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나의 정체성

우리는 1세대, 1.5 세대, 그리고 2세대다. 한국에서 떠나와 먼 타지 뉴질랜드에 와 살면서 우리에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다.

어떤 이유로든 고향을 떠나 타국 뉴질랜드에 살아가면서 생계로 바쁜 1세대 어른들, 한국 정서와 키위 정서를 같이 배운 1.5세대들, 그리고 다른 언어와 문화로 1세대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2세대들. 우리 뉴질랜드 교민들과 한인교회는 풀리지 않는 세대갈등 안에 힘들어하고 있다.

나는 1.5세대 키위 코리안이다. 앞으로 글을 쓰면서 1.5세대로 뉴질랜드에 살아오면서 내가 가졌던 개인적인 고민들, 교회에 대한 고민들, 학교와 일자리에서의 고민들과 하나님의 나라와 사명에 관한 고민들을 풀어나갈 생각이다.

이 글을 통해 1.5세대들과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1.5세대들은 같이 공감하는 동시에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조금 소개 하자면 나는 뉴질랜드에 11살때 와서 초중고와 대학교를 마치고 지금은 호주에서 일과 공부를 함께 병행하고 있는 키위 코리안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잘 소통하는 편이고, 주위에 한국인 친구들과 몇몇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 나는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내가 한국인임을 강조하진 않았지만 한국의 역사를 배웠고, 장남으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아무리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들 나의 정서와 문화는 뉴질랜드에서 자랐기에 한국과 뉴질랜드의 짬뽕이다.

한국이든 뉴질랜드든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어디를 가든 그 사람들과 완전히 똑같을 수가 없고 또 한 문화만 선택하기도 싫다.

외국에 떨어진 한국인
우리의 정체성은 어릴 때부터 형성된다고 한다. 내가 살아가는 환경과 사람들의 가치관과 교육,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의 자아가 형성되고 내가 세상에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게 된다.

나는 발달에 중요하다는 유아기는 다 한국에서 보내고, 청소년 시기는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영어 ABC만 배운 채로 뉴질랜드 primary school에 뚝 떨어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두 문화에 둘 다 어울리는 것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어디도 속하지 못할 소속감 없는 정체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나와 문화적인 코드가 맞는 한국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마칠 때 즈음 처음으로 간 교회도 한인 교회였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예수님을 대학교 2학년 때 만난 나는 열정으로 동쪽 지역에 있는 한인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산 것 같다.

한인 교회는 참 신기한 곳이다. 왜냐하면 대예배를 드리는 어른들은 뉴질랜드 안에 작은 한국 사회를 만들고 있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학생부와 청년부는 또 그들만의 작은 사회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문화를 접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교를 마칠 때가 다가와서 나는 내 삶에서 힘든 고난을 마주했다. 그것은 바로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사회생활이었다.

영어 잘하는 외국인
대학교를 마치기 전 나는 internship과 공부를 함께하는 student project 코스를 했다. ASB Bank 디지털 팀 안에서 인턴쉽을 했던 나는 ‘존재의 혼란’을 느꼈다. 외국에서 자라서 영어는 잘하지만 영어로 소통이 안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일에 관련한 소통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 정서가 아닌 한국 정서로 자란 나로서는 나의 팀원들이나 supervisor와 함께 편안하게 일상을 이야기하거나 조크를 날리는 것이 생소했다. 코드가 맞지 않는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때까지 살았던 뉴질랜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바꿔서라도 여기서 섞여야겠다고 다짐할 때도 있었다.

부모님의 둥지에서 떠나 이제 세상을 경험해야 하는 청년들은 이제는 더 이상 날 지켜주는 고무 튜브가 없는 사회라는 물가로 나간다.

하지만 1.5세대는 튜브가 없는 것뿐만이 아니라 소금기 없는 냇가에서 갑자기 바다로 물이 바뀐다. 같은 물이지만 전혀 성질이 다르고 내가 마시던 물과는 다른 물에 던져져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청년으로서 잘 못 어울리는 내 모습이 너무 힘들었고, 그러면서 ‘내가 어렸을 때 한국인 친구들과 놀지 않고 외국인 친구들이랑 놀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 혹은 ‘그냥 한국에 있었으면 더욱 폭넓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1.5세대, 문화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제 나에게는 1.5세대라는 특수한 정체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감사해야 할 조건 중 하나다.

아직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어디에도 완전한 소속감이 들지 않지만 그 중간에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을 그들 자체로 인식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이 땅에 나그네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는 디아스포라 세대라는 점에서 하나님이 나를 이 나라에 보내신 이유를 찾는다.

물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리지 않는 고민이지만 모든 것이 선을 이루듯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우리를 사용하여 이루어 가게 하실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