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배리의 “피터 팬”

” 아이들은 자란다. 단 한 명만 빼고 말이다(All children, except one, grow up.).”

동화 “피터 팬 (Peter Pan)”의 첫 문장이다.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자라지 않는 아이. 작가 제임스 배리(James M. Barrie)는 피터 팬을 이렇게 소개했다.

피터 팬은 네버랜드(Never Land)란 섬에서 산다. 하늘로 날아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피터 팬은 ‘잃어버린 아이들(The Lost Boys)’과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보호자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유모차에서 떨어져 잃어버려졌다.

1주일간 아무도 찾지 않으면 네버랜드로 오게 된다. 그들은 모두 남자아이다. 여자아이들은 영리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피터 팬은 말한다.

구체적인 내력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피터 팬 역시 부모의 고의든 실수든 잃어버린 아이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에겐 어른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피터 팬에게 어른이란 후크 선장과 같이 나쁜 존재를 뜻했다.

동화의 후반부에 웬디가 네버랜드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인 달링부인이 피터 팬에게 입양을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피터 팬이 달링부인과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다.

“저를 학교에 보내실 건가요?”
“응.”
“그다음에는 회사에도요?”
“아마 그러겠지.”
“그러면 곧 저는 어른이 되겠군요.”
“매우 빨리.”
피터가 달링 부인에게 열정적으로 말했다.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피터 팬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곧 꿈을 잃는 것을 의미했다. 웬디에게 처음 네버랜드로 함께 가길 청할 때 피터 팬이 그렇게 말했었다.

“너에겐 아직 꿈을 이루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어.”

피터 팬의 꿈은 뭘까? 그건 모험으로 꽉 찬 스릴 넘치는 삶이다. 그는 후크 선장과의 결투 중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죽는 것은 지독히 대단한 모험일 거야.” 라고 말할 정도였다.

네버랜드에선 어린아이로 살아가는 것이 하늘을 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피터 팬이 웬디에게 처음 하늘을 나는 법을 설명할 때 팅커벨의 요정 가루를 몸에 뿌려주면서 행복한 생각만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일은 아주 나중에 어른이 되어 딸을 낳은 웬디가 그 딸 제인과 대화를 나눌 때도 주제가 되었다.

“나도 하늘을 날 때가 있었지.”
“엄마, 지금은 왜 못 날아요?”
“그건 엄마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하늘을 나는 법을 잊어버린단다.”
“왜 나는 법을 잊어버리는데요?”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도 않고 순진하지도 않으며 자신만 생각하게 되지도 않으니까. 즐겁고 순진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만이 날 수 있거든.”

“피터 팬”의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어린이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상상해보게 된다. 사회적 제도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네버랜드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모험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 수만 있다면!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Wordsworth)가 그의 시 “무지개”를 쓸 때 그런 가슴 두근거리는 감동이 그에게 있지 않았을까?

“저 하늘 무지개를 보면 / 내 가슴은 뛰노라 / 나 어린 시절이 그러했고 /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고 / 늙어서도 그러하리 /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내 하루하루가 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

피터 팬이 거부한 어른이란 존재는 아마도 워즈워드가 말하듯 하늘의 무지개를 봐도 가슴이 전혀 뛰지 않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워즈워드는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우린 예수님의 누가복음 18:17 말씀에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교훈을 발견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우린 한가지 질문과 마주친다. 그렇다면 우린 피터 팬처럼 마냥 그렇게 어린아이로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걸까? 생각건대 작가 제임스 배리가 그걸 주장하는 것 같진 않다.

무엇보다 피터 팬은 기억이 극단적으로 짧다. 웬디와 동생들 그리고 ‘잃어버린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그로부터 멀지 않은 훗날, 피터 팬은 ‘잃어버린 아이들’은 물론 심지어 팅커벨, 후크 선장까지 잊어버리고 만다.

작가 제임스 배리는 아마도 기억이 짧다는 것을 어린이의 특징으로 여긴 것 같다. 그러나 남을 빨리 잊어버리니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킨다거나 이웃을 오래도록 돌보는 책임감 같은 것이 피터 팬의 덕목이 될 수 없다. 남을 잊고 자신만 기억하니 피터 팬의 마음은 절로 자기중심적이 된다.

심리학적으로도 피터 팬의 모습은 건강한 유형이 아니다. 피터 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 이라 부르는 증상이 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책임감이 없고, 쉽게 현실에서 도망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인다.

피터 팬은 어릴 적부터 모정이 결핍된 탓에 엄마를 향한 갈망이 마음에 숨겨져 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웬디가 등장했다.

웬디가 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피터 팬이 엿들을 때나, 그의 떨어져 나간 그림자 – 강아지 나나가 피터 팬의 그림자를 물어뜯었었다 – 를 웬디가 바느질로 도로 꿰매줄 때 피터 팬은 엄마를 느꼈다.

훗날 딸 제인이 엄마를 대신해 네버랜드로 가게 될 때 웬디에게 말했다. “피터는 정말 엄마가 필요해요.” 그러자 웬디가 말한다. “그래, 알아. 그걸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웬디는 심지어 후크 일당에게도 엄마를 느끼게 했다. 그들은 악당인 탓에 그들 방식으로 엄마를 구했다. 웬디를 납치해 곁에 두려워한 것이다.

웬디는 한편으로 엄마 노릇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 엄마가 필요한 어린아이의 처지임도 자각했다. 달링부인을 몹시 그리워하여 마침내 네버랜드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런 웬디의 모습에서 우린 그리스도인의 흔적을 본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베풀기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이다.

이제 책을 덮고자 한다. 피터 팬을 따라 한동안 머물렀던 네버랜드를 뒤로하고 우리 독자들도 현실의 삶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기독교 상담가 폴 투르니에는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 이라고 했다. 우리 인생이 피터 팬처럼 모험으로 꽉 차 있길 소망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이에 더하여 우리 모두가 웬디처럼 이 땅의 작고 약한 자들에게 엄마를 느끼게 해주는 선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