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래리 허타도(Larry W. Hurtado)는 『주 예수 그리스도 (Lord Jesus Christ)』 서문에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오직 한 분이신 이스라엘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다른 존재에게도 예배하기를 거부한 배타적 유일신 사상의 유대인들이 어떻게 예수를 예배할 수 있었을까? 둘째, 유대교 유일신 사상의 전통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즉 AD 50~100년 무렵)는 예수 숭배를 어떻게 유대교 신앙과 조화시킬 수 있었는가?

허타도는 예수 숭배 현상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핵심으로 후대에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 초기, 즉 주 후 50년 무렵에 이미 확립된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믿음이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로 예수 사후 수십 년 이내에 자리 잡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 직후 빠르게 확산하였음을 주장한다. 이는 학자들 간의 차이가 있지만 성경의 기록연대를 대략 야고보서(45~48년, 혹은 60년대), 갈라디아서(48년, 혹은 54~55년), 데살로니가 전·후서(50~52년)를 시작으로 요한복음 (80~85년), 요한 1·2·3서(90~95년), 요한계시록(95~100년)으로 근거로 하고 있다.

이에 이 책의 일부인 6장 「요한의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위기들과 기독론」을 중심으로 신학자들의 저서를 참고하여 요한복음에 나타난 요한 신학을 통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신학을 살펴보면서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확장해 나가려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앙을 통해서고, 다른 하나는 신학을 통해서이다. 신앙은 개인의 삶에서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또한 성경과 교회의 종교적 전통을 기반으로 영적 경험과 내면적 확신을 통해 성장하며, 삶의 방향과 결정을 이끄는 기본적인 원리로 작용한다. 반면에 신학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과 그와 관련된 주제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이성적 학문의 노력이다. 그러하기에 신학은 신앙에서 나온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로 신앙의 내용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즉 신학의 토대는 신앙으로, 신학은 신앙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안셀무스는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라면서 평생 두 가지 태도를 균형 있게 유지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이 견지하는 태도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고 이름 지었다. “영적인 복음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A.D. 150-215)는 요한복음을 ‘영적인 복음서’로 명명하였다. 모든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지만,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달리 서술 방식에 있어서 매우 독창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은 예수의 탄생, 공생애, 이적, 죽음, 부활 등 그의 외적 사역과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되지만, 요한복음은 예수의 말씀과 표적에 대한 신학적 주제, 특히 그의 내적 본질, 신성과 인격,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로 서문에 사용된 용어 ‘말씀, 생명, 빛, 영광, 은혜와 진리’의 개념들은 성육신한 로고스에 대한 선포(1:14)로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함으로 시작한다. 이는 1세기의 독자들이 단순히 예수의 지상 사역을 넘어, 그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 어떻게 구원에 완전한 역할을 하는가? 라는 신앙의 질문에 대한 신학적 대답인 셈이다.

또한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몇몇 중요한 “표적(세메이온)”들과 “자기 선언(에고 에이미)”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성령의 역할과 삼위일체의 관계를 자세히 묘사하며, 구속사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근래의 해석사에서 ‘영적인’이라는 말은 ‘비역사적인’이라는 말로 간주하여 성경이 문자적 역사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 상징적, 또는 윤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영적인 복음서’라는 말은 비역사적이라는 의미보다 요한 기자가 공관복음의 역사적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더 깊은 의미와 신학적인 통찰로 나아가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훨씬 더 적절해 보인다.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Andreas J. Köstenberger)의 『요한 신학』을 중심으로 살펴본 요한복음의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요한은 공관복음이 제시하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신학적 주제들을 구성하고 있다. 특별히 이 사건들을 확증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직접 참여했던 제자로 증인(목격자)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증인 모티프에 대한 예는 서문(1:1-18)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요한의 반복적인 증언(7, 8, 15)과 말씀의 성육신에 대한 ‘우리’(14, 16)의 증언이다. 서문의 맥락에서 이들은 어둠에 거하며 깨닫지 못했던 자들(1:5)과 참 빛을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는 세상(1:10-11)과 대조되는 존재들로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1:13)이다.

