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좋을 때 함께 웃고, 힘들 때도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주며, 나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며,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진정한 친구.

며칠 만의 만남을 통해서도 평생 친구가 될 수 있고, 오래도록 알았지만 그저 아는 사람인 경우도 있다. 친구 관계를 정의할 때 얼마나 자세히, 또는 오래 알아 왔는가로 정의할 수는 없다. 친구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의 차이도 있지만 시대와 함께 친구라는 관계의 형태가 변화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청년 사역을 하면서 친구의 스펙트럼이 변하는 것을 본다.

시대적 친구에 대한 다른 양상을 들여다보자
공동체적 관계의 성향이 강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친구는 같은 학교, 같은 동네, 같은 직장, 같은 교회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관계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함께한 역사가 있다. 오래 알고 지낸, 같은 시절을 함께 보낸,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서로의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거나, 같은 동네에서 자랐거나, 학창 시절, 직장, 교회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거나, 결혼이나 자녀의 성장을 알고, 어려울 때 곁을 지켜주었거나, 혹 갈등이 있었을지라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해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친구란 함께 해 온 공동체의 일부다.

X세대에게 친구는 조금 다른 의미다. 세대가 변하면서 공동체 중심 문화에서 개인의 독립성과 사생활이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를 공유할지라도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될 수 있고, 도려 잠시 만났던 사람도 나와 생각을 공유했던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아도 다시 만나면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할 수도 있다. 그러니 외부에 의한 의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친구를 만들게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떤가. 인터넷과 함께 성장하면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되어,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서 어느 지역에 있든, 어느 나라에 있든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공통의 관심사와 가치관, 또는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친구가 되었다. 같은 음악을 즐겨듣고,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고,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나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 위주로 친구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얼마나 서로에 대해서 아느냐보다는 특정 부분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Z세대는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쉽게 많은 관계가 생기면서 굳이 가까운 관계가 없이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삶에 대해 알기보다는 서로를 존중해 주는, 즉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며 그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알파 세대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이전과는 꽤 다른 양상을 보인다
Z세대만 해도 여러 플랫폼을 통해 얕고 넓게 아는 친구들이 많은 것을 선호했고, 친구를 만들거나 함께 어울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온라인이 기본값이 되어 자라온 알파 세대에게 친구란 깊이 있는 만남과 관계 형성보다는 단순한 모임에 좀 더 방점을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친구들과의 잦은 만남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프렌드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카톡이나 페이스북에 자동으로 알리는 생일 알람도 꺼놓는다. 무리한 외식비나 선물, 여가비의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남을 자제하고, 주로 온라인으로 소통하다가 가끔 만나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소소한 엑티비티를 즐긴다. 불편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다음 세대는 피곤한 만남은 피한다. 서로 적당히 관계하고, 적당히 간섭한다.

독서, 요리, 러닝 등 이색적인 취미 생활을 위한 만남, 경도 놀이(경찰과 도둑 형식의 술래잡기)와 같이 게임만 즐기고 헤어진다거나 이름이나 신상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취향 하나로 낯선 사람과 가볍게 부담 없이 연결되는 것을 추구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콘텐츠가 중요한 것이다. 이런 삶은 얼핏 여러 취미 생활에 참여하고, 자신을 잘 돌보며, 간편하고 효율적인 만남이 건강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의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

기성세대들에게 센세이션이었던 친구라는 영화에 “친구 아이가!의 명대사가 의미하는 힘든 시간을 같이 견뎌온 전우애 같은 우정을 볼 때 그 친구의 친밀감과 영향력이 꽤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해도 친구의 필요성과 영향력에 대해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관계의 측면에서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15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가가 아버지가 알려준 것을 다 나누는 친구가 되어준 것처럼 서로의 인생을 알고, 나누고, 하나님의 뜻이 서로의 삶 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함께 경험하는 친구가 다음 세대도 필요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 세대 역시 서로 진심인 진정성을 가진 진짜 관계를 찾고 있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성이 있는 관계가 드문 것은 관계성을 발전시켜 나갈 물리적 장소가 사라지고, 사회성의 결여도 한 몫한다. 그 진정성 안에는 때로는 서로를 단련해 주는 조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인데 상대를 존중한다는 명목하에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다음 세대에게는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이 시대에 진정성 있는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까?
지금은 특정한 사람이 아닌 연결된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이, 학교나 공동체를 통해 취미 생활을 공유하며, 서로 공감대가 있어서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또래도 아닌, 같은 역사도 아닌, 공감도 아닌, 서로 존중하는 사이도 아닌, 그 누구나 말이다.

친구에 대한 사전적, 시대적 정의가 있지만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성 있는 친구란 인생의 무게를 함께 들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나조차도 인생의 무게가 버거워 부담스러워하는데 함께 들어달라고 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서 함께 들어줄 수 있을까?

이는 우정을 넘어선 관계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범위가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만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만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만큼이기 때문에 진정성 있고, 영원하다. 그러니 친구로 인해 나쁜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하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 건강한 마음을 가까이서 함께 만들어가고, 삶의 무게를 함께 들어주며, 서로를 세워가는 세대가 되어야겠다.

나와 잘 맞아서가 아니라, 내게 잘 해줘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무거운 짐을 들며 동행하라고 주신 친구는 누구인지 하나님의 뜻을 궁금해하며, 진정성 있는 영원한 친구를 사귐에 있어 개인의 취향이나 같은 성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구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진정성 있는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다른 세대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고, 이해하기에 힘써야 한다. 실패했을지라도 나의 방식으로 조언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격려해 주며, 하나님이 주신 친구라는 관계를 존중하며 관계를 맺어간다면 귀한 다음 세대 친구들을 갖게 될 것이다.

내가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버리지 않는 사람, 나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무거워 피하지 않고 함께 들어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기성세대 친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를 친구라 여기고 예수님이 와 주신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