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예언자

박용수 목사<말씀의교회>

목사는 예언자이다. 역사의 물줄기 앞에 서 있는 시대의 예언자이다. 이 예언자가 시급히 요청된다. 예언의 능력은 앞날에 일어날 일을 잘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앞날을 꽤 잘 맞추는 “거, 차암~용하네!” 가 될 수 없다.

이 예언자의 기반은 예지력이나 개인의 능력, 혹은 신비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목사는 깊은 말씀 묵상을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는 선지자적 예언자이다.

목사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참 평안의 메세지를 전하는 제사장적 예언자이다. 목사는 예언한 대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삶의 예언자이다.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다. 궁하면 소인배는 흐트러지나 궁해도 군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하라 하지 않는다.” 옛 선현의 기개와 배짱 그리고 양심이 시대의 예언자적 소명을 받은 목사에게 요구된다.

길을 말해주라
예언은 길을 말해 주는 것이다. 목사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말해 주어야 한다. 구원은 자유이다.“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17).

사람들은 자유를 얻고자 한다. 구원의 확신을 받고자 한다. 긍정의 힘, 위로의 심리학, 성공학 강의, 그리고 웰빙의 메세지는 SNS나 유튜브에 이미 차고도 넘친다. ‘거기에 목사까지 굳이 가세할 필요가 있을까…’ 나름 고민이다.

종교의 공헌은 유일하게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종교의 한계이다.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다. 죽음과 부활, 죄와 보혈, 목사가 예언할 주제이다. 목사는 진리의 사람이다.

“왜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이단에 빠지나?” 이단의 친절이 아니라 구원에 목말라서이다. 사람은 영혼 깊숙한 곳에서 죄와 염려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목사는 그 자유의 길을 예언해 주어야 한다. 목사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이다.
제자 도마가 물었다. “주여 그 길이 어디인지요?” 주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곧 그 길이다”(요한 복음 14:6).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 소망이 끊어진 수가성 여인에게 주님은 대답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백성과 민족에게 희망의 길을 말해 주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사사 사무엘은 범죄한 벡성들에게 길을 말해 주었다. 그 예언을 듣고 백성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었다.

사무엘은 미스바 광장에서 길을 예언하고 기도하고 다스렸다(사무엘상 7:5-6). 두렵고 오만한 사울 왕의 권력을 피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을 세웠다. 다윗 왕으로 인하여 나라는 다시 일어났다.

국가와 공동체에게 살 길을 예언해 주어야 한다. 생명의 예언은 한 방(?)으로는 안 된다. 골방에 들어가 깊은 말씀 묵상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만 가능하다. 호화로운 곳에 힘있는 자들을 앉혀놓고 먹고 마시는 모임에서 이러한 예언이 나올 수 없다.“세미한 음성”(열왕기상 19:12)을 성경에서 들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을 말해주라
성도는 기도한다. 기도의 응답은 목사의 설교를 통해 듣는다. 사사 사무엘의 엄마 한나에게는 눈물로 드리는 기도 제목이 있었다. 매우 간단하다.

“아들 하나 주세요. 아들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마치 술 취한 자의 모습 같았다. 이 모습을 본 당시의 제사장 엘리에게 감동이 왔다.

‘저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 하실 것이다’그래서 축복 기도를 했다.“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사무엘 상 1:17). 예언 한대로 기도가 응답되었다.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마음이 좋다.‘응답 받은 기도이니까…’한나는 제사장의 예언을 응답으로 알았다.“아멘”하고 집으로 돌아 가 먹고 마시고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다(사무엘상 1:18).

사람들은 꿈이나 환상, 혹은 하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으로 기도 응답을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응답 하시고 세우신 목사를 통해 응답하신다. 민수기에 자주 나오는 문장이 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모세는 들은 말씀을 백성에게 말한다. 백성이 요구 사항을 말한다. 모세는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 드리고 응답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백성에게 전한다.

기도와 응답의 원리이다. 안타까운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의 간절한 기도에 목사는 설교로 예언해 주어야 한다. 예언을 응답으로 받은 성도의 얼굴이 기쁨으로 바뀌게 할 책임이자 특권이 목사에게 있다.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로마서 주석 서문에 나오는 칼바르트의 글이다. 예언의 권위를 다시 회복하여야 한다. 성경 정독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성경만이 목사에게 주신 예언의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