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딱지 대장님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보렴. 뭐 먹고 싶어?
초콜릿? 아이스크림? 햄버거?”

한국에서 온 지 며칠 안 된 유치원생인 녀석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묻는 남편을 보며

“한국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어린애가 이 땅에서 굳이 먹고 싶은 게 뭐 있을라구요?”

핀잔 아닌 핀잔을 주며 그 녀석을 흘깃 쳐다봅니다.

“음……”

한참 뜸을 들이던 녀석이 남편을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합니다.

“네, 목사님! 그럼 종이 사주세요.”
“응? 종이? 무슨 종이?
“그냥 종이요.”

유치원 다니는 녀석이 로봇도 아니요,
장난감 자동차도 아니요,
맛난 햄버거도 아닌‘종이’를 사달라고 하다니.

열심히 공부하려고 종이를 사달라고 하는 줄 알고
더 묻지도 않고 A4용지 500장 묶음 두 개를 사서
녀석 하나
누나 하나
이렇게 나눠 줬습니다.

종이 묶음을 받아 든 녀석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집니다.

“그래, 목사님이 사 준 종이로 공부 열심히 하렴.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한글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림도 많이 그리고……”

그러자 이 녀석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
“저, 이걸루 딱지 접을 건데요.”

“엉? 딱지?”

차 안은 금세 어른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종이만 보면 무조건 딱지를 접었습니다.
쓰는 종이든, 안 쓰는 종이든,
빳빳한 종이든, 흐늘거리는 종이든……

무조건 종이만 보면 큰 딱지, 작은 딱지 접어서
양쪽 주머니에 빵빵하게 채워 가지고는
딱지 칠 친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자아이들이 동네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남자아이들과 함께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어둑어둑해져 딱지가 안 보일 때까지 딱지치기를 합니다. 때로는 딱지 본전(?)도 못 찾고 잃을 때도 있지만,
거의 본전을 훨씬 웃도는 딱지를
늘 한 아름 안고 집에 오곤 했지요.

늘 본전 넘치는 딱지를 안고 집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무한 공급으로 제공해 주신 아버지의 딱지 성원과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튼튼한 대장 딱지 덕분이었습니다.

“어이, 막내딸! 이 대장 딱지로 다른 딱지 배를
힘껏 내려치라우. 고롬 어떤 딱지든간에
훌쩍 잘 넘어 가지 안캈써? 날래 연습 해보라우.”

딱지코치 아버지 덕분에 나의 양쪽 주머니는
늘 빵빵하게 딱지로 가득 넘쳤고
집안 구석구석 딱지들로 충만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빳빳하게 만든 나의 대장 딱지는
어떤 딱지를 만나도 겁내지 않고 끄떡없었습니다.
나는 그 대장 딱지를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어려서부터 대장 딱지로 잘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오늘날의 나는 어떤 문제의 딱지(?)도 겁내지 않고
훌쩍 잘 넘길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그 대장 딱지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더 겁낼 게 없습니다.
나는 늘 그 대장님을 잘 모시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