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사회에서는 이미 법과 제도의 변화 속에서 일상적인 현실이 된 주제들이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민감한 부분들로 남아 있다. 동성결혼, 성전환, 문신, 다양한 가족 형태, 안락사와 같은 이슈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사회적 논쟁을 넘어 교회 안에서 세대 간의 간격을 넓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필자가 자라난 뉴질랜드 한인교회 내의 문화에서는 문신이나 피어싱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지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조차 문신을 하고, 교회 리더들도 피어싱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신앙의 진정성과는 별개의 문제처럼 보였고 적지 않은 혼란을 느꼈다.
과연 단순한 문화의 차이인지,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말씀을 연구하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들에게 질문하며 오랫동안 씨름했다. 돌이켜 보면 그 질문은 단순히 눈에 드러나는 문신이나 피어싱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뉴질랜드 사회는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경험해 왔다. 동성결혼 합법화(2013), 안락사 합법화 국민투표 통과(2020), 전환치료 금지법 제정(2022) 등이 그 예다. 이러한 변화가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지만, 뉴질랜드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어 왔다.
세대가 바뀌면서 이러한 이슈들은 이제 우리 삶 아주 깊숙이 스며들어 왔다. 다음 세대는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 성소수자 친구를 만나고, 성전환 과정을 밟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기성 세대가 흔히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이제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는 질문을 던진다.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겪고 있는 관계와 교회에서 배운 진리가 충돌할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적용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것이다.
다음세대의 질문을 믿음 없음이나, 세속과의 타협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복잡한 환경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애써 싸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진리를 가르치고 전하는 교회로 다음세대가 질문을 던질 때, 교회는 실제 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의 질문에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대해 답하듯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가르쳐서는 안된다. 저들은 듣지만, 침묵하고 조용히 교회와 멀어질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그들의 질문에 더욱 진지해야 한다. 수많은 질문에 부지런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존세대가 성경적 가치라고 확신이라고 믿어 온 것들 가운데 문화적 관습이나 익숙함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전통으로 이어져 온 문화와 취향과 경험을 더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분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생각보다 자주 진리 자체보다 불편함에 먼저 반응한다. 이해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아서,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거리를 두거나 판단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편안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진리를 찾아볼 수 없는 교회 공동체에게서 다음세대는 조용히 떠난다.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살아가는 다음 세대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한다. 다른 의견이나 삶의 방식, 가치관에 대해 판단하고 부딪히기보다는 먼저 존중하려는 자세다.
오늘날 다음 세대에게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존엄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 귀한 가치이다. 그러나, 존중이라는 이름 뒤에 서로에게 더 깊이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절당할까 염려해 침묵하며,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볼 때는 충돌이 없고, 평화로워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이런 흐름은 외로움을 초래하고, 헌신과 성장을 제재한다.
몇달 전 동성부부 사이에서 자란 고등학생과 상담 및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이성부부 사이에서 자란 자녀 역시 여러 문제들을 맞닥뜨리지만, 평소 만나보지 못했던 이 학생과의 대화는 계속 기억에 남는다.
성에 대한 편협된 생각과 고립, 외로움, 혼란스러움에 대해 얘기했다. 부모님은 대화 내내 자녀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삶 자체로, 대화로, 집안의 분위기로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강요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일반 사회의 모습과 다르다 해서,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다. 존중이라는 것은 분명 사랑의 한 부분이어야 하는데, 그 뒤에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관계를 잃을까 하는 불안, 시대에 뒤처질까 하는 불안, 내 선택이 틀렸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은 사회적 과도기 속에서 다음세대들이 가까이서 보고 겪는 불안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경험하는 여러 이슈들을 볼 때, 우리에게는 존중을 넘어선 강요와는 다른 뜨거운 사랑이 요구된다. 진리를 문자적 해석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시킨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근원적 진리로 눈앞에 맞닥뜨린 이슈들을 재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이 제외된 판단이나, 나와 맞지 않기 때문에 멀리하거나, 함부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어느 누구라도 친분으로 인해, 사회적 흐름으로 인해 무조건 다 받아주거나, 기피 또는 혐오하는 태도는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다음 세대를 존중하되, 작건 크건 문제와 질문들을 함께 씨름하고, 들어주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오랜 시간 인내하며, 미움 받을 용기를 내며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특히 교회 공동체는 사회의 변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반박이 아닌, 이유를 묻는 다음 세대에게 사랑에 근거한 진리를 가르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다. 스스로 신념에 옳은 대로 믿도록 방임해서는 안 되며, 교회 공동체를 불편해하고 거리를 두게 해서는 안 되고, 사회와 진리 사이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채 혼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두어서도 안 된다.
다음 세대가 율법에 판단받을까, 전통에 맞지 않을까, 드려워하며 기피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 제대로 된 진리를 알고 싶어 다가오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와 신앙의 간극을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다음 세대에게 존중을 넘어선 서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다가가는 실천적 사랑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어 울부짖는 이 시대에 교회의 부르심이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