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깊고 넓고 높음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

유명종목사<12광주리>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는 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매 순간 고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자발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학대학에 진학하던 1990년, 합격통지서를 받으러 갔는데 신학과 학회장이 입학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성경을 1독하고 오라고 해서 그때로부터 성경통독이 시작되었다. 그전까지 이곳 저곳 읽고 싶은 대로 읽거나 성경퀴즈대회를 위하여 읽었기에 제대로 통독을 못하였던 것이다. 신학교에서조차 성경을 읽기보다 많은 신학서적과 경건서적을 읽느라 성경은 설교를 하고 묵상을 하는 것으로 읽기를 대신하곤 했다.

나에게 성경 읽기에 경종을 울려주는 계기가 된 만남이 있다. 신학대학 1학년 개강수련회에 강사로 오신 현 내수동교회 박희천 원로목사님(90세)께서는 유학 시절인 1968년부터 시작한 하루 4시간씩 성경 읽기에 더욱 열정을 쏟으셨다고 한다.

“주일 강단에서 힘있는 설교를 하려면 성경 본문을 최소 하루 4시간씩 읽지 않고는 안 됩니다. 은행에 예금을 해야 찾을 돈이 있듯이 성경을 예금해놓아야 말씀을 찾아 쓸 수 있지요.” 하시며 바쁜 담임목회를 하시면서도 철저하게 실천하신 분이시다.

책상에 앉을 때와 일어날 때 시간을 적어서 취침 전 그날 책상 앞에 앉았던 시간을 계산해보고 모자라면 마저 채우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한다.

그 계기로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신대원에 들어가기 전인 1996년부터 1997년 말까지 내수동교회에 다니며 박목사님의 설교와 목회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에 나갈 때마다 박목사님을 찾아 뵙고 있다.

뉴질랜드로 출발하기 전인 2000년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박목사님을 찾아갔을 때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죄송합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담임목회를 하던 때는 하루에 11시간30분을 책상에 앉아서 성경도 보고 말씀연구도 하였는데 이제 은퇴하고 나서는 하루에 8시간30분 정도 밖에 못 앉아 있게 되더군요.”

그러시면서 흰 백지에 삼각형을 그려 놓으시고 삼각형 안쪽에 점을 찍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여기 이 삼각형이 하나님을 계시하신 성경말씀인 태산이라면 이 점은 바로 제가 조그마한 삽으로 한쪽 귀퉁이에서 깔짝깔짝하고 있는 거랍니다. 뉴질랜드에 가셔서도 부지런히 성경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조언해 주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신학교 3학년 때, 한 번은 교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아무도 없을 때마다 큰 소리를 내며 성경을 읽어가고 있었는데 창세기부터 시작되어 그 날은 신명기를 읽어가고 있을 때였다.

내 목소리로 읽고 있는데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내 백성아 돌아오라. 돌아오라 내게 돌아오라” 라고 하시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울리는 음성을 듣고 바닥에 엎드려 통곡을 하며 회개함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문자로 되어 있는 성경말씀이 마음과 심령을 울리는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그 뒤로 성경읽기가 더욱 수월해졌다. 아니 더욱 자발적이 되었다. 지하철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달고 오묘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씩 조금씩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며 성경시험을 통과해야 하기에 성경을 읽고 또 읽고 하다가 어느새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성경읽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읽으려고 한때도 있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발달된 때에는 무거운 성경을 들고 읽기보다 핸드폰 하나면 각종 여러 버전의 성경을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다만 밑줄을 긋고, 하이라이트를 하고 느낌을 적어 놓는 것을 하는 맛이 줄어든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럼에도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 폰의 이점이 분명히 있다.

작년부터는 교회에서 목장 별로 성경읽기를 위하여 하루 10장씩 읽어가며 은혜가 된 구절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올리며 서로 격려하고 함께 통독 하기를 시작하여 교역자들도 함께 읽어나가고 있다.

하루의 분량을 다 읽지 못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음 분량으로 넘어가지 않고 기다렸다가 같이 다음으로 넘어가게 하니 서로에게 자극도 되고 부담을 가지고라도 성경을 읽게 되니 이 또한 좋은 방법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작년 한 해만 3독을 하게 되었다.

나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지금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25년 전부터 힘들고 바쁜 일을 하시면서도 집에 오시면 쉬거나 TV를 시청하기보다 큰 노트에 성경을 쓰셨던 아버지이셨음을 기억한다.

신약을 다 필사하시고 구약을 쓰시다가 몇 해 전부터는 중단하고 계신다. 요양원에 계시는 동안 다시 성경 필사를 시작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필사하신 성경을 꼭 유산으로 물려받고 싶다. 완성된 필사본 성경이 아니어도 아버지께서 쓰다 중단한 곳에서부터 내가 필사를 이어가고 싶다.

인생의 무게로 평생 고생하신 울퉁불퉁하신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옮겨 적느라 생긴 손가락 사이에 펜을 잡은 자리의 굳은살이 얼마나 그리운지… 만져 보고 싶다. 그리고 기억이 사라져 가시는 아버지께 빠른 시일 안에 직접 찾아 가서 멈추셨던 성경필사를 다시 시작하시라고 부탁드릴 것이다. 성경을 한자 한자 적으면서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는 아버지가 되길 소망해본다.

계속해서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성경 번역본, 스마트 폰 성경 어플, 성경통독 mp3, 영상들이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통로가 되고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문화에 점령당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골리앗과 같은 위협과 비난과 핍박과 유혹을 넉넉히 당당하게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는 작은 물매 돌들을 준비하는 세대가 되었으면 한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음 세대를 무장시키고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힘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목사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기보다 내게 주신 생명의 말씀을 아직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고, 듣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고,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러브레터이자 모든 인생들의 매뉴얼인 성경을 가까이 하게 하고 싶다.

얼마나 달고 오묘한 말씀인가를 부지런히 알리는 일에 남은 평생을 힘쓰고 애쓰고 매진하려 한다. 나 먼저 그 말씀의 깊음과 넓음과 높음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길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