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m 맘! 이라고 부르지 말라!

Mum과 Lucy, 시어머니!
갓 시집와서 처음으로 시댁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뭐라고 시어머니를 부르나? 어떤 호칭이 적당할까? 한국 같으면 어머님! 어머니! 라고 불러야 될 텐데…. mother! 마더! 라고 부르나?’ 속으로 고민이 되었다.

그때 신랑 로이가 “mum, mum 맘!” 하면서 자기 어머니를 부른다. 옳지 요 때다. ‘나도 그렇게 부르면 되겠지!’ 모깃소리만 하게 “mum, 맘!”처음으로 불러본 시어머니~ (평생에 이런 호칭을 써본 적이 없기에 쑥스러워도 용기를 내본 것이다.)

그런데, 되돌아온 시어머니의 답에 기절초풍할 뻔했다. 그녀 왈 “나는 너의 mum이 아니다. 내 자녀는 셋 뿐이다. 그러니 맘이라고 부르지 말라!” 너무나 놀라웠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라는 말조차도 내 입은 얼어붙었는지 그냥 뻘쭘히 서 있었다. 신랑도 다소 불편했는지 그냥 옆에 있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향해 “루시(Lucy)”라고 불러라. 내 이름이,“루시이니까.” 영국 요크셔 출신인 그녀의 엑센트는 아주 강한 편이다.

“What? 뭐라고요?” 80세가 훌쩍 넘은 호호 할머니를 어떻게 감히 이름을 부르단 말인가? 그녀보다 서른다섯 살이나 아래인 우리 엄마도 내가“최영순” 하고 부를 수 없는데….그때 나의 심정이란 창피함, 쑥스러움, 모멸감에 뒤범벅되었다. ‘동양인이라고 나를 무시하는구나, 며느리라고 인정을 안 하는 것인지? 도대체 뭐 이런 분이 있나? 내가 시집을 잘못 왔나?’ 섭섭하다 못해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아하! 말로만 듣던 이런 것이 시집살이인가? 서양에서도 시어머니란 존재는 처음부터 며느리 군기를 잡으려고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mum도, Lucy라고도 일절 부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알게 된 풍습의 차이
그 뒤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나름 조금씩 뉴질랜드 문화, 영국인들의 문화를 알아갔다. 동, 서양의 차이? 내게 어드바이스나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살던 로어하트 동네에 한국인 여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10년간…. 그냥 하나씩 터득하고 깨닫기까지에는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다. 그러니까 울고불고, 속을 끓인 후에야 겨우 조금씩 이해 아닌 이해를 하면서 이 땅에 살 수 있기에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젊은 청춘남녀가 좋아하고 사랑하여 결혼하려 할 때, 대부분 양가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서 이룰 수 없는 사랑, 할 수 없는 결혼에 관련한 숨은 슬픈 사연들이 지금까지도 한국에는 많이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양가의 결혼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청춘남녀! 개인 대 개인 두 사람의 결혼 개념이 강하다. 가족의 개념 definition of family이란 신랑, 신부, 그들의 자녀. 즉, 핵가족을 말하는 편이다. 지금도 한국의 가족 개념은 서양보다는 훨씬 넓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시댁, 친정, 삼촌, 고모, 이모 등등…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80이 넘은 호호 할머니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동양 아가씨를, 당신 아들이 부인이라고 데려온 자체도 너무나 생소했을 것이다. 덩치도 아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사람 인형” 같은 여성이 와서 갑자기 “mum” 이라고 부르니 “나는 너의 mum이 아니다.” 시어머니, 며느리 이러한 개념 자체가 없는, 그냥 존재 그대로의 “Lucy(루시)”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나도 그녀가 원했던 대로 “루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하지만 시어머니 아니, 루시는 35년 전에 하늘나라에 가고 없다.

또 그 무렵 많은 한국 선원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들 역시 새신랑(나의 남편)을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묻는다. 본인은 그냥 “로이(Roy)”라고 부르라고 한다. 남편이 서른 살이나 연상인데- 그들이 “로이”라고 부르면 왠지 내 기분이 상해진다. 그래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며 최소한 “로이 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 뒤 몇 년 동안이나 어떤 선원들과 일부 교민들은 그의 이름이 “로이(Roy)”가 아니고 “로이씨(Royci)”라고 알고 있었다고…. 다같이 한바탕 웃어댄 적이 있다.

결혼하고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실제로 뉴질랜드에서 산 세월이 한국에서 산 햇수보다 훨씬 길다. 그래도 나는 그가 돌아가실 때까지(2018) 단 한 번도 “로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왠지 건방져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아빠”라고 불렀다. 실제 그의 나이도, 인자한 성품도, 친정아버지보다 훨씬 더 아버지 같았으니 그냥 나 편한 데로 부른 호칭 영원한 “아빠!” 그것이 나에겐 그의 이름이다.

한국의 옛날대로라면, 사람의 이름만큼 귀하고 중요한 것이 없으므로 존칭어도 없이 함부로 어른의 이름을 불러선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들의 관습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람의 이름이 귀한 고유명사이니 자주 불러줘야 더 친근감이 들고 그 사람을 존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은 것 같지만, 매우 큰 동·서양의 관습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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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경숙
중앙대 졸업. 1980년 로이 월슨과 결혼하여 웰링턴에 정착하면서 월슨과 함께 한국 원양어선 선원을 돕고 첫 웰링턴 한인연합교회에 설립에 참여했고, 한인 사회와 뉴질랜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오클랜드에 와서도 한국전 참전 용사와 한인 노인을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