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위한 긴 전쟁을 끝으로 코소보가 나라로 세워진 지 3년 밖에 되지 않았던 해, 21살 나에게는 참 인상 깊었던 선교지였다.
길거리에는 잊어버린 가족을 찾는 전단지들이 벽에 붙여져 있었고, 내 또래 아이들의 전쟁과 피난의 경험들은 마치 6.25를 경험한 우리 할아버지 세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같이 선교 간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코소보의 한 동네를 방문할 때였다. 망가진 건물, 짓다 만 집들, 먼지가 날리는 흙으로 덮인 비포장 도로, 그리고 그 길가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아저씨들. 보는 내내 마음이 참 아파왔다.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는 조금 더 그 동네를 돌면서 그 땅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걷기 시작하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아저씨였다.
평소 전도할 때 아픈 자가 있으면 가서 기도해주는 우리였지만 왠지 그 순간 아무도 기도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아저씨를 지나가며 다시 마을을 돌다가 우리는 또 그 휠체어 아저씨와 마주쳤다. 그리고 그때, 가서 기도해주라는 마음의 감동이 있었지만 차마 용기 내서 가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께 핑계를 대었다.
“하나님, 아저씨의 다리가 낳도록 기도하다가 치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오히려 그 아저씨가 상처 받으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하나님께 질문하며 지나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땅 밟기를 하면서 중보 기도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휠체어에 앉아 계신 그 아저씨가 우리가 탈 기차역 근처에 있는 것이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싸인 임을 무시할 수 없었고 함께 있었던 친구들 또한 각자 확신을 받은 듯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위해 기도해주자고 말했다.
통역해주는 현지 선교사님을 통해 우리에 대해 간단히 소개 하며 아저씨에게 혹시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았다.
“두 다리가 마비되었다고 해요” 선교사님께서 통역해주셨다.
“아저씨, 저희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인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저씨의 다리를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끄덕거리는 아저씨. 그리고 우리 다섯 명은 아저씨의 다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근데 아무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이 실망하려고 할쯤에, 아저씨의 두 눈에 눈물이 마구 쏟아지며 우리를 향해 알바니아 언어로 말씀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코소보 선교사님께서 기쁜 목소리로 통역해 주시기를 “여기 계신 아저씨께서 자기가 태어나서 이런 사랑을 경험하신 것이 처음이래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을 자기도 믿고 따르고 싶다고 하세요!”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치유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선교사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한 순간에 가슴 깊이 체험하신 것 같아요!”
이날 우리가 만난 아저씨는 육체적인 치유의 기적보다 더 강력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예수님을 경험한 아저씨의 순수한 마음이 나에게 크게 도전이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 만으로 만족하는 아저씨. 다리가 아직 마비가 되어있어도 예수님의 사랑 만으로도 만족하고 그분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아저씨.
나는 다시 한번 아저씨의 반응을 통해 전도는 참 단순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사랑! 그것이 이 세상에 잃어 버린 영혼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