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에이미’

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나는 있다의 의미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대상으로 독특하고 특이한 방식으로 표현한 메시아, 인자, 하나님의 아들, 구주, 로고스와 같은 기독론적 칭호들이 있다. 이런 다양한 칭호들은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 된 신성과 인격의 특수한 단면을 보여 준다. 그 가운데 요한은 요한복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한 인간적 메시아가 아니라 신적 존재로서의 정체성과 사역을 계시하였음을 강조하며 기록했다. 이 복음서 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에고 에이미’ 선언은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정체성과 신분을 밝히는 정형화된 말씀 기법이다.

‘에고 에이미’의 사용법은 정상적인 헬라어의 용법에 충실히 따르는 술어를 사용한 일반적인 용법과 술어가 없는 경우에도 술어를 유추할 수 있는 경우와 술어를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용법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절대적인 용법에서의 ‘에고 에이미’는 일상적인 표현과 분명히 구별되는 특징을 나타낸다.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에고 에이미’의 일반적 표현은 술어와 같이 사용되는 다음의 일곱 표현으로 나타난다. ①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③ ‘나는 양의 문이다’(10:7). ④ ‘나는 선한 목자이다’(10:11). 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⑥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⑦ ‘나는 포도나무이다’(15:1).

이 문장들의 표현은 일곱이라는 완전 숫자에 맞추어졌다고 유추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술어가 있는 ‘에고 에이미’ 용법으로 자신을 설명하였는데, 여기서 발견되는 이 술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자이시고, 그 계시를 통하여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지식을 얻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구원, 곧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분임을 나타내고 있다. 즉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공생에 사역에 있어 예수님의 역할을 간결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쓰였다.

이처럼 일상적인 용법에서 사용되는 ‘에고 에이미’의 표현들은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연합을, 즉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시자’로서 표현하고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술어가 따르지 않는 절대적 용법의 ‘에고 에이미’는 예수님의 신성과 선재성을 계시하는 핵심 본문으로 간주된다. 이때의 ‘에고 에이미’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정체성을 계시하는 용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신학적 자기 계시의 선언이다. 예수님은 이 선언을 통하여 기독교인들이 바라보아야 할 믿음의 대상을 하나님과 동일한 신분으로서의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에고 에이미의 절대적 용법
구약 성경에서 ‘에고 에이미’의 언어적 병행이 드러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출 3:14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할 때 사용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직역하면 ‘나는 나’(I AM THAT I AM)이다. 70 인역(LXX)에서 이를 ‘에고 에이미 호 온’(나는 존재하는 자)으로 번역하였다. 하지만 이 표현은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보다 ‘있는 자’(호 온)를 더 강조하는 표현법으로,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이 드러나는 ‘존재’ 자체를 중요시하고 있다. 즉 출 3:14는 하나님 존재의 영원성과 자존성을 계시하고 있다.

요 8:58에서 예수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에고 에이미)고 말씀하신다. 이때의 ‘에고 에이미’ 는 단순한 시간적 선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자기 이름으로 차용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간을 초월한 선재성과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인용하여, 자신이 바로 출애굽기의 하나님, 곧 존재의 근원이심을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존재론적 신성 선언인 셈이다.

이에 유대인들은 구약 율법에 근거한 신성모독에 대한 처벌로 예수님에게 돌을 들어 치려 한다(요 8:59). 이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에고 에이미’ 선언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인식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즉, 그들은 예수님의 선언이 단순한 ‘나도 하나님의 사람이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선언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 반응은 예수님의 말씀이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동일한 본질을 지닌다는 간접적 증거가 된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통해 예수의 정체성을 암시하거나 뒷받침하는 극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강화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당신을 계시하시는 이사야서 40~55장 말씀이다. 요한은 이사야의 신관을 기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재하시는 하나님, 유일한 구원자, 종말론적 계시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지 고백적인 신앙 표현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정교하게 구약과 연결된 기독론적 선언이다. 많은 학자가 요 8:24, 28, 58이 이사야서(41:4; 43:10, 13, 25; 46:4; 48:12; 신 32:39)에서의 ‘에고 에이미’의 용법과 같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 43:10은 여호와의 유일성과 선재성을 강조하면서 ‘에고 에이미’를 사용한다. 즉 “나를 알고 믿으며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에서 ‘에고 에이미’와 결합 되어 있는 동사들이 요 8:24, 28에서 연결되어 나타난다. 요 8:24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if you do not believe that I am)에서 ‘믿다’와 요 8:28 “그 때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then you will know that I am)의 ‘알고’가 반영된다.

이러한 표현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완성됨을 선언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유일한 구원자되심을 ‘알다’, ‘믿다’ 등의 동사와 결합되어 깨닫게 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알다’, ‘믿는다’라는 동사들과 연결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특징을 나타내며 하나님께서 ‘에고 에이미’임을 믿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절대적 ‘에고 에이미’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존재적 연속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신학적 언어이다.

에고 에이미가 지닌 신학적 특징
이사야서의 신관은 하나님을 초월적 거룩함을 지닌 분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와 비교할 수 없는(사 40:18, 25; 44:7; 46:5, 9) 분이시며,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다(사 3:1, 7, 15; 48:7). 이사야는 이러한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믿음을 갖게 하고, 이 믿음을 토대로 포로로 끌려간 유배 자들을 위로하며(사 40:2)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을 몰아내고자 했다(사 41:10, 13-14;43:1-7; 44:2, 8).

이러한 신관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빌론 유배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도록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사람들 눈에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바빌론의 신들에게 굴욕을 당하는 하나님, 침묵하는 하나님으로 보였겠지만 그분은 어느 한 민족이나 나라에 국한된 분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우주적인 분으로 소개한다.

이사야는 이러한 신론을 바탕으로 바빌론에서의 귀환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 이사야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바빌론에서의 귀환은 마치 파라오의 손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의 여정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귀환은 축복이자 동시에 도전이고 초대이자 동시에 신앙의 발로이다.

요한은 요한복음 8장 안에서 이러한 이사야서의 전망을 모티브로 자신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사야서의 절대적 ‘에고 에이미’의 의미를 예수님에게 적용한다. 요한에 의하면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요 1:1)을 통하여 세상이 창조되었고(요 1:3),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자로 활동하신다(요 3:17; 4:42; 5:34;10:9; 12:47).

그러나 한편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으며(요 5:43),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하셨다(요 10:25). 곧 요한은 예수님을 구약의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한 분으로 표현하기보다(요 1:18; 8:38; 13:19-20; 14:24) 지상의 생활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완전히 수행하러 오셨으며, 그 일은 바로 아버지를 세상에 완전히 드러내는 일이었음을(요 14:10) 밝힌다.

무엇보다 요한은 이러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그 존재 방식과 일을 드러내고 계심을 묘사한다. 더 나아가 그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하나님과 같은 분이심을 보여 준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기독론은 구원론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에고 에이미’임을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절대적 용법의 ‘에고 에이미’는 구약의 계시적 전통(특히 출애굽기와 이사야서)을 바탕으로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선재성에 대한 선언이다. 이는 단지 교리적 주장이 아니라, 이사야가 고백한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선택한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을 믿을 때 구원이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서에서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시던 하나님, 바빌론으로부터 귀환을 약속하시던 구원의 주 하나님이시며, 그분을 ‘에고 에이미’로 믿는 자에게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과의 연합에 이르는 참된 구원이 주어짐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