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크리스천

정명환 목사<뉴질랜드 광림교회>

이곳 뉴질랜드 광림교회에 부임하기 직전까지는 청라에서 광림서교회라는 지 교회 담당목사로 섬겼다. 청라국제도시에는 종교부지가 8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매입하여 지상 3층, 지하 1층의 본당 280석 규모의 교회를 건축하고 지 성전을 세웠다.

공원 옆에 멋지게 세운 교회였지만, 청라에 사는 광림교회 교인은 한 명도 없었기에 개척 교회와 똑같았다. 그래도 교회가 세워지고 나니 매 주마다 새 가족들이 오기 시작했다. 물론 새 가족이라 해도 대부분 신도시에 이사를 와서 교회를 정하려고 찾아오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광림서교회는 청라국제도시가 세워지고 입주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제일 마지막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보니 이미 교회를 정하고 다니다가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청라 지역 안에서 이동하는 교인들도 많이 있었다.

교회가 창립된 지 1년이 지나면서 주일 출석 인원이 장년 150명, 교회학교 50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교회의 모습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조금씩 열심을 내는 분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교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목사님! 교회는 이래야 되지 않겠습니까?”“제가 예전에 한창 열심히 할 때는……” 이런 이야기들과 함께 예전 교회에서 좋았던 모습, 그리고 안 좋았던 모습, 더불어 교회의 앞날에 대한 나름의 비전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다들 자신의 신앙의 색깔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신앙생활, 교회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가는 신앙적인 가치관이라고 할까? 또한 신앙생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영역들에 있어서도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찬양을 많이 하자며 강력하게 말을 하고, 어떤 이들은 설교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교제와 친교를 그렇게 강조했다. 때로는 이러한 중요도,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바른 신앙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기도해 보게 되었다.

‘만만’하게 살지 말자
여러 다른 색깔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린 첫 번째 생각이었다.“만만하게 살지 말자.”
세상살이에서 만만하게 보이면 금방 공격을 당한다. 그럼 신앙의 삶에서는 어떠한가? 우리가 영적으로 만만하게 보이면 사단 마귀가 금방 공격을 한다. 절대로 영적으로 만만해 보여서는 안 된다. 창세기 3장 15절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다. 사단은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지라도, 우리는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권세를 지닌 자들이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만만하게 사는 성도들이 참 많다. 여기서 만만하다는 것은 성격이 유하거나 힘이 없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런 부분들이다. 어떤 성도들은 그렇게 찬양‘만’한다. 한국에서 찬양 집회에 가면 찬양‘만’한다. 때로 짧게 말씀을 전하는데 말씀에는 관심도 없다. 두 손 들고 울면서 찬양을 하다가 설교 시간이 되면 다 정신을 놓아버린다. 찬양‘만’하는 거다.

어떤 성도들은 그렇게 설교 말씀‘만’사모한다. 말씀을 사모하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이겠냐 만은 말씀‘만’사모하는 나머지 유튜브에서 세상 모든 설교를 다 듣고 은혜를 받는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거다. 말씀‘만’사모한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만’한다. 예배 시간에 찬송도 안하고, 설교에는 관심도 없고, 봉사나 헌신은 외면하고, 매일 몇 시간씩 기도‘만’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렇게 봉사‘만’한다. 봉사하느라 예배를 못 드린다. 봉사하느라 항상 예배에서 일찍 나온다. 주구장창 봉사 ‘만’한다. 어떤 이들은 교제‘만’한다. 예배는 지루하고, 봉사는 힘들고, 그냥 함께 모여서 노는 것만 좋아한다. 교제‘만’한다.

어떤 이들은 교사‘만’한다. 교사하면서 아이들과 정말 잘 지내는데 예배 시간에는 볼 수가 없다. 교회의 다른 행사에는 볼 수가 없다. 항상 교사‘만’한다. 누구는 성가대‘만’한다. 누구는 이것‘만’한다. 누구는 저것‘만’한다. 이게 만만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음식도 편식을 하면 질병의 타깃이 된다. 그 좋은 운동도 한쪽으로만 편향되게 하면 오히려 몸을 해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만만’하게 사는 것은 신앙적으로나 삶 적으로나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만만하게 살지 맙시다.”

어떤 성도들은 그렇게 설교 말씀‘만’사모한다. 말씀을 사모하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이겠냐 만은 말씀‘만’사모하는 나머지 유튜브에서 세상 모든 설교를 다 듣고 은혜를 받는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거다. 말씀‘만’사모한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도‘만’한다. 예배 시간에 찬송도 안하고, 설교에는 관심도 없고, 봉사나 헌신은 외면하고, 매일 몇 시간씩 기도‘만’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렇게 봉사‘만’한다. 봉사하느라 예배를 못 드린다. 봉사하느라 항상 예배에서 일찍 나온다. 주구장창 봉사 ‘만’한다. 어떤 이들은 교제‘만’한다. 예배는 지루하고, 봉사는 힘들고, 그냥 함께 모여서 노는 것만 좋아한다. 교제‘만’한다.

어떤 이들은 교사‘만’한다. 교사하면서 아이들과 정말 잘 지내는데 예배 시간에는 볼 수가 없다. 교회의 다른 행사에는 볼 수가 없다. 항상 교사‘만’한다. 누구는 성가대‘만’한다. 누구는 이것‘만’한다. 누구는 저것‘만’한다. 이게 만만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음식도 편식을 하면 질병의 타깃이 된다. 그 좋은 운동도 한쪽으로만 편향되게 하면 오히려 몸을 해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만만’하게 사는 것은 신앙적으로나 삶 적으로나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만만하게 살지 맙시다.”

‘도도’하게 살자
앞서 ‘만만’하게 살지 말자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린 분이라면 ‘도도’하게 살자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 ‘찬양, 말씀, 기도, 봉사, 헌신, 교사, 성가대……’ 기타 수많은 교회의 은혜 받는 자리와 직임과 직분과 사명과 헌신의 영역들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열심히 찬양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각종 매체를 통해서 드라마나 영화 보는 것보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귀한 일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 따라서 열심히 기도 생활하는 것은 내가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붙잡아야 할 일이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교사로서, 성가대로서, 여러 곳곳에서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정말이지 하늘의 상급을 쌓는 일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각각 다 귀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만’이 붙는 순간, 아름다운 것도 편협한 것이 되어 아름답지 못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도’가 붙으면 작은 것도 큰 축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찬양‘도’, 말씀‘도’, 봉사‘도’. “저 권사님은 찬양‘도’ 열심히 하셔.” “그래? 봉사‘도’ 열심히 하시던데?” “내가 보니까 기도‘도’ 많이 하시던데?” ‘도도’하면 칭찬받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에서 바라보기에도.

언제까지 나 자신의 편협함 속에, 나 자신의 기준만 세우고, ‘만만’하게 살 것인가? ‘만만’하게 살면 사단 마귀가 우습게 본다. 세상 사람들도 우습게 본다. 공격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도’하게 살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한다. 우습게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믿는 자로서, 바른 신앙인으로서 ‘도도’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