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을 맞으며 뉴질랜드에서 인도교회 출석

필자 부부는 안식년을 맞아 2001년 피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의 음대 입학을 위하여 ‘오클랜드’를 방문했다. 딸은 ‘오클랜드’ 음대에 진학하고 필자 가족은 현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에는 같은 교단인 총신 신대원에서 파송된 GMS 사역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필자에게 뉴질랜드에서의 사역을 권면했다. 필자는 파송 받은 기관들인 총신 신대원과 한국 대학생 선교회와의 협의 후 뉴질랜드에서 사역하게 되었고 계속 인도 교회를 섬겼다.

그 교회는 ‘비풀’ (Vipul) 인도 목사가 담당하는 ‘All Nations Church’로 필자는 목사님의 주일 설교 때에 한인들을 위해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했고 인도인들을 위한 전도를 담당했다.


필자는 55세로 영주권도 받게 되었는데 이 때는 영주권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해였고 지금은 80세가 넘어 복음 전파에만 시간을 쓰고 있다.

인도인 가정의 첫 전도 결실
인도교회 사역 중 필자 부부는 한 인도인 가정을 방문했다. 남편 ‘만모한’은 피지에서 대학의 교수로, 부인 ‘쉘리’는 고등학교 ‘힌디’ 교사로 있다가 이민 온 가정이었다. 필자가 그 가정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부인이 산부인과에 해당하는 병이 있어 수술을 권유 받았으나 두려워하던 때였다. 또 관절염으로 손이 아파 설거지를 못한다고 했다.

만모한 인도가족의 주님 영접

필자는 부인되는 ‘쉘리’에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을 주신다고 하면서 우리 부부가 3일간 아침 금식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필자 부부는 집에 돌아가 주님께서 부인을 치료해 주시어 주님을 믿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금식기도가 끝나는 2002년 4월 12일 금요일 필자는 그들이 보고 싶어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집안은 잘 정리되었고 집안에 변화가 온 듯했다. ‘쉘리’는 자궁에서 하혈이 멈추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하며 기뻐했다.


필자 부부도 함께 기뻐하면서 필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두 부부에게 예수님을 소개했다. 그 때 남편은 자신들의 종교인 ‘힌두교’를 나타내면서 자신의 철학을 내세웠다. 그 때 ‘쉘리’는 남편에게 논쟁하지 말라고 했다. 필자는 용기를 얻어 사영리 책자로 ‘쉘리’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쉘리’는 주님을 영접하는 부분에서 잠시 머뭇거렸는데 이 때 남편은 또 하나님은 ‘힌두’를 통해서도 일하신다고 하여 멈추게 되었다.

부인은 다시 남편에게 논쟁하지 말라고 남편의 이야기를 막았다. 필자는 용기를 내어 다시 사영리를 계속하여 ‘쉘리’는 결국 주님을 영접했다. 그 날은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귀한 날이었다. 그리고 교회에 가기로 약속을 하면서 ‘쉘리’는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한 친구처럼 말했다.

며칠 후에는 ‘쉘리’ 가정에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에 전화를 했는데 남편이 매우 반갑게 전화를 받으며 ‘쉘리’의 병에 대해 설명했다. 어제 아내 ‘쉘리’가 병원에 가서 (5월 17일) 초음파 검사하고 진찰을 받았는데 주치의가 검사 결과를 보고 놀라며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고 했다. 자궁의 혹이 줄어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하며 수술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하혈과 통증은 완전히 멈추었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기도해서 나았다고 말했다. 필자는 다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설명하면서 교회에 가기를 권유하니 흔쾌히 승락했다. 그래서 다음 날인 5월 19일 주일에 ‘쉘리’ 부부와 두 딸을 포함하여 한 가족 4명이 같이 교회에 가게 되었다.

‘만모한’씨 가족은 예배 후에 설교 내용을 다 이해한다고 했다. 필자는 성경도 주고 ‘힌디’로 된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주면서 늘 읽으라고 하니 벽에 붙이겠다고 했다. 주님은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심을 다시 깨닫는 날이었다.

이란인들의 주님 영접
2002년 6월 16일 인도교회에 처음으로 나온 한 이란인 가정이 있었다. 남편의 이름은 ‘러셀’인데 영어가 서툴고 ‘페르시아’ 말인 ‘팔시’를 썼다. ‘팔시’는 ‘우르두어’ 글자와 같으나 의미와 발음이 많이 달랐다. 의사 소통이 좀 어려웠으나 영어와 ‘우르두어’ 글자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다. 그의 마음은 매우 순수해서 영어로 조금씩 대화하면서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후에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러셀’은 교회에 나왔어도 한 달이 넘도록 부인 ‘파라’와 자녀들은 나오지 않았다. 부인 ‘파라’는 ‘이란’에서 학교 교사였으나 영어를 못한다고 했다.

필자 부부는 그 가정을 심방하면서 가족 전도를 위해 부인에게 사영리로 전도하기를 시도했다. 12세의 큰 딸 ‘록사나’는 영어를 할 수 있어 ‘팔시’ 사전과 이란 성경을 대조하면서 큰 딸이 도와주어 사영리를 나눌 수 있었고, 후에는 부인 ‘파라’도 예수님을 영접했다. 부인은 기쁨이 있었고 다음 주일인 8월 11일에는 온 식구들이 교회에 나왔다.

러셀 이란가족의 주님 영접
그 후 필자 부부는 그 가정을 또 방문했는데 부인은 말하기를 자신은 영어로 대화하기 어렵고 이 곳에 적응하기가 힘들어 이란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이란에서 산다는 것은 더 어려운 삶이 될 것이었다. 필자는 영어 성경 세 권을 주고 두 주 후부터 요한 복음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큰 딸을 포함하여 온 식구들은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 그들은 사전을 찾고 노트에 기록하면서 공부한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발음을 익히려고 다시 읽어 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발음이 이란 식의 형태로 고정되어 부인 ‘파라’는 정확하게 발음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필자 부부는 그 집을 방문했을 때 남편은 없었고 ‘파라’의 친구인 ‘후루쓰’가 놀러왔고 딸이 같이 요한복음을 공부했다. 친구는 같은 이란인으로 온 무슬림이었으나 요한 복음을 잘 따라했다.

‘파라’는 친구 ‘후루쓰’에게 이란 말로 설명을 했고 또 예습도 하여 단어들을 ‘팔시’로 적어 놓았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여 12월에는 3장까지 공부했고 필자 부부는 그 마음을 보면서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