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이 비누를 사가실 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사장님, 이렇게 고급진 비누를 어떻게 하면 오래오래 잘 쓸 수 있나요?” 그러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렇게 대답을 한다.
“남편 대하듯 하시면 됩니다.”
이 말이 떨어지면 대부분은 배를 잡고 빵 터지신다. 하지만 가끔은 표정이 굳어지며 짜증을 내시는 분도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사실은 꽤 과학적인 답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수제 비누는 값어치가 높은 귀하신 몸이시지만, 예민하기도 하셔서 함부로 다루면 제 기능을 다 못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제 비누는 남편보다도 훨씬 더 세심한 보살핌을 요구하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편에서는 일상 속에서 비누를 잘 쓰기 위해 지켜야 할 상식들을 정리해 보았다.
물에 약한 신데렐라
첫번째로 수제 비누는 물관리가 중요한 것이 그저 물에 닿는 순간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시계가 12시를 치기 전에 빨리 말려주지 않으면 서서히 녹아 내리며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가끔씩 내버려 두면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속으로 점첨 파묻혀 가시는 남편을 구제하듯 비누도 물기에서 분리해 마른 곳에 보관해야 번듯하게 오래 쓸 수 있다.
“사장님, 우리 비누가 물컹해졌어요!”라며 전화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사실 그건 비누 잘못이 아니라 관리 방법의 문제다. 수제비누는 응고제나 보존제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특히 사용 후에는 물빠짐이 좋은 비누 받침대 위에 올려 두어야 한다.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놓으면 비누가 무르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다. 혹시 물이 흥건한 욕실 세면대 위, 물이 똑똑 떨어지는 샤워기 밑, 물이 고이는 비누 받침 위에 두는 것은 비누에게 “수영이나 실컷 하고 사라져버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좋은 비누 받침대는 수제 비누의 생명줄이다. 물빠짐이 확실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놓으면 비누는 다시 건조되며 제 수명을 다한다. 마치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려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진 남편이 맛있는 저녁과 칭찬 몇 마디에 기운을 차리는 것처럼 말이다.
비누도 성격이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비누를 오래 쓰려면 먼저 비누를 잘 알아야 한다. 비누도 사람처럼 제각각 성격이 있다. 활달한 성격의 비누는 지성 피부의 번들거림을 시원하게 잡아준다. 반면 내성적인 비누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민감한 피부를 보듬는다. 건성 피부엔 오일리한 친구가, 여드름 피부엔 살균력이 강한 친구가 어울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성격의 비누를 고르는 것이다.
문제는, “천연이니까 무조건 다 좋다”라는 착각이다. 사실 천연 원료도 피부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라벤더 오일에 평생을 치유받지만, 또 다른 이는 같은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 새 비누를 쓰기 전에는 꼭 팔 안쪽에 살짝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좋다. 작은 예행연습을 거치면 큰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괜히 성급했다가 붉어진 피부로 비누와 눈물의 이별을 고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품은 비누의 언어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거품 내기다. 비누에게 거품은 언어와 같다. 그냥 피부에 대고 마구 문질러 쓰면 비누는 억지로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손바닥이나 거품망에서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 피부에 얹으면, 비누는 그제야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조밀한 거품은 작은 청소부들이 되어 모공 사이사이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노폐물을 쓸어낸다.
거품이 부족하면 세정력이 떨어지고, 피부와의 마찰도 커져 자극이 생긴다. 반대로 충분히 거품을 내면, 비누는 마치 합창단처럼 조화를 이루어 피부를 부드럽게 감싼다. 그러니 비누를 제대로 쓰고 싶다면 ‘대충 쓱쓱’은 절대 금물이다.
세안은 짧고 굵게
비누 사용에서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시간이다. 가끔 어떤 분은 “이 비누 좋으니까 오래 놔두면 미백 효과가 더 있지 않을까?”하고 거품을 얼굴에 오래 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피부에게 작은 고문이다. 비누는 세정제이지 미백 팩이 아니다. 필요한 일만 하고 깔끔하게 퇴장하는 것이 맞다. 일반적으로 얼굴은 30초에서 1분이면 충분하고, 몸은 2분 이내면 족하다. 오히려 오래 두면 피부의 보호막이 손상되고, 건조함이 심해질 수 있다.
보습은 크림에게 맡기자
여기서 한 가지 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수제 비누는 일반 비누보다 촉촉하다. 이는 비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글리세린 덕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습제를 생략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씻는 과정에서 피부가 본래 가지고 있던 수분은 어느 정도 날아간다. 그러니 세안 후에는 반드시 보습제를 발라주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비누가 세정의 역할을 맡았다면, 보습은 크림에게 넘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협업이다. 마치 한 팀이 각자의 역할을 정확히 나누어야 성과를 내듯이 말이다.
오래 가는 친구
결국 비누는 단순한 기름 덩어리가 아니다. 우리의 때를 씻어주고 피부를 돌보는 조용한 동반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에 닿는 소중한 물건이지만늘 그 자리에 있어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좋은 친구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친구의 성격을 알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수제 비누도 마찬가지다. 존중하고 예의를 지켜주면 비누는 매일 우리의 삶을 부드럽게 지켜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수제 비누는 결국 생활 속에서 매번 나를 새롭게(be new) 태어나게 해주는 소소한 기쁨이다. 단순히 때를 벗겨내는 도구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사치이자 지혜다. 그러니 오늘 밤 욕실에서 비누를 내려놓으며 한번쯤은 이렇게 속삭여 보시라
“내 일상을 잘 부탁해, 비누(be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