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전을 5년 이상 하다 보니 황당한 실수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나의 실수이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이들의 실수이기도 합니다. 실수를 마주할 때는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그 실수들 때문에 많이 웃게 됩니다.
이 카드가 아닌데?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잘못된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카드는 신용카드, 버스카드, 포인트카드 등 몇 가지가 있지요.
그러다 보니 간혹, 하지만 심심치 않게 이 카드들을 잘못 제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면서 단말기에 버스카드 대신 신용카드를 갖다 대는 경우지요. 그러면 많은 이들이 당황해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말씀 드리지요.
“괜찮아요. 아주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나도 아주 예전에 서울에서 매우 혼잡한 퇴근길에 지하철 개찰구에서 지하철 표 대신 전화카드를 들이밀며 당황했던 기억이 있긴 합니다.
버스를 잘못 탔어요
대개 종점까지 가는 승객들이 많지 않은데 간혹 종점까지 묵묵히 앉아서 가는 승객들이 있다면 그 중 10분의 1은 버스를 잘못 탄 경우입니다. 그런 분들은 한참을 조용히 가다가 슬쩍 다가와 묻습니다.
“이거 공항 가는 버스 아닌가요?”
분실물
사실은 버스카드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 실수는 바로 분실물입니다. 버스 운행이 끝나고 나면 온갖 분실물들이 다 등장합니다.
흔한 옷가지부터, 지갑, 버스카드, 휴대전화, 가방, 신발(이걸 벗어놓고 걸어갔을까요?), 이어폰, 안경, 모자, 우산, 쇼핑한 물건들, 심지어 케이스에 들어 있는 악기까지… 하지만 많은 분실물들은 주인들이 찾으러 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 회사가 그 처리로 곤란해할 때가 많죠.
라만챠의 기사가 나가신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죠. 제법 긴 우산을 들고 정류장에 서 있던 아주머니 승객님. 버스에 오른 후 요금을 내기 위해 카드를 찾느라 나를 못 보았나 봅니다. 그 긴 우산으로 기사에게 창 찌르기를 시전(?)했습니다. 마치 당나귀에 오른 돈키호테처럼 말이죠. 물론 모르고 한 일이었기에 웃어 넘어갔습니다만 그 이후로 긴 우산을 든 분들이 있으면 특별히 더 조심하고 있습니다, 안 찔리려고요.
철퍼덕
어느 날 한 중년의 남자 승객이 버스에 오르려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분의 시력이 안 좋았는지, 버스의 높이를 잘 못 가늠하였는지 버스 바닥의 턱에 발이 걸리면서 내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말 그대로 대자로 바닥에 뻗은 거죠.
이게 사실 웃으면 안 되는 일인데 내가 좋아하는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 한 장면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곧 표정을 가다듬고 안전을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는데 많이 창피해 하더군요.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앗, 나의 실수
나는 초보 시절 중대한 실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A 지역 종점에서 B 지역으로 운행하는 버스였는데, 내가 그 버스의 첫 기사였던지라 A 지역으로 바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A 종점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갑자기 운행지시서를 확인하고 싶어졌고 확인을 한 나는 곧 사색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A 지역이 아니라 B 지역 종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날 그 바쁜 아침 시간에 노선의 절반 정도 운행이 사라진 버스가 하나 있었다지요. 후유~ 지금도 그 날의 실수 때문에 수시로 운행지시서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노선을 이탈하는 실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5년 정도 되니까 몸이 길을 기억하더라구요. 그래도 가끔씩 운전하다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넌 지금 몇 번 버스를 운전하고 있니?”
나를 믿으셔야 합니다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면서 승객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길을 묻는 말입니다. 이 버스는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자기가 내려야 하는지, 몇 시쯤 도착하는지 등등. 그런데 가끔씩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사 대신 대답해 주는 승객.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길을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마구 대답해 주면 오히려 혼란이 생기겠죠?
그런데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과시하듯 정보를 대 방출하는 겁니다. 그 정보가 정확하면 다행이지만 어떤 때는 그 정보가 완벽하게 틀릴 때도 있거든요.
왜 버스 기사를 믿지 못하는 건가요? 게다가 내릴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서 수시로 내릴 곳을 확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버스 기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 실수하는 겁니다. 전적으로 기사인 나를 믿으셔야 합니다.
어디 가시나요?
내가 운행하는 버스 중에 Purple Line 버스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공항 가는 버스와 쉐필드행 버스. 그런데 가끔 이 두 가지를 혼동해 잘못 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두 가지 버전을 혼동할 것 같아 보이는 분들에게는 행선지를 묻곤 합니다. 대개 종점에 거의 다 와 갈 때 즈음에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묻는데요, 종점 즈음에 갈라지는 분기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딱 봐도 외지에서 유학 온 것 같은 남학생이 쭈뼛거리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혹시나 싶어 그 친구에게 질문을 했죠.
“어디 가시죠?”
공항을 가느냐, 쉐필드를 가느냐, 행선지가 어디냐를 물었던 겁니다. 살짝 당황한 듯한 학생은 이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우리 집에…”
뜻밖의 대답에 나도 잠시 당황했습니다.
살면서 실수 한번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실수조차도 선용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인간이 실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지점에서 최선의 길로 다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지요. 얼마나 아름다운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그를 따르는 이들의 실수나 과거는 절대 다른 이에게 드러내는 법이 없으시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거든요. 실수 좀 하면 어떻습니까?
의도했던 실수가 아니었다면 마냥 창피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크게 웃으며 넘어가 보는 건 어떨까요? 혹 누가 알까요, 그 작은 실수가 큰 기적을 만들어 낼는지… 주님만이 아시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