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복도에서 쏙안(남, 12세)의 아버지를 만났다. 품에는 낳은 지가 두어 달 보이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다. 누구네 아기인지를 물어보려다가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쳤다.
한참이나 보이지 않는 쏙안이 생각났다. 우리 교회에서 봉사하는 교사에게 쏙안의 근황을 물어보았다. 쇼킹한 얘기를 듣고는 한창이나 멍을 때린다.
쏙안이 사찰(절)에 있단다. 왜 사찰(절)에 있는지를 물었다. 작년에 코로나 19가 창궐할 때는 쏙안 아버지의 말로는 쏙안이 시골 갔다고 했다. 그런데 사찰에는 왜 있다는 것이야. 교사가 전해 주는 말이다.
쏙안이 시골로 간 것이 아니라 동자승(절에서 스님이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출가하여 수행을 하는 어린아이를 말한다)이 되었단다. 지금까지 길러주신 분들은 양부모님들이다. 살짝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평소에 쏙안의 부모님들을 보면 얼굴도 잘생기고 피부색도 희었다.
그런데 쏙안은 토착민처럼 얼굴도 검고 체격도 왜소했다. 외모가 부모님들과 영 달랐다. 어찌 된 일인가 했는데 그랬구나. 쏙안은 양자로 입양된 아이였다. 작년에 안보인 것은 파양(양자 관계를 끝내는 의사결정)되어서 양부모 가정을 떠난 것이었다.
쏙안의 성씨는 쎄잉이고 열두 살 된 남자아이이다. 빵과 치킨을 좋아해서 먹고 싶다고 했다. 장래희망은 경찰이다. 공부방이 열리는 아파트의 5층에 살았다. 예배 참석은 언제나 1번이다. 성격은 밝고 명랑한 편이다.
지인이 절에서 만난 쏙안은 동자승들 틈에 끼어서 눈인사를 보내왔다. 헤어질 때 어렵사리 꺼낸 그의 말은 “나, 보레이 게일라에 가고 싶어요.”
쏙안은 양부모에게서 버림 받고 절로 보내졌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양부모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보다. 버림 받은 쏙안, 불쌍한 쏙안, 네가 불쌍해서 어쩌냐. 마음이 넘 아프다. 너를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자책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미안하다, 쏙안. 지금은 너를 만나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코로나 19 펜데믹이 해제되면 네가 좋아하는 빵과 치킨을 안고 너를 만나러 가마(ㅊ 선교사의 사역 노트에서).
캄보디아는 국민의 95%가 소승불교(Theravada Buddhism)를 믿는다. 나머지 5%는 이슬람교, 기독교(베트남인), 힌두교 등이다. 1993년부터 불교가 국교로 채택되었다.
국교가 불교인 나라에서 우리의 용맹한 선교사들의 약진이 놀랍기만 하다. 140여 년 전, 조선에 상륙하여 선교사역에 매진했던 선교사들도 지금처럼 꼭 같은 심정과 선교상황이라고 짐작된다.
흔히 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두 갈래로 나뉜다. 대승불교는 북방불교라고 하며 이타적인 가르침으로 중생을 구제함이 목적이다. 대승불교에서 캄보디아의 불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소승불교, 남방불교라고 칭함이다. 자신의 해탈을 구하기 위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계율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불교로서 자신을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자승도 절에서 일반 승려들처럼 삭발을 하고 엄격한 수행을 견뎌야 한다. 어린이들이라서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동자승 중에는 어렸을 적부터 불교에 뜻을 두는 아이들도 있다. 대부분의 동자승들은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이들, 전쟁이나 전염병 때문에 부모를 잃고 죽어가는 아이들, 가난이나 기타 사유로 부모가 아이 키우는 걸 포기하고 절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이들을 승려가 주워다가 동자승으로 키운다.
그놈의 가난이 웬수인 것이다. 자기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절로 가게 된 쏙안을 생각하니 측은하고 가엽다. 캄보디아 프놈펜만 해도 이런 쏙안이 많다는 ㅊ 선교사의 한숨 섞인 대답이다. 제2, 제3의 절로 가는 쏙안을 방지할 방안을 물어본다.
“학사(學舍)를 세우는 겁니다. 일종의 기숙학교입니다. 어린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며 학교에 보내는 겁니다. 마음은 있어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쏙안 같은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쏙안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종료되면 쏙안을 만나러 절에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