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앤(Ann) 별나라에서 만나요

오래간만에 그리운 고국 한국에 출타할 일이 생겼다. 며칠 전부터 아니 몇 주 전부터 나는 들떠있었다. 커다란 군청색 트렁크를 꺼내놓고, 하나씩 선물을 사다 나르기 시작한다. 한국에도 세계의 상품이 다 들어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서 친지들, 친구들을 만났을 때 주고 싶은 Made in New Zealand의 선물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뉴질랜드 천연꿀은 알아준다. 문제는 이 꿀의 무게 때문에 고민이 생긴다. 대개 일반석 한 사람에 수화물 1개 20kg이다. 이사람, 저사람 꿀 몇 개 넣다 보면 금방 중량이 초과된다. 아무튼 선물용 꿀 때문에 짐 싸는 일이 보통 머리 아픈게 아니다. 부스럭 부스럭 싸놓았던 짐을 다 시 풀었다가 싸고, 넣었다가 빼본다.

다시 저울질 해보고 또다시 재어보고…. 몇 kg이 초과되었나? 부스럭대는 소음에 잠이 달아나버린 로이가 부스스 방에서 나오더니 한마디 일침을 놓는다.
“수화물 1인당 20kg이 정량이면 18kg까지만 짐 싸요. 큰 가방을 뭘 그리 쌌다 풀었다 합니까? 승객 한 사람이 1kg만 넘어도 400명 타는 승객 크기의 항공이라면 400kg이 초과됩니다. 또 만약 1인당 3kg이 초과한다면 400명이면 1200kg이 넘어요. 과도한 선물 욕심 내려놓고, 항상 항공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도 중요합니다. 친지나 친구를 만날 때 그래도 Made in New Zealand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아요. 더구나 해외 이민 나와 살면서 모처럼 고국을 방문할 때 덜렁 빈손으로 못가요. 입만 가지고 반갑다 반가워요…. 이런 인사 안통해요.”

나도 대꾸 한마디 던진다. 모처럼 귀국하여 친지나 친구들을 만날 때 선물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곧 우리의 ‘정’의 문화일 것이다. 아니면 일종의 과한 나의 욕심인가? 이고 지고 끌고 가려는 내 모습이 시골 할머니의 모 습이려나?

나의 시누이 앤(Ann)
꿈을 안고 무작정 도전, 무대포 결혼, 이민! 정보도, 지식도 없이 온 나라 뉴질랜드, 스물여섯 해 살아온 내 나라 한국, 부모, 형제, 친구 다 버리고 온 나라. 시댁 식구들과 정붙이고 살면 되겠지…! 시부모 루시와 오스왈드, 형 피터, 그의 부인 로라, 여동생 앤, 그의 남편 필립. 나의 새신랑 로이와 함께- 이렇게 7명이나 된다니까!

처음엔 아무 어려움이 없는 듯했다. 아예 뭐가 뭔지 모르니까…. 막연 한 기대, 희망, 꿈, 꽃길만이 나를 기다릴 듯이…. 그러나 2년이 지나갈 무렵 하나 둘씩 쌓여 가는 답답함, 막연한 불안…. 신랑 로이는 항상 조용한 성품에 별로 말이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는 것인지? 무슨 실수를 하는 것인지? 음식 장만? 육아? 영어? 자주 아픈 그의 건강, 수술…. 큰아들 출산 후 원인을 찾고자 하는 대여섯 번의 나의 수술, 매달하는 수술에 지쳐 몸과 마음이 꼭 죽을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해야지…. 그러나 몇 안 되는 교민들에게 내 속 마음을 털어놔 봐야 내 얼굴에 침 뱉기지…. 그렇다고 한국의 친정 식구들에게 긴 편지 써봐야 걱정만 끼칠 테고…. 아~! 어떻게 하지?

시누이도 내 마음 몰라주네
‘옳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시누이 앤에게 털어놔야지…. 앤은 나를 이해 해주겠지! 식구니까! Family니까!’ 어느 날 지방 도시 뉴풀리마우스에 사는 시누이 앤에게 시외 전화를 돌렸다. “앤! 당신 오빠 로이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말을 잘 안 해요. 너무나 답답해요. 어쩌고저쩌고….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따다다다…. 따다다다….” 따발총 쏘듯이 퍼부었다. 내친김에 감정에 복받친 내 영어가 말이 제대로 됐을리가 없다. 문법은 더더욱 엉망이었을 것이고….

그런데, 정색한 목소리로 앤에게서 돌아온 답은,
앤: what? 경숙! 네 개인 얘기를 왜 나에게 하냐? 누가 너를 뉴질랜드에 오라고 했냐? 네가 원해서 온 것 아니냐?
경숙: (나의 반격) 뭐라고요? 당신은 내 시누이고 가족이잖아! 가족은 기쁠 때, 슬플 때,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니야?
앤: 너의 얘기를 왜 내가 들어야 하냐?
경숙: 뭐라고요? 가족의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지워버리겠다. 앞으로 내가 두 번 다시 당신을 만날 일이 없을 거다. 아마도 당신의 오빠(로이)나 당신의 장례식에서나 볼 것이다. 그리고 “팍” 시외 전화를 끊었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고국, 친정 식구들, 친구 모두를 뒤로 하고 떠나 왔는데, 시댁 식구들과 “정” 붙이고 살아야지… 하던 나의 꿈, 기대는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내가 앤에게 바랐던 것은 무엇을 도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I understand(이해해)…. ‘경숙, 새로운 나라에 와서 적응하느라 힘들 것이다’라는 조그마한 이해라면 충분한데…. 그것 조차 들어주려 하지 않는 그녀…

이게 뭐지? 그 이후로 나는 매년 그녀에게서 오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외면해 버렸다. 융통성이 빵점인 로이는 내가 왜! 앤의 카드조차 안 열어보는지도 몰랐을 거다.

