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전에 아부지 발에 무좀 계셨죠?”
“에구~ 아들아! 무좀은 계셨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하는 거야.‘아버지, 전에 아버지 발에 무좀 있다고 하셨죠?’ 하고 말이다.”
얼마 전에 방바닥에 앉아 발을 살펴보다
“어? 발에 무좀이 생겼나 보네?” 하고,
아내에게 한 말을 아들이 들었는지
문을 살며시 열고 조심스레 아들이 묻습니다.
“아부지, 전에 아부지 발에 무좀 계셨죠? 제 발바닥에도 무좀이 계셔요.”
40년 전, 이 땅에 초기 이민자(?)로 온 어르신 부부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어르신에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데 어릴 때 데리고 이민을 온지라 세월이 많이 흘러도 한국말이 어눌합니다.
특히 이 존댓말이라는 것이 심플하게 쓰는 영어에 비해 아이들이 골라 쓰기에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분명 아버지가 무좀이 있다고 하신 걸 들었기에
당연히 어른께 존댓말을 써야 예의다 싶어 말씀을 드렸는데 그게 아니라 합니다.
여간 헷갈리게 아닙니다.
“아버지, 아버지 지갑에 돈 계시죠?”
“에구~ 아들아! 돈 계시죠? 가 아니라 돈 있어요? 라고 하는 거야”
분명 아버지가 아버지 지갑에 돈 있다고 하셔서
“돈 계시냐?”고 물었는데 왜 그게 틀리냐구요?
갈수록 더 헷갈립니다.
언제 “계셔요?” 해야 하는지…
언제 “있어요?” 해야 하는지…
말하면서도 헷갈립니다.
우리 교회에 유치원에 다니는 지후라는 녀석이 있습니다.
한국말이 늦다고 무척이나 모두가 걱정을 했었습니다.
“평생 말하고 살건데 좀 늦으면 어때?”
주위에서 말은 그렇게 해주지만 엄마에게는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 가면 영어를…
집에 오면 한국어를…
엄마의 노력과 열심으로 드디어 한국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중얼중얼 영어, 한국어 섞어 쓰는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와 보니 회사에 가 있을 아빠가 집에 와 있습니다.
아빠가 너무 반가웠던 지후!
머리를 푹 숙이며 인사를 합니다.
“아빠! 유치원에서 지후 오셨습니다아~.”
이런 이런, 지후 지가 오셨다는데 아빠가 어쩌겠습니까?
“오호~ 우리 지후 오셨구나? 잘 다녀 오셨어?
지후아빠,
유치원에서 오신(?) 지후를 번쩍 안고
뽀뽀해주고 이뻐해주고 업어주고 비행기 태워주고
난리가 났습니다.
나도 지후처럼 하나님 앞에 이쁜 짓 좀 해보려는데
그게 맘대로 안되지 말입니다.
돈이 계시다고 하든,
무좀이 계시다고 하든,
내가 오셨다고 하든,
말의 헷갈림,
사람의 헷갈림,
인생의 헷갈림 속에서 살아간다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날 보고 헷갈리지 않으시게
잘 살아야겠다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