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22장1절-14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아버지께서 내 숙소로 찾아 오셨다. 그리고 아주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일어나라 이제 출발할 시간이구나”
아버지의 말씀에 벌떡 일어나 어젯밤에 준비했던 옷과 짐을 챙겼다. 그렇게 서둘러 옷을 입으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왠지 아버지의 어두운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버지 다 되었어요. 저 지금 나가요!”
내가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숙소 밖으로 나갔을 때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가 한가득 나귀에 실려 있었고 시중을 들어줄 종들도 두 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허둥거리는 나를 안정시키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오늘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산으로 가자꾸나 거기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겠다.”
지금껏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적은 수없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이라면 끔찍이도 열심이셨다. 그런데 오늘처럼 저렇게 어두운 얼굴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나서신 적은 없었다. 최소한 어디로 간다는 말씀 정도는 해주실 법도 한데 오늘은 아버지가 말을 아끼신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수 십 년간 모아왔던 물질을 하루아침에 다 날려 버리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벌이라도 받듯이 몹쓸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감당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아무런 설명을 듣지도 못한 채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일들에 설명을 기대하는 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아버지를 따라 나선지도 벌써 3일째가 되었다. 그러나 나도 그 동안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고 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런 말씀을 해주지 않으신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으로 걷던 아버지가 눈을 들어 산을 보고는 드디어 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나귀에 지웠던 장작들을 내 어깨에 옮겨 얹으시고는 한 손에는 칼과 또 한 손에는 횃불을 움켜 드셨다. 무엇인가 큰 결심을 하신 듯이 아버지는 두 종들에게 당부하셨다.
“너희들은 여기서 나귀와 함께 기다리거라 우리는 저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하고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 한마디가 저 산꼭대기를 향해 출발하는 또 다른 여행에 대한 설명의 전부였다.
한참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턱까지 숨이 차 올랐다. 질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겨우 걸음을 늦추며 아버지께 질문했다.
“아버지! 제사할 장작도 있고 불도 준비하셨는데 도대체 제사할 양은 어디 있는 건가요?”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그 시무룩한 얼굴을 돌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셨다.“아들아 번제로 드릴 양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실 것이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또 다시 그 불편한 침묵의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우리는 어떤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서둘러 제단을 만들고 또 그 위에 장작들을 펼쳐 놓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사할 양도 없이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아버지는 나에게 다가오시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내 손을 묶기 시작하셨다.
“아버지! 지금 뭐 하시려는 거예요? 아버지! 아니 도대체 왜 이러세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 아버지께서는 심지어 나를 그 장작더미 위에 눕히셨고 손에 든 칼을 높이 치켜 드셨다. 나는 제발 이것이 꿈이기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숨을 헐떡 거리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때다! 어디선가 다급한 음성이 들려 왔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마라 네가 나를 위하여 네 외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노라”
나도 분명 그 음성을 들었다. 살며시 뜬눈에 아버지의 커다란 얼굴이 보였다. 울고 계셨다. 그 큰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내 얼굴위로 뚝뚝 떨어졌다. 따뜻했다.
눈을 들어 보니 저 옆에 나뭇가지에 뿔이 걸린 양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서둘러 나를 풀어 주시고는 그 양에게 달려 가셨다. 나를 묶었던 그 줄로 그 양의 다리를 묶으시고 그 양을 질질 끌어다가 내가 누었던 그 장작 위에 눕히셨다. 그리고 나를 찌르려던 그 칼을 높이 치켜 드셨다. 나는 떨리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이번에 아버지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셨다. 그 칼로 양의 목을 내리 치셨다. 피가 온 사방에 흘러 넘쳤다. 이번에는 나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양이 내 자리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내가 묶였던 그 줄에 묶여 내가 누웠던 그 자리에 누워있는 양 한 마리 그리고 나를 찌르려던 그 칼에 찔려 나를 대신하여 죽어가는 양을 바라 보며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아! 그가 나를 대신 하였네”
사람들은 말한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그런데 나는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대신하여 돌아 가셨다고……
“아! 그가 나를 대신 하셨다네”
<이야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