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이전 7일 동안의 상상력 – 이정명,『밤의 양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서두에 수신자의 이름을 명확하게 밝혀 놓고 있다. 그 이름은 ‘테오필로스’, 이름 뒤에 ‘각하’라는 경칭이 붙은 것으로 보아 로마제국의 고관이면서도 기독교에 관하여 더 알기를 원한 지식인이었던 것 같다.

복음서와 행전을 받은 그는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의 행로를 걷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 테오필로스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를 보았다면,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기 전의 유월절 한 주간을 객관적으로 살펴본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과연 어떤 행동을 했고 무슨 기록을 남기려 했을까?

이 소설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A.D. 70년, 노경에 들어 시력마저 잃어버린 테오필로스가 무너진 돌더미 위에서 기억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으며 그해 유월절 기간 7일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꾸며졌다.

작가 이정명(1965~ )은 자신의 전작『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글 창제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사용했다. 긴장감을 극대화한 추리력의 발동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 작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한 주일의 유월절 기간에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상상을 통해 성경의 기본 스토리를 추리적 기법으로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성경의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보여준다.

연쇄살인 사건의 희생자 네 사람은 유월절 엿새 전부터 나흘 동안 유사한 수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이 사건을 추적하는 마카베오 마티아스는 예루살렘성전 수비대장의 밀정이다. 그 자신도 살인죄를 저지르고 지하감옥에 갇힌 처지인데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든 것이다.

마티아스는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예수를 한 번 만난 경험이 있거나 기적의 목격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의 기적을 체험한 주인공이나 목격자들이 희생당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나아가 예수의 제자들을 살인자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있었다. 마티아스도 처음에는 예수를 오해하고 그 일당이 위로와 사랑의 미끼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예루살렘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세력들의 충돌과 갈등을 그리면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십자가라는 본질에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미트라교의 치밀하고도 잔인한 활동, 사실을 왜곡하며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빌라도 총독과 로마의 계략,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고뇌, 사상의 대결,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는 신앙의 발길이 이어진다. 해골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사람의 범죄자들은 연쇄살인과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각도에서 그리스도와 만난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유월절 행보를 스릴러로 형상화한 작가의 시도는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정명 작가는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역사 자료와 저서들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역사적 개연성을 유지하면서도 풍부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성경 한 곳에 잠시 등장하고 사라진 인물 한 사람이나 사건 하나도 새로운 진실을 탐구하는 발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더욱 중요하다. 거기서 또 하나의 역사가 출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나, 거기서 일으킨 행위 하나가 진실을 향한 새 이야기의 서막이 될 수 있다. 무거운 어둠이 내린 밤 같은 시대에 갈 길을 잃은 양, 무서운 죄를 안고 죽어가야 할 속죄양들이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디는 것을 보며 내레이터 역할을 맡은 테오필로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곳은 지옥 같아도 천국을 꿈꾸는 지옥이며, 굴욕을 참으며 영광을 꿈꾸는 예루살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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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중
목사이면서 장신대 설교학 교수 역임. 광주의 조선대학교 부총장을 거쳐 국문학과 교수로 퇴임하고 현대 한국 기독교문학에 대한 평설을 담은‘한국 기독교문학 꼭 읽어야 할 작품들’을 펴냈다. 한국기독공보에 게재한 원고와 증명사진을 저자의 허락을 받고 재수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