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29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Romans 2:29(New International Version)
“No, a man is a Jew if he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written code. Such a man’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의역: NIV 성경을 기반으로 필자가 재 번역하다
“아니다, 만약 속 사람이 유대 사람이라면 그가 한 유대 사람이며 기록된 율법이 아닌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가 할례다. 이런 사람은 칭찬을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
단어공부
Inwardly: 마음속으로, 내심, 은밀히, The written code: 법전(율법)
말씀의 나눔
교회 안에서 자신에 대해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현대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다. 로마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있었고 바울 사도는 이에 특별히 로마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의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 If those who are not circumcised keep the law’s requirements, will they not be regarded as though they were circumcised?(롬 2:26).” 할례를 받았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유대인의 경우도 있었지만 바울 사도는 ‘who are not circumcised –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율법의 요구를 지키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할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하는 그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삶에서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금의 교회와 성도에게 말하면 세례 혹은 침례를 받은 것이 자랑이나 구원의 증표가 될 수 없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집사가 되고 권사 또는 장로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과 헌신의 문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헌신도 없으면서 목회자가 되고 교회의 직분자가 되었다고 그것이 내게 구원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자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 곧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보시기 때문이다.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 The one who is not circumcised physically and yet obeys the law will condemn you who, even though you have the written code and circumcision, are a lawbreaker?(롬 2:27)”는 이 말씀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성도라 불리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다.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 중 하나는 그것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만든다는 것인데 종교를 가진 사람이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살 때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지탄받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이 잣대는 기독교인들에게 더 적용이 되는데 이유는 세상이 교회와 그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교회와 그 구성원인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비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울 사도도 그것을 인정했던 것은 바로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판단한다는 말을 NIV 영역 성경은 ‘condemn’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을 직역하면 ‘판단하다’라기 보다는 ‘비난하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세상은 교회와 성도들을 ‘판단’ 하기보다 ‘비난’하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A man is not a Jew if he is only one outwardly, nor is circumcision merely outward and physical. No, a man is a Jew if he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written code. Such a man’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롬 2:28-29)”고 말한다.
‘표면적’이란 말을 NIV 영역 성경은 ‘outward’라 하는데 이 말은 눈으로 직접 보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로마교회의 유대인들은 눈으로 보여지는 것에 집중했다. 마치 현대의 그리스도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이다.
이어지는 말씀에는 ‘표면적’과 반대되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바로 ‘inward – 이면적’이란 표현이다. ‘outward – 표면적’이란 말은 ‘눈으로 보여지는 것’인데 반해 ‘inward – 이면적’이란 말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란 표현이다. 그리고 감추어져 있는 것이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감추어져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나의 내면의 상태가 눈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 겉 사람이 아닌 속 사람이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 – By the Spirit, not by the written code’라는 표현은 ‘기록된 문자 혹은 법이 아닌 성령에 의하여’라고 하는 말인데 할례라고 하는 것은 신체가 아닌 마음에 해야 하는데 마음에 할례를 하는 것은 문자로 쓰여 있는 율법이 아니라 ‘By the Spirit – 오로지 성령에 의해’ 가능하다. 이처럼 할례를 마음에 한다는 것은 마음을 새롭게 함을 의미하며 이것은 문서와 율법에 기록된 문자의 힘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Such a man’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란 말씀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칭찬만을 의식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물론 사람에게 칭찬받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만을 의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신앙생활은 사람 앞에서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칭찬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오로지 사람들의 눈만을 의식했던 로마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의 삶의 모습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교회가, 성도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길은 그리 쉽지 않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교회와 성도가 가야 할 길이며 그들은 사람들뿐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영어 한마디! The arm fold inward.
팔은 안으로 굽죠.
Inwardly, I’ve been really worried about that.
제가 뭘 자랑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