 넘는 나이까지 아내와 같이 아침에 눈을 뜰 수 있고 주님 허락하신 하루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안락을 위해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건만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나의 안락을 위해 살지 않고 예수님의 종으로 아내와 같이 기쁨으로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기에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는 마음이다.

요사이는 눈을 감으면 선원선교 때와 목회 시절에 만났던 많은 동역자와 성도들의 얼굴들이 자주 떠오른다. 타우랑가에서 선원선교를 시작하던 해인 1990년 8월에는 웰링턴에서 직장생할을 하던 아들 내외가 타우랑가로 이사하여 가까이에서 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는 선원선교에 동참하게 되었고 그동안 말없이 뒤에서 많은 것을 보조해 주었던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요사이는 아들 티모시가 현지 교도소 사역 자원봉사 일원이 되어 주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의 일을 함께 감당했던 이름을 다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역자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너무나 강하면서 부족했던 저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했던 모든 분께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한국을 떠날 때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45년이 지난 오늘 내 손안에 쥔 세상의 부귀영화는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거듭나서 지금 아내와 같이 손잡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가 넘칠 뿐이다.

그리고 나의 평생 동역자 쌘에게 말한다. “여보, 이제 우리는 주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길만 남은 것 같소. 내 육체의 약함으로 더욱더 주님께 나아 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더 남은 것 같으니 우리 같이 손잡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갑시다.”

아내와 같이 아침 커피를 하고 정원으로 나와 깊이 들이마시는 뉴질랜드의 공기가 이렇게 달고 싱그러울 수가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