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adway Light 공연에 참여
2020년 3월 초, 오클랜드 배우 커뮤니티에서 이미 마감된 뮤지컬 모집 공지를 보게 되었다. Torbay Theatre에서 준비하는 ‘Broadway Lights’ 공연이었는데, 자원봉사자로라도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연락했다가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예상치 못하게 배우로 합류하게 되었다.
약 30명의 배우 중 유일한 동양인이자, 연습에도 한 달 늦게 참여한 나로서는 일을 마친 후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며 겨우 흐름을 따라가야 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 속에서 다른 배우들의 눈치를 보며 버텨야 했고, 나의 부족한 춤과 노래 실력에 스스로 마음이 무너지는 날도 많았기 때문이다.
3주 동안 겨우 춤과 노래에 적응해 가던 시점, 코로나로 인해 Lockdown Level 4가 시작되었다. 공연은 연기되었고 처음 잡은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어려움은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Lockdown 기간 머물던 집에 있던 피아노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Stars’ 노래를 반복해 연습하게 되었고, 공연이 재개되었을 때 그 곡을 팀 앞에서 부르게 되었다.
공연이 미뤄지고 3분의 1 정도의 배우들이 팀을 떠났기에, 그 빈자리에 내가 기회를 얻게 되었고, 공연의 솔로 노래 파트를 맡으며 점점 더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6주간의 Lockdown은 복귀 시점에서는 분명 ‘전화위복’이었다.
그러나 그 ‘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0년 8월, 다시 찾아온 Lockdown은 이전보다 더 큰 두려움과 낙심을 가져왔다. 공연은 또다시 미뤄졌고, 취소까지 고려되었다. 개인적인 미래에 대한 고민과 여러 마음의 어려움까지 겹치며, 그 두 번째 Lockdown은 마치 감옥과도 같았다. 바닥에서 더 높은 기대를 품고 올라왔던 나의 마음은 다시 밑바닥을 쳤고, 감사로 해석했던 첫 번째 Lockdown은 더 큰 원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뒤로도 파도처럼 반복되는 Lockdown과 공연 연습 속에서 내 마음은 동일한 상황을 감사와 원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갔다. 그리고 결국 10월 초, 8번의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나의 첫 무대였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지금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당황스러운 사건들도 많았던 공연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시절을 돌아보며 깨닫게 된다. 나는 얼마나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다르게 해석해 왔던가?
한때는 Lockdown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겼지만, 이어진 또 다른 어려움 속에서는 같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게 되었다. 감사와 원망이 상황에 따라 뒤바뀌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해석’이었음을 본다.
이 모습 속에서 요셉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의 감옥 생활을 쉽게 ‘훈련의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당시의 요셉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어린 청년이었다. 그렇기에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했던 그의 절박함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요셉은 그 반복되는 기대와 절망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 역시, 이해되지 않는 이 시간 속에서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창 40:14)
내 어린 양을 먹이라
2024년 3월 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뮤지컬 창작을 마무리하고 배우 모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디션 신청서부터 홍보까지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하며 교회와 목회자 연합회에 연락드렸고, 4월 18일부터 3주간의 모집을 시작했다. 마감 10일 전에는 청사모 사역자 모임에 초청받아 뮤지컬의 비전을 나누고 배우 모집을 부탁드렸으며, 많은 격려 속에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나섰다.
그러나 차에 오르려는 순간, 어둡고 서늘한 바람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마음 깊이 밀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났고, 이제는 누군가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집이 시작된 첫 10일 동안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최소 20명은 필요했기에 남은 시간을 생각할수록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매일 지원서를 확인하며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었고, 공연이 시작조차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입술이 터지고 마음이 무너졌다. 누군가의 선택을 간절히 기다리던 그 시간은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쇠사슬에 묶인 감옥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그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성경 말씀을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노래 레슨을 하시는 선생님께도 연락드리며 배우 모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마감 직전까지 약 10명의 지원자를 모을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은 모집 마감을 앞둔 마지막 3일 동안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추가로 10명이 지원했고, 특히 마지막 날 밤에는 6명이 한꺼번에 지원했다.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놀라웠고, 그 순간 나는 그동안 혼자 확신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던 내 모습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중 마감 당일 밤 9시에 지원한 한 자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러 뮤지컬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지만 당시 감당하고 있던 삶의 무게로 인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지원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며 두려움 속에 엎드러져 있던 시간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자매의 삶을 돌보시고 이 사역에 함께하도록 하나씩 설득하고 확신을 더해 가시던 시간이었다. 나는 나의 상황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미 각 사람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셨다.
돌아보니 나는 내 발과 몸이 쇠사슬에 묶이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다. 어둠과 괴로움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상황을 해석하려 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해석은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 뿐이었고, 결국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요셉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타국의 감옥에 갇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을 버텨야 했던 요셉. 사랑하는 아버지와 동생을 절실히 그리워했을 그는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많은 생명을 구했을 때 그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돌아보았을까?
시편 기자는 요셉의 그 시간을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시키는 시간이었다고 전한다. 쇠사슬에 묶여 있던 요셉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상황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상황을 해석하기에 바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어쩌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해석이 아니라 말씀일지도 모른다.
이해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붙드는 것. 나를 묶는 쇠사슬과 목에 겨누어진 칼 같은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 때 그분의 말씀이 우리를 단련하시고 등불이 되어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 1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