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 주 찬송/11월 넷째 주 찬송

11월 셋째 주 찬송/535장(통일 325장)주 예수 대문 밖에

우리는 아름다운 광경이나 예술작품을 보다가 감명을 받아 그 인상을 글로 혹은 노래로 표현해 보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 예수 대문 밖에’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요, 가꾸지 않은 정원의 숲이 을씨년스럽고, 언제 열어봤는가 싶은 먼지 쌓인 문, 그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애타게 두드리시는 예수님이 서 있는 것입니다.

홀만 헌트(Holman Hunt)의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이란 유명한 성화가 그 것인데요, 그 그림을 빼 담은 찬송이 바로 이 찬송입니다.

영국의 ‘빈민의 목사’라고 칭송을 받는 하우(William Walsham How, 1823-1897)감독이 잉겔로우(Jem Ingelow)가 지은 장시 ‘형제들과 한 설교’를 읽고 이 그림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오, 부하고 강한 자들아! 행복한 젊은이들아! 듣고 있나? 문을 두드리시는 분의 손이 지치셨는데도 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아라. 그 상한 마음이 영영 떠나기 전에 어서 문을 열어라.”

바로 이 시는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라는 요한계시록 3:20을 의역한 것이고, 이 그림 역시 그 말씀이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감동한 하우 목사는 몇 번이고 이 구절을 되 읊고 그림을 보고 하다가 단숨에 이 찬송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 찬송시는 1867년 하우 목사와 모렐(Thomas Morrel)목사가 공동으로 편집한 ‘시와 찬미’에 수록 발표되었습니다.

하우 감독은 영국태생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1845년 영국교회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국내외 여러 교회에서 시무했고 후에 동 런던(East London)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특히 동 런던은 극빈자들이 많아 평생을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그들을 위해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50편 이상의 찬송시를 썼는데 우리 찬송가에 ‘참 사람 되신 말씀’(201장, 통240장), ‘구원 받은 천국의 성도들’(244장), ‘주 예수 대문 밖에’(535장, 통325장), ‘나 가진 모든 것’(통69장) 등 네 편이 실려 있습니다.

시와 그림 두 작품의 영감으로 찬송시가 나왔듯이 곡조 역시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독일태생의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이고 지휘자인 크네헤트(Justin Heinrich Knecht, 1752-1817)와 그의 동료인 크리스트만(Johann Friedrich Christmann)이 1793년에 처음 여덟 마디를 작곡했고, 1799년 허즈밴드(Edward Husband, 1843-1908)가 나머지 곡조를 추가하여 발표한 것입니다. 곡명인 ST. HILDA는 17C 왕족이었던 여류 신앙인의 이름으로 교계와 정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분입니다.

나는 이 찬송에서 마지막 대목이 언제나 감격스럽습니다.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즉시 기뻐 문을 엽니다. 간혹 커튼을 닫고 늦잠을 자다가 일어나 창문을 열면 찬란한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지요? 빛이 있으면 어두움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11월 넷째 주 찬송/101장(통일 106장) 이새의 뿌리에서

‘작사자’란에 ‘옛 라틴-독일 마리아의 노래’(Altes lateinisch-deutsches Marienlied)라고 표기되어 있듯이 이 노래는 독일에서 아주 오래되고 유명한 성탄찬송입니다.

유명한 학자이며 음악 편집자인 베이커(Theodore Baker, 1851-1934)가 영어로 번역하여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사야서 11장 1절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라 했고, 10절에서도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라고 쓰여 있는데, ‘이새’는 다윗왕의 아버지를 말하죠(마태복음 1:6).

예수님이 다윗의 가계(家系)에서 태어 나셨기 때문에 ‘이새의 뿌리’라 함은 예수님을 칭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다윗의 왕통(王統)을 잇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1:17).

‘새 싹’이 돋아난다는 뜻은 메시아가 나실 것을 의미하지요. ‘새 싹’은 성경엔 ‘한 싹’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연약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연약한 것 같으면서도 그 ‘싹’은 튼튼하고 생명력이 있는 ‘싹’이죠. 그래서 드디어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운 것입니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22장)란 찬송에서 노래하듯이 성경에선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이사야 35;1)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백합화’는 ‘장미’라고도 번역한다는군요. 그것도 “이 추운 겨울 밤”에 말입니다.

장미꽃의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빨간 장미… 핏 색깔이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에서 빨간 피를 다 쏟지 않으셨습니까? 차이코프스키(P.I.Tchaikovsky)가 작곡한 ‘성사곡’(聖思曲, Legende)이란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예수님 어렸을 때에 뜰 앞에 꽃 밭 만들고 물주며 정성 다하여 장미꽃 가꾸셨네. 장미꽃 만발할 때 동무들을 불러 보이니 꽃송이 모두 따가고 빈 가시만 남겨 두었네. 꽃도 없이 무엇으로 화관을 만들렵니까? 다시 보아라. 거기에 가지가 남아있음을. 만백성 죄를 위하여 가시관 쓰신 이마에 그 붉은 장미 꽃 같은 보혈의 피 흘리셨네”

주님께서 피 흘려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늘로부터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죠. 예수님의 나심은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습니다.

복음서에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 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요한복음1;45)하지 않았습니까?

곡명 ES IST EIN ROS’ ENTSPRUNGEN는 ‘장미 한 송이 피었다’란 뜻으로 독일에서 불리던 옛 노래입니다. 1599년 꼬롱(Cologne)에서 출판된 ‘독일 가톨릭 성가집’(Alte Catholische Geistliche Kirchengesäng)에 처음 발표 되었습니다.

특히 이 곡의 화성은 독일의 유명한 루터교 교회음악가인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1571-1621)가 붙인 것인데 1609년 그의 ‘성가집’(Musae Sionae)에 수록한 것입니다. 단순한 구조를 가진 이 찬송은 경건하고 엄숙하여 대림절 분위기를 자아내는 매우 아름답고 귀한 찬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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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엽
연세대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1960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광범위하게 교회음악 활동을 하면서 김명엽의 찬송교실1-5을 예솔에서 출판했다. 이번 25회 연재를 통해 교회력에 맞추어 미리 2주씩 찬송가 두 곡씩을 편성하였으니 찬송가를 묵상하거나 예배에서 알고 부르면 더 은혜로운 찬송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