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라
바울은 많은 교회를 개척했지만 개척한 교회들과 다 관계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긴장 관계가 형성되거나 적대적으로 돌아선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는 달랐어요. 빌립보 교회만큼은 바울과의 관계가 특별했습니다.
상호 간의 신뢰와 사랑이 단단했으며 그만큼 바울 자신도 빌립보 교회에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교회의 선교 헌금은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빌립보 교회의 헌금은 거절하지 않고 받았지요.
그러던 빌립보 교회가 복합적인 문제에 당면하게 됩니다. 로마 당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공동체 안의 갈등이 불거졌고, 거짓 교사들(이단)의 훼방도 잦아진 것입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키는 문제들 속에서 교인들의 마음은 위축되어 갔습니다. 교회도 조금씩 복음의 활기를 잃어가기 시작했지요.
결국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자택에 연금된 바울이 교인들을 위해 펜을 듭니다. 편지에 기쁨을 16번이나 반복하며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떤 방해가 있어도 기뻐하십시오! 예수님과 이웃들로 인하여 기뻐하십시오! 기뻐하고 기뻐하고 또 기뻐하십시오!”
상상이 가시나요? 자택에 연금된 채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사람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바울에게 기뻐하라고 권고해야 할 사람은 빌립보 교인들이 아니었을까요?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으로 분리되어 갇혀있는 자신의 처지가 기쁨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이 갇힘으로써 복음은 오히려 더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