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최초로 한인교회 건축하고 입당해

남섬 티마루로 파송 예배를 드린 다음 날인 2002년 5월 20일, 아침 8시 30분 로토루아에서 출발하였다. 아내와 둘이서 티마루로 출발하던 그 날 아침도 12년 전 웰링턴에서 선교지인 타우랑가를 향해 올 때와 같이 햇살이 고운 날이었다.

아내와 둘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같이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장소와 정든 교우를 뒤로하고 아무도 아는 이 없는 티마루로 내려가는 길에 아내의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누가 멀리 떠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로토루아를 떠나야 될 이유는 없었지만 내가 로토루아에 머물러 있으면 후임 목사인 나명균 목사가 성도들과 알아가며 적응하는데 성도들이 혼선이 있을 것을 우려해서 아내에게 떠나자고 우겼기에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티마루에서 1년 5개월 동안 선원 선교와 교민과 교제
티마루를 선택했던 것은 항구와 선원들이 있는 곳이어서였다. 외항선도 입항하고 한국 원양어선 기지가 있어 어선 몇 척이 정기적으로 입항하고 있었다. 또한 티마루를 선택한 것은 그동안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남섬의 조그만 항구도시에 살면서 만나는 선원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다는 소망에서였다.

로토루아에서 1,000킬로가 조금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다음 날에 티마루에 도착하여 지난번에 와서 구해 놓았던 임대한 집에 짐을 풀었다.

정기적으로 입항하는 한국 국적 어선 선원과 여러 나라 국적의 상선을 방선하여 설교테이프, 종교 영화 비디오 테이프, 그리고 전도지를 전해주고 몇몇 교민과 유학생들을 만나 교제하며 지냈다. 아내는 선원과 유학생을 초대해 한국 음식을 나누면서 티마루 생활에 안정을 찾아갔다.

로토루아 갈릴리교회에서 연락이 와서 12월 말에 담임 목사 이임과 취임 예배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성탄일 며칠 전인 2002년 12월 22일에 나명균 목사에게 담임목사로 이임해주는 예배를 드리고 로토루아 갈릴리교회에서 목회자로서의 사역을 마무리하였다.

다시 티마루로 내려와서 2003년 10월 로토루아로 다시 올라가는 1년 5개월 동안 125척의 외항선을, 그리고 한국 국적 원양 어선에 39회를 방선하여 선원들과 신앙 상담을 하며 선교 책자와 말씀을 전하였다.

로토루아 한인교회 입당 예배에 축도할 기회 주셔
로토루아로 다시 이사 온 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얼굴을 방문하여 만나고 타우랑가 항에 입항하는 선박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방선하여 선원을 만나며 지냈다.

로토루아에서 출석할 교회를 정하는 데 있어서 타우랑가 세인트 앤드류교회의 레이 코스타 목사는 본인이 시무하던 교회를 퇴직했으면 가능하면 다른 교회에 출석하는 게 좋다는 말이 기억나서 오랫 동안 망설이며 기도한 후에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은 갈릴리 한인교회에 적을 두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한국교회에서 종종 있는 교회 세습을 반대하였다. 그리고 교회에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만든 직책인 원로 목사라는 제도도 이해를 못했었는데 나에게는 전에 시무하던 목사의 위치에서 내가 다시 갈릴리 교회에 출석할 경우 새로 부임한 목사 사이에서 성도들이 인간적인 친분관계로 교회의 단합에 문제가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2004년 6월 교회 부지에 나명균 목사와 기념 식수

2004년 6월에는 교회 부지로 사놓은 땅에 나명균 목사와 같이 팜츠리로 기념 식수를 하고 그 후 2005년 5월 29일에 기공 예배 중 축사를 할 때“갈릴리 미션을 모태로 시작된 로토루아 갈릴리 교회가 갈릴리 호수 같은 로토루아 호수를 중심으로 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 곳곳으로 전파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의 예배당이 잘 세워지기를 기원한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뉴질랜드에서 최초의 한인교회 건축을 시작한 나명균 목사와 많은 성도들은 기도와 땀의 결실로 완성된 예배당 건물에서 2006년 1월 29일에 많은 축하객과 익투스, 샬롬 찬양단의 찬양과 함께 교회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은퇴한 나에게 예배 후 축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2001년부터 여러 집사와 성도들이 기도하며 꿈꾸던 갈릴리 한인교회 소유의 예배당 건물을 이렇게 빠른 시간에 허락해주시고 후임 목사와 성도들이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는 장소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성도들 간에 교제할 수 있는 장소로,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전하는 귀하게 쓰일 예배당 입당 예배의 시간에 부족한 나 자신이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로토루아에서 은퇴 후에도 한글학교와 장학회로 봉사
로토루아에 한글학교가 활성화되고 있으나 바쁜 교민들의 생활 때문에 한글학교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교장의 자리를 채워줄 사람이 없었다. 한국인으로 한국말을 해야 한다는 것과 한글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건강이 있고 시간이 있기에 자원하여 2006년 4월엔 한글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NZ 한국학교협의회에 로토루아한글학교 교장으로 참석

처음엔 1년만 봉사할 생각이었으나 2012년 12월까지 6년 동안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고 2013년부터는 다른 사람이 봉사하였다. 한글학교에서 교장으로 봉사한 것에 대하여 감사패까지 받았는데 2013년부터 일할 그 사람이 갑자기 오클랜드로 이사를 하게 되어 1년 더 연장을 하여 7년을 채우고 2014년부터 손미숙 교장에게 인계하여 주었다.

2014년부터 “섬기며 나누며 바르게 살자”라는 표어 아래 사랑실천 장학회를 만들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가는 로토루아 한인 학생들에게 소액의 장학 격려금을 2005년에 3명, 2006년에 6명 2007년에 4명에게 지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