나도 개인적 얘기는 하지 않겠다
1996년 남편은 중병으로 1차 대장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의 실수였는지? 1차 수술이 실패하고, 2차 수술에 들어갔다. 생존 가능성이 1%도 안된다고 했다. 다시 3차 수술에 들어갔다. 너무나 위급한 상황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시누이 앤은 어떻게 알았는지 뉴풀리마우스에서 15년만에 시외 전화가 걸려 왔다. 로이의 중증 상태가 어떻냐고? 나는 모르겠다 하고 궁금하면 노스쇼어 병원에 직접 문의해보라고 했다. 병원 측은 그녀에게 로이의 여동생이란 증명을 할 수 없기에 환자 상태를 말해줄 수 없 으니 그의 아내 경숙 월슨에게 물어보라고 했다며, 다시 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의사가 아니어서 정확히 모른다고 하고 끊었다. 그녀의 궁금증에 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속으로 내 마음은 ‘그렇게 걱정이면 오클랜드까지 장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병원을 방문하든가….’ 15년 전 내가 그렇게 뉴질랜드 생활이 힘들다고…. 시누이라고 내 마음을 털어놓고 하소연할 때…. 당신이 내게 그랬지 “경숙 왜 너의 개인 얘기를 자기한테 하느냐고?”

“가족이란 게 기쁠 때, 슬플 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들어주고, 이해하고 서로 같이 나누는 것이 가족 아니냐고!” 말했지…. 그런데 그때 당신은 듣기조차 안하려했잖아. 그래서 가족의 구성원에서 당신의 이름을 내가 지워버리겠다고 했지요…. 나는 그렇게 나 자신한테 한 약속을 지켰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이 땅에서 뿌리내리고 견디었어야 하니까….


앤의 장례식, 조카들과의 대화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10년 20년 30년 40년…. 이제 앤도 로이도 80대 노인이 되었다. 2018년 우리 아이들이 Aunty 앤에게 아빠의 장례 소식을 알렸다. 이젠 그녀의 건강이 나빠서 장례 참석이 어렵다고 그녀의 딸들과 조카들이 왔다. 내가 처음 이민 왔을 때, 앤의 딸들인 Lee와 Kay가 10살 정도 소녀였는데 이제는 50대 뚱뚱한 아줌마가 되었다. 결국 앤은 그녀의 오빠 로이의 장례식에 오지 못했다. 앤도 이제 너무 늙어서….

2020년 2월 Aunty 앤이 돌아가셨다고 전갈이 왔다. 아이들과 같이 뉴풀리머스에 갔다. 그날따라 질척질척 내리는 비…. 더욱 씁쓸한 생각이 든다. 장례를 치르고 이튿날 앤의 딸들과 같이 아름다운 공원 산책을 나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처음으로 조카인 kay에게 털어놓았다. 40여 년간 쌓였던 나의 마음속의 “한”을…

수십 년 전 너의 엄마 앤에게 퍼부었던 그 얘기…. 그때는 나도, 너의 엄마도 동·서양의 문화충격을 이해 못 하였던 점…. Kay는 교사이기에 자기 반에도 동양인 학생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동양문화를 이해 하려고 노력한다고….

앤과 필립의 정원, 별나라의 소망
지금까지 앤이 살아있다면…. 이제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앤과 그녀의 남편 필립의 집에 엄청 커다란 연못이 있다. “저 연꽃 이름 이 뭐예요? 어머나 이쁜 금붕어도 있네요.” 또 저쪽엔 수백 가지의 난꽃 (Orchid). 취미로 가꾸지만 난꽃 화원 정도의 수준이다.

지금도 선물로 받은 난꽃 화분 하나 관리 못 하는 내가 앤에게 물어볼 게 많을 것 같았다. “난꽃은 어떻게 키워요? 무슨 영양분을 줘야 해요? 꽃이 너무나 이쁘네요…. 난꽃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나요?” 그녀의 남편 필립은 전복을 잡아 온다. 전복 알맹이는 싹 도려내어 버리고 껍질만 깨끗이 씻어서 진열해 놓았다. 전복을 먹는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커다란 정원에 채소밭은 없다. 채소에 관심이 없나 보다.

그들의 일상생활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 뿐…! 오늘은 무슨 난꽃이 피고, 무슨 연꽃이 피고, 이쁜 새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식구 개와 고양이와 놀고, 돌보며, 산책하고….

뭐 그렇다고 지금 내가 마음이 넓어져서 시댁 식구들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세월이 가고….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은 자연을 돌아볼 수 있는 만큼의 나이? 늙어서 그런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레 조금씩 나 스스로 터득한 것 같다.

먼 미래에 시댁의 고향 영국도 아니고 내 고향 한국도 아니고 우리가 만난 뉴질랜드도 아닌 새로운 세계 “별나라”에서 만나요. 시부모님 루시와 오스왈드, 남편의 형제부부 피터와 로라, 여동생 부부 앤과 필립. 남편 아니, 끝내 아빠로 부르던 로이, 경숙과 함께 윌슨네 식구 다같이 오손도손 함께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