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교회 구역모임 이야기

약 12년 전 Radio Rhema (NZ 크리스천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는 친구 Dudley의 초대를 받아 아내와 함께 방송국을 구경하게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한국도 아닌 뉴질랜드의 방송국에 가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방송국 대부분의 업무와 장비들을 견학하게 되었고 실제로 방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분을 다민족교회의 구역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영국계로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주 친절한 키위였다. 하지만 그의 영어는 너무 빨라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가끔 그분의 집에 초대를 받았고 우리도 그분을 초대하여 서로를 알아가는 교제의 시간을 보냈었다. 아직도 그의 집에서 초대되어 함께 보았던 영화“벤허”가 여전히 내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솔직히 말해서 언어의 장벽이 있는 나 같은 이민 1세대가 낯선 외국 땅에서 현지인을 친구로 만나고 사귄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처음에는 언어와 문화가 너무 달라 서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크리스천이라는 공통 점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게 되었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임을 알고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직장에서 일하거나 어떤 모임을 통해서 교제를 갖지 않는 한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물론 다민족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쉽게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노력한다면 다민족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큰 도움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민족교회 안에는 다양한 민족과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민족교회에서도 한국교회와 마찬가지로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 예배 후 교제를 통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알아가게 된다. 찬양봉사, 성경공부모임, 중보기도모임, 구역모임, Mainly Music(3세미만 아이들 찬양모임), 주일학교봉사, 예배 후 친교봉사를 통해 친구가 되어가고 가족(Church Family)이 되어간다.

같은 모임에서 자주 만나 얼굴을 보고 잘하는 영어는 아니지만 자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공통점이 생기게 된다. 서로 친밀감이 생기다 보면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서로 식사도 초대하게 되면서 더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자주 예배나 설교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강조하며 말하곤 한다.“우리는 주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다민족교회의 구역모임
모든 사람의 성격이 각각 다르듯이 모든 교회도 추구하는 사역에 따라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처음에 다녔던 다민족교회는 2002년 그때 당시만 해도 오클랜드에서1000명 이상 모이는 큰 교회 중의 하나였다.

교회구성원이 많아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성도들끼리 친밀한 교제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다른 키위교회와는 달리 그 교회 안에는 소그룹 구역모임이 아주 잘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구역모임을 Home Group, Life Group, 또는 Cell Group이라고 불렀다. 한국교회처럼 구역장과 부구역장이 있고 모임은 보통 일주일 또는 이주일에 한 번씩 있었으며 주로 리더의 집에서 모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요일과 시간에 따라 많은 모임이 있어서 본인이 편한 시간에 직장이나 집에서 가까운 모임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가 있었다. 한국교회처럼 꽤 많은 교인들이 구역모임에 참석하는 편이었지만 결코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나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제를 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만남을 통해서 나의 영어실력을 더욱더 향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내와 함께 그때 당시 1살, 3살이었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4개의 구역모임(유럽인 그룹, 아시안 그룹, 퍼시픽아일랜더 그룹, 다민족 그룹)에 참석하였다. 주일에도 예배를 3번이나 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의 인도하심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다민족 교회에 다닐 때에 아내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였다. 거의 매번 교회에서도 나에게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냐고 통역해 달라고 했다. 솔직히 나도 그들이 말하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았다.

미국식 영어 발음에 익숙해서 그런지 몰라도 뉴질랜드 발음은 내 귀에 익숙해지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때로는 서로 알아들은 내용이 달라서 당황스러운 적도 많았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교회에서의 성경공부와 구역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점차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영어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것을 느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나보다 더 열심히 더 용감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많은 은혜와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사실 아내는 뉴질랜드에 와서 다민족교회에 다니면서 크리스천이 되었다. 너무나도 안타깝게 아내는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친정어머니를 뉴질랜드로 이민 오기 5일 전에 영원히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

감사하게도 장모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가셨다. 아내는 이 땅에서 엄마를 잃은 가슴 속의 허전함과 슬픔을 신앙의 힘으로 하루하루 견뎌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아내와 나는 더욱더 열심히 성경을 읽었고 기도했다. 다민족교회의 성경공부에 참여하면서 세례도 받게 되었다.

다민족교회 그룹마다 모이는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성경공부자료와 모임의 구성(기도 및 교제)은 비슷하였다. 나는 이러한 모임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일을 계기로 다민족교회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전문적인 연구까지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