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선교사 찬양간증집회

김광도 목사<크라이스트처치 목회자협의회 총무, 한사랑교회>

작은딸의 간 이식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 찬양 사역 감당

크라이스트처치 한인장로교회(최승관 목사)에서 지난 1월 24일 금요일 저녁 크라이스트처치 목회자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박종호 선교사 찬양간증집회에 참석한 후기를 게재한다. 이어서 2월 1일 토요일 저녁 오클랜드 순복음교회(김지헌 목사)에서도 박종호 선교사 찬양간증집회가 열렸다. <편집자 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품고 1월 24일 금요일 저녁을 기다렸다. 이날은 박종호 선교사의 찬양 간증집회로 크라이스트처치 온 교회가 모이는 날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 목회자 협의회 주관으로 모인 이날 저녁에는 교민 140여 명이 참여하여 박 선교사의 간증과 찬양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탈리아 유학 1달 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처음에는 많은 분이 날씬해진(?) 선교사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반응들이었다.“선교사님~ 죄송해요. 못 알아봤어요…”그만큼 박 선교사의 모습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소개 영상으로 시작된 간증 집회는 찬양과 웃음으로 시작했다. 박 선교사의 입담은 청중들을 웃게 만들었다. 선교사의 성악을 하던 시절, 교회는 다녔으나 여전히 죄인이었다는 고백과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대학교 졸업과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을 1달 앞에 두고 있던 젊은 박종호에게 예수님은 인격적인 만남으로 찾아 오셨다. 성령으로 거듭남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박 선교사는 이태리 유학을 포기하고 신학교 입학과 함께 찬양 사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미국 오페라 가수로 합격하고 뇌출혈 있었으나 일어나
한국교회의 음악을 변화시켰던 그의 삶은 화려함 이면에 많은 고난과 인내도 요구됐다. 1999년 박 선교사는 사역에 지쳐 새로운 길을 걸으려고 했으나 인생은 그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도전하려 했다. 그의 나이 39세 미국의 오페라 가수로 오디션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은 그 날 밤 박 선교사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혈관이 터진 것이 아니었기에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그를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예수님을 만난 후 찬양 사역을 자신이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하셨고 고백하게 하셨다.

이후 박 선교사는 미국의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예수님의 위로가 필요한 곳,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간증들을 나누었고, 박 선교사는 그의 고백에 미국에서 지내면서 집회하며 여러 작은 교회와 사역자들을 만나면서 본인이 다듬어지며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박선교사는 음원 수익금을 통해 여러 선교사의 치료와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우시며 열심히 찬양 사역을 다시 감당하고 있다.

딸의 간 기증으로 간암에서 기적적으로 회복
2016년 봄. 박 선교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뚱뚱했지만 건강에 자신 있었다던 그에게 간암이 발생하였고, 8명의 의사가 그에게 ‘끝났다’는 통보를 보내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나에게 간암이라니…

간암 치료를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두 딸이 아버지를 위해 간 이식을 하기로 하였고, 간 이식 수술을 통해 박 선교사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간 이식을 받기 위해 딸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어려웠다고 한다. 두 딸도 쉽지 않은 결심을 했다. 결국, 막내딸의 간 이식으로 새로운 삶을 허락받게 되었다.

병실에 누워있을 때 많은 분의 기도로 기적 같은 회복을 경험하게 된 박 선교사는 여러 사람의 기도 후원에 대해 감사함을 전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도 박 선교사의 소식을 들은 여러 성도가 기도하고 있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큰 고비를 넘긴 간증을 통하여 많은 사람의 눈가를 물들게 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박 선교사는 34년 동안 진행되었던 자신의 찬양 사역을 돌아보니 “하나님이 자신을 붙잡아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었던 길을 포기했지만, 자신은 이렇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었던 삶이 행복하고 복된 길이었음을 감사해 한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성악가의 길 포기하고 하나님 찬양하며 살아
집회 후 교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선교비로 보내기 위해 박 선교사의 찬양집을 여러 사람이 구매하였으며, 같이 뜨거운 포옹을 하며 마음을 나누었다. 특히, 박 선교사의 찬양을 들으며 은혜를 받았던 세대들은 이번 집회가 남다르게 다가왔음을 표현했다. 연합집회 이후 주일인 1월 26일에는 한인장로교회와 한사랑교회, 그리고 열린교회를 방문하여 사역을 감당했고, 연합집회 때 오지 못했던 성도들도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됐다.

찬양간증집회 마치고 목회자와 함께

1주일간 선교사를 가까이에서 섬기면서 간증 집회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박 선교사를 만났던 ‘작은 예수’ 같은 사역자들, 그리고 어려움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붙잡고 헌신해가는 이야기와 선교사가 간증 집회 때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더욱 은혜가 되었다. 박 선교사를 가까이 지켜보니 부르심을 향하여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소망하기는, 간 이식 후 ‘면역억제제’ 약을 매일 같이 평생 먹어야 하는데, 주님이 건강을 허락하셔서 마지막까지 귀한 은혜를 나누는 일에 사용되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