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부터 현지인들이 “북한에서 왔어요, 남한에서 왔어요?”하고 물어보는 게 어색하고 싫었다. 우리나라만 왜 아직까지 분단국가로 남아있는지 서글프기도 하고 외할아버지가 이북 분이라 떨어져 있는 가족 이야기하실 때마다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전 매니저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에서 남북평화재단이라는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관심 갖게 되었다.

남북평화재단은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 교육과 훈련 및 평화운동과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하는 단체다. 후원자를 모집하여 북한에 전지분유와 밀가루를 보내고, 또 남북 청소년의 스포츠 교류 차원에서 농구공 수 천 개를 전달하는 등 평화 문화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부천지부에서는 여러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이사로 헌신하고 있어서 종종 종교를 초월한 문화와 모금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도 아닌 나에게 홍보대사 위촉 제안이 들어와 영광으로 여기며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값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때부터 부천시청 앞 광장, 시의회 강당 등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보수로 연주하며 재단을 지원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애국가’를 편곡하여 직접 반주를 제작했고, 이 곡을 듣는 사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거나 평화 통일에 대한 마음이 불타올랐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인듯싶었다.

두리하나 선교회 대표인 천기원 목사님은 아빠와 깊은 친분이 있는 분이다. 두리하나는 북한 동포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을 구제하며, 탈북동포를 위해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함으로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데 목적을 둔 선교회이다. 천 목사님을 만나 북한의 현재 실상황과 탈북자를 탈북시키는 과정을 들었을 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또한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자리 잡고 생활해 나아가는 데 겪는 어려움이나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호소할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긍휼함으로 마음이 미어졌다. 이들의 심령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뿌리내릴 수 있게 양육하는 천 목사님이 너무 귀하고 수십 번 북한에 억류될 뻔한 상황에서도 계속 이 사역을 해 나아가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나도 두리하나 선교회에서 열리는 후원 행사 등에 발 벗고 나서서 재능기부로 돕기 시작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한, 두 걸음씩 북한 선교에 다가가게 나를 이끄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북한 지하교회의 상황을 그려낸 영화라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에 가서 관람했다. 너무나도 소중한 복음을 지키기 위해 고문과 순교까지 마다하지 않는 지하교인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며 그저 먹먹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왔다.

이제까지 나의 신앙이 가짜인듯싶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피와 생명으로 맞바꾼 복음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나를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에서 북한 지하교인들이 자주 부른 ‘갈릴리 호수가에서’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곡을 찾아 들어봤지만, 최근에 나온 음원이 없고 모두 옛날 음원이어서 내가 노래와 연주를 직접 녹음해 음원을 내기로 결심했다.

나와 같이 영화를 보고 계속 그 영화에서 받은 은혜를 떠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두 곡을 메들리로 이어서 한 곡에 담기로 했다. 화려한 반주보다는 멜로디 자체에 비중을 두어 가사와 멜로디에 집중을 할 수 있게 건반과 기타로만 반주를 녹음했다. 그리고는 뮤직비디오 제작을 하려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영화의 장면이 들어가는 게 가장 효과적일 듯싶었다. 또한 사역지에 가서 이 귀한 영화를 더 많은 사람한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어렵사리 제작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전자 바이올린으로 사역하는 해나리라고 하는데요….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서 영화 장면을 뮤직비디오로 사용하려고 하는데, 혹시 허락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 회의 중이어서 통화가 어려워서요, 자세한 내용을 문자로 다시 남겨주세요.”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 문자로 남겼지만 며칠 동안 답이 안 왔다.

‘그럼 그렇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영화를 뮤직비디오로 쓸 수 있게 해 주시겠어?’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단념하던 중, ‘라스트’라는 남성 CCM 그룹 녹음실에서 녹음 하고 있는 날이었다. 녹음하고 있는 도중에 제작자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여보세요? 대표님, 안녕하세요? 해나리입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해요!”
“네, 제가 요전 날에는 회의 중이어서 전화 통화를 제대로 못 했네요. 지금 바쁘세요?”
“아, 아니요! 라스트라는 CCM 그룹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있는데요, 잠시 쉬었다 해도 됩니다.”
“네? 라스트요? 그… 강.. 누구 PD가 있는 그룹이요?”
“네! 맞아요! 강원구 형제가 PD를 맡고 있습니다. 라스트를 잘 아세요?”
“몇 번 만나서 밥도 먹고 했어요~. 그 팀 좋던데요~. 잠깐 강 PD 좀 바꿔주세요.”

제작자와 강 PD가 통화를 했고, 나와 내 사역에 대해 잘 말해줬다.
“해나리씨, 저는 해나씨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가 믿는 라스트가 해나씨를 귀한 사역자라고 하니까 영화 쓸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정말요? 우와~ 감사합니다! 사역지 다니면서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은혜받을 수 있게 열심히 연주할게요. 그런데, 비용은 얼마나 드려야 될까요?”
“잘 편집해서 그냥 쓰세요.”
“…”

너무 감사한 마음에 할 말을 잃었다. 모든 일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하신 하나님이 내가 라스트 녹음실에 가는 날까지 기다리게 하셔서 강 PD가 바로 옆에 있는 날 제작자가 전화하게 하신 것이다. 만약 강 PD가 옆에 없었더라면 영화 쓰는 걸 허락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간절한 마음을 아시고 이런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을 편집해서 만든 이 뮤직비디오는 지금까지 많은 곳에서 많은 성도에게 보여졌고 실제로 그들의 신앙을 돌아보게 만들고 북한을 위해 기도하게 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L국가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는 북한식당이 꼭 한두 개씩 있어서 공연하러 갈 때마다 북한식당에 들러 꼭 한 번씩 식사하거나 연주하곤 한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 파송된 종업원들과 조심스레 이야기도 나누고 음악적인 교류도 하면서 그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여성 홀서빙 직원들은 북한에서 철저히 교육받아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 밖으로 잘 내지 않고, 또 식당 홀에서 매일 공연을 하기 위해 노래와 춤, 악기 연주도 훌륭한 수준으로 훈련받는다.

내가 노래와 전자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고 나서야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창법이나 연주법에 대해 질문하며 다가와 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또는 아리랑 같은 곡을 협연도 하게 됐다. 남과 북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역사적인 날이 되어 마음이 뭉클했다.

하지만, 몇 년 후 다시 L 국에 갔을 때는 갈 때마다 정을 붙여왔던 종업원들이 로테이션 돼서 북한으로 돌아가 버려 없고 새 종업원들이 교체되어 와있었다. 복음도 전하지 못했는데 이젠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 슬프고 아쉬웠다. 북한에 가서는 복음을 듣지도 못할 텐데….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크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인 북한 동포에게 자유롭게 복음이 전해질 수 있게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지속적해서 기도해야 한다. 또한, 통일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지금부터 훈련받아야 한다.

외국 국적을 갖은 나로서는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몇번 있었다. 하지만, 내가 두리하나 선교회나 월드비전과 같은 기관과 공식적으로 연관돼 있어서 위험하다는 관계자들의 조언을 하나님의 NO 사인으로 받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북한 영혼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 그리스도인이 더욱더 무릎 꿇고 기도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