요한복음 본문에 따르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었기에 거듭난 자들이며 (3:3)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4:24)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 보니”(14)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거를 신앙 고백으로 삼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단지 소수 특권층의 증인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틀과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라는 구조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계시를 직접 경험한 자로서 증인인 셈이다.

또한 요한복음에 거듭 등장하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사건들을 “증언”(예 2:25; 3:32-33; 5:34; 8:17; 15:26; 21:24)으로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를 믿게 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밝힌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목격으로부터 그의 생애와 사역을, 어떤 한 개인이 가진 기억들, 혹은 사건을 목격했거나 참여했던 증인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을 통하여 진술하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모든 상황을 ‘증언’한 뒤, 마지막 21장을 통해서 ‘우리’들 가운데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증언한 제자가 있음을 직접 증언한다.

즉 요한복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하는 목격자들을 통하여 이미 예수를 알고 있는 1세기 독자에게, 그들의 신앙에 궁금해하는 사건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둘째로,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왜 그러한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의미를 밝히는 데 집중한다.

학자들은 요한복음의 실제 역사적 배경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바로 AD 70년의 성전 파괴, 바울의 복음 해석에 근거한 이방인 교회의 설립, 사도들의 정통 신조와 헬라 사상의 접촉에서 비롯된 기독교 철학(영지주의)의 발흥으로 본다. 특별히 제2 성전 파괴는 유대교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 된 사건이다.
유대인의 신앙은 성전을 통한 제사 및 제사장 제도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전 파괴는 유대교를 국가적, 종교적 진공 상태에 빠뜨렸고,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의식과 예배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교가 맞이한 새로운 세계에서 제기된 신앙의 문제들에 대하여, 요한은 그리스도와 함께했던 제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정체성 안에 이미 그 해답이 있음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14와 요한계시록 7:15; 1212; 13:6; 21:3에 총 5회 사용된 “거하시매”로 번역된 헬라어는 신약성경에서 요한만이 사용한다. 이 단어는 ‘천막’에서 파생된 동사로, 문자적으로 “장막을 치다”, “거처를 정하다”, “살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출 25:8-9)에 등장한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구심점을 잃어버려 큰 혼란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옛 성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성전이며, 새로운 예배의 대안이자(1:14; 1:51; 2:18-22; 4:21-24) 유대 절기가 담고 있는 모든 상징을 성취했음(7:37-39; 10:22-39)을 그만의 언어로 선포하고 있다.

또한, 당시 헬라 세계와 유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말’ 혹은 ‘이야기’를 의미하는 평이한 단어 ‘로고스(λόγος)’ 개념을 인격화된 말씀으로 역사적 인물인 예수에게 적용함으로써 예수의 사역을 우주론적으로 확대했다. 사람이 만질 수도, 접할 수도 없고, 가까이 갈 수도 없는 빛·생명·진리인 신의 세계를, 예수라는 통로를 통하여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예수라는 구체적인 인물을 통하여 영원성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문과 저술 목적(20:30-31)은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 전개될 주제들을 집약시켜 보여주며, 전체 해석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말씀의 우주적 범위까지 확대하여 선재 하신 그리스도의 기독론적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하신 실제 역사적 사건들인 성막(1:14)이나 모세의 율법 수여(1:17)와 같은 구약성서의 구속사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및 사역의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욱이 1장 14절에서 로고스가 육체를 입고 성육신하신 일의 실재는 도마가 고백한, 증인의 고백인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20:28)을 향한 전개임을 보여준다. 로고스의 선재와 말씀의 성육신을 주장하는 서문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점을 입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믿는 후대의 교회를 위해서다(20:29).

이것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힌 기록 목적에 나타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여기서 “너희로…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의 강조점은 요한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증거를 제시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 믿음이 열어주는 생명으로 초대하려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