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서 시작되는 중독 예방

일상이 된 중독
“어, 지금 몇 시지? 벌써 3시야! 애들 픽업 늦었다! 어떡해…!”

점심을 먹고 잠시 합창 시간에 사용할 곡을 찾아보려 휴대폰을 들었다. 단 한 곡만 듣고 그만하려 했는데, 추천 영상 하나를 더 클릭하고, 관련 영상이 이어지고,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떠다니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조금밖에 안 봤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 있었다.

자기 전,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얼굴 위로 떨어뜨려 본 경험, 아침마다 “오늘은 커피 안 마셔야지” 다짐하지만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는 듯한 기분, 거실에서 아이를 부르면 “네~” 대답은 하지만 눈은 여전히 화면을 향한 채 떨어지지 않는 모습, 배터리가 5% 남았다는 표시만 떠도 괜히 불안해지는 마음. 이런 모습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잠이 오지 않아 매일 술 한 잔 없이는 밤을 채울 수 없는 사람,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했지만 전자담배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사람, 더 나아가 마약이나 도박에 의존하는 사람까지 우리는 지금,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중독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중독의 의미와 본질
‘중독(中毒)’이라는 단어는 본래 독(poison)에 노출되어 해를 입는 상태를 뜻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단순히 물질뿐 아니라 특정 행동이나 감정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습관이나 기호와는 다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고 했다.

중독은 바로 이 ‘얽매임’의 상태다. 하고 싶지 않아도 멈추지 못하고, 알면서도 반복하게 되는 내적 분열,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고백한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노라”(롬 7:19)의 상태, 그것이 바로 중독의 본질이다. 중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물질적 중독 (알코올, 담배, 약물, 카페인 등) 그리고, 행위적 중독 (스마트폰, 도박, 음란물, 쇼핑, 일, 운동, SNS 등)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인간관계와 사명이 왜곡될 때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속박이 된다. 잠언 25장 28절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벽이 무너진 성읍과 같다”고 경고한다. 절제가 무너질 때 인생의 성벽도 함께 무너진다.

인간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
왜 사람은 중독에 빠질까? 겉으로 보기에 중독은 단지 ‘나약함’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은 더 깊은 곳에 있다. 많은 경우 중독은 심리적 상처, 고독, 불안,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산에 오르자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출 32장). 눈앞에 보이는 무언가에 의존함으로 불안을 잠재우려 했던 것이다. 사울은 다윗을 향한 질투에 사로잡혀 평정심을 잃었고(삼상 18장),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 예수를 따르지 못했다(마 19:22). 결국, 중독은 무엇인가에 마음이 붙잡힌 ‘영적 예배의 왜곡’이다.

기독교 상담학자 에드워드 웰치(Edward T. Welch)는 그의 저서 Addictions: A Banquet in the Grave에서 중독을 ‘마음이 바쳐진 예배’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으나 하나님 대신 다른 것에 마음을 내어줄 때 그것이 곧 우상이 된다. 창세기 4장 7절은 이렇게 경고한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즉, 갈망은 다스려야 할 대상이지, 우리를 지배할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적 회복의 여정
중독의 회복은 ‘의지력’보다 ‘진실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야고보서 5장 16절은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기도하라”고 말한다. 빛 가운데 나올 때, 감추었던 부끄러움이 치유의 출발점이 된다. 그 다음은 방향 전환이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삶의 궤도를 바꾸는 결단이다.

로마서 6장 4절은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함이라.”또한 회복은 공동체적 과정이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고전 12:26). 중독의 어두운 사슬은 홀로 끊어낼 수 없기에, 교회 공동체 안의 나눔과 중보가 진정한 회복의 힘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코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확신 있게 말한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즉, 회복은 순간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내린 꾸준한 성령의 역사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절제’를 꼽는다. 그러나 절제는 억압이 아니다. 그것은 더 큰 사랑에 사로잡혀 자유를 누리는 상태다.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때, 하나님을 향한 묵상이 왜곡된 욕망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의지’보다 깊은 예배
중독의 문제를 단순히 ‘의지력’으로 해결하려 할 때 인간은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그들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 17:15,17)라고 기도하셨다. 즉, 진정한 회복은 ‘무엇을 끊을 것인가’ 보다 ‘누구를 더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의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나님 사랑의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올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재뉴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의 사명과 방향
중독은 빠진 뒤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방이 더 지혜로운 길이다. 하나님께 받은 삶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예배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재뉴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며, 실제적 중독 예방 강연을 통해 중독의 실체를 정확히 알리고 예배의 방향을 바로잡는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 강의가 아닌,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 향하는 갈망의 재정립’을 돕는 자리다. 또한 매해 초 개최되는 성경암송대회는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도록 돕는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모든 중독 예방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얽매임이 아닌 자유의 존재로 부르셨다. 말씀과 예배 속에서 마음의 중심이 바로 세워질 때, 세상은 우리를 묶을 수 없다. 스마트폰에 얽매인 마음이나 쾌락에 대한 욕망, 혹은 인정에 대한 갈망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를 다스린다. 우리의 싸움은 중독의 대상과의 전쟁이 아니라, 예배를 회복하는 싸움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모두가 말씀의 빛 앞에서 중독의 어둠을 벗어나 자유와 절제, 그리고 사랑의 삶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