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시대에 가능한 토론하는 교회

교회를 소그룹으로 나누어 속회(Class Meeting)반(Band), 참회 (Penitent)반, 선발 신도회(Select Society)를 만든 까닭은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램과 믿음과 기도와 찬송만으로 교회의 소그룹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존 웨슬리는 분기별로 직접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만남의 시간을 갖는 데에도 암호로 일기 쓰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가 암호로 쓴 일기는 대부분 소실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남아있는 몇 권조차도 그 암호가 풀리지 않아 고문서 보관실에 겹겹이 싸여 특별히 보관되어 있다. 이제는 찾는 사람도 없다. 몇 년 전까지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웨슬리의 소그룹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연구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함께 사라져 버린 다양했던 소그룹 모임들을 아쉬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은 “속회”만 남아서 가정교회와 목장교회의 형태로 발전을 거듭했고, 최근에는 “반(Band)” 모임이 재구성되어 소규모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코로나 19 시대를 맞이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소그룹 모임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은 어려웠지만 이제 인터넷 온라인 기술과 연결되면 웨슬리의 방법이 얼마나 강력하게 교회와 사회를 함께 변화시켰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숙제는 풀리지 않은 암호 속에 잠들어 있다. 그가 평생 “한 시간”마다 기도하며 기록하고 되돌아보며 점검하였던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을 숙제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선발 신도회(Select Society)를 살펴보자. 소그룹 가운데 “선발 신도회”는 아주 독특한 모임이다.

기본 선발 신도회 운영 방법
구성: 다양한 구성
모임: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특징: 사공이 많으면 평화가 온다

반(Band) 모임에 참석하는 성도들 가운데서 선발하여 구성하였다. 선발 신도회마다 구성 인원은 다양하였다. 월요일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이른 아침에 주로 모였다. 속회와 반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였던 그들은 모두 리더로 임명받기에 충분히 성장했다.

선발 신도회 모임에 웨슬리는 가능한 꼭 참석하였다. 모임의 특징은, 웨슬리 본인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동등한 대화의 자격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300년 전 신분의 차이가 뚜렷하던 사회에서 동등성을 인정하였다는 특징은 주목받을 만 하다.

속회 또는 반 모임과는 분명히 다른 특징이 있다. 선발 신도회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었다. 각자 마음속에서 꿈꾸는 규정이 모임의 규정이었다. 규정을 만들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믿음이었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서로 다른 달란트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규정이라고 할 것을 일부러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일반 상식을 예로 들 수는 있다.
첫째,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는 절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덕분에, 서로를 향한 신뢰가 쌓여갔다. 아무런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현재까지도 모임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둘째, 부수적인 문제들(all indifferent things)은 목회자의 의견을 따랐다. 선발 신도회는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을 주제로 모이는 소그룹 모임이었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였고,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나머지 부수적인 주제들은 목회자에게 맡겼다. 훈련된 목회자였기에 가능하였고, 이미 속회와 반 모임에서 훈련된 성도들이기에 가능하였던 모임이다. 모두에게 동등한 권한이 주어져 있던 자유로운 대화 모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목회자의 의견을 따랐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셋째, 모일 때마다 나눌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나와 나누었다. 서로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다는 초대 교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임이었다.

선발 신도회의 목적과 영향력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속에서 대화하는 모임이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사랑의 빛 가운데 살아가기를 열망하였다. 아무 염려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어떠한 주제로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과 거룩함과 선한 일의 본보기라고 누구에게나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랬다. 웨슬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 선발 신도회가 지속되지 못한 것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다루는 주제도 복음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 인간의 모든 분야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목회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대화 모임은 웨슬리에게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일기에 자주 나타나는 구절이 증명한다. 그의 일기를 읽어보면,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한 간절한 열망이 차별없이 거침없게 퍼져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선발 신도회에 참여할 때마다 기쁨에 가득한 그의 모습이 기록 속에서 엿보인다.

몇 구절을 예로 들어 보자
“선발 신도회 모임에 참석하였다.”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깊이 뿌리 내렸는가!” “그들의 이야기는 불과 같다. 그 불꽃이 서로의 마음속에 불길처럼 번져간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회복하였다.” “은혜를 잃어버린 성도들이 다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부분 거의 20년 동안 꾸준히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한 사람도 낙심한 사람이 없고, 첫사랑과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