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3막의 부르심

살면 살아진다
수십 년 동안 항상 수백 명의 성도들과 함께 더불어 살다가 은퇴 후 모든 것이 홀로 되었을 때의 그 공허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많이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하지만 공허함과 외로움이 클수록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 자신을 찾아 채워 나가는 일에 집중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서 정리할 것들은 정리하고 도전해야 할 것들은 망설임 없이 시도해 보았다. 1년 반쯤 지났을 때, 하루하루의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사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혼자 있어도 즐겁고, 더불어 있으면 더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내공이 쌓이니 일감이 찾아왔다
홀로 있어도 평상심을 유질 할 수 있을 때가 되었을 즈음에 교단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COVID 사태로 청빙 받은 담임목사님이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입국할 수 없으니 그 교회의 임시 당회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333 전략 1/3은 잘 놀고, 1/3은 생계를 위해서 잘 일하고, 1/3은 주의 잘 일하는 333 잘잘잘 전략은 그 우선순위의 첫 번째는 주의 일이고, 그다음은 생계이고, 그다음이 노는 일이다.
당연히 교단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6개월간 오클랜드에 올라가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일을 마친 후 다시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와 크라이스트처치 사람으로 마음의 닻을 내렸다.

다시 뜻밖의 부르심이다
인생 참 묘하다. 떠나려 하면 붙잡으시고, 마음의 닻을 내리면 떠나게 하신다. 동쪽에서 일한 것을 서쪽에서 거두게 하신다. 2022년 6개월간 임시 당회장 사역을 끝으로 목회적인 부르심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나에게 붙여 주신 작은 자들을 돌보고 소소한 일에 감사하며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님을 닮아가기 원하는 한 개인의 구도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감사드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1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어리석음에 나 역시 빠지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맡겨진 작은 일, 작은 자 하나를 돌보는 일에 집중했다. 그루터기 사역으로 감사하며 그저 선한 청지기가 되기만을 바라는 소소한 시민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배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담임목사의 공백이 생긴 교회의 설교 목사로 오실 수 있느냐?’는…

주의 일은 100% 내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그 분의 부르심이다. 나는 평생 부르시면 그 즉시 응답하는 훈련을 받은 주의 종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그분의 부르심이 끝났다고 마음 정리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일에 익숙해졌을 때 다시 불러 주셨다. 주의 일은 신비하고 위대하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셔서 인생 계획을 세울 수는 있으나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100% 하나님이시다.

나이가 드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 초월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때를 맞이하는 것이다
알에서 깨어나는 때가 온다.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나의 경우 희한하게도 비워진 마음에 내가 원하는 삶이 채워졌을 때 나를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비우고 채우니 새로운 삶이 열렸다. 물론 채움은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실 때, 삶의 방향도 확실해지고 꽉 찬 만족감도 생긴다.


60살 넘어 나를 채운 말씀은 마태복음 25:40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이다. 이 말씀이 완전히 나를 자유하게 하고 나를 꽉 채워주고 있다.

최근에 나의 황금 보화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설 수 있게 된 마음이다. 나를 비우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서 말씀을 묵상할수록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연결된다. 그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꽉 찬 영혼의 포만감이 채워진다.

마음을 넘어 실제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기와 환경이 온다
자녀들이 다 커서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다. 경제적으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몸만 건강하면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목회적으로도 가장 적은 일에 충성하면 되는, 부담이 없는 상황이 되어졌다. 무엇을 하든 자유이고, 무슨 선택을 하든 문제가 없는 시기가 되었다. 이런 자유로운 때도 온다. 나를 넘어서 초월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도 주어지는 때가 있다.

내가 아는 장로님은 70살 넘어서 남태평양 오지에 있는 신학교의 영어 강사로 선교를 떠났다. 다 가졌고 다 이루었고 무엇을 하든 완전한 자유인이다. 그런데 그런 환경을 누리며 살고 있을 때, 오지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 멋지다.


환경이 준비 안 됐는데 부르심에 응답하여 오지나 낙도로 가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그 선택이 위대하다. 하지만 환경이 다 준비되었는데도 부르심에 헌신하지 못한다면 주님께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홀가분한 헌신도 있다
살면서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없는 중에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콕 집어 주의 일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실수가 없으시다. 이번의 부르심은 평생 훈련하고 연마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부르심이다. 그래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볍다.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굳이 첨가하지 않아도 부르신 일에 충성하면 되는 일이기에 마음이 무겁지가 않다. 은퇴 전에는 자녀들의 앞날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사랑만 주면 되는 할아버지의 심정이다. 어떤 삶의 매듭이 이루어지니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게 신기하다.

인생 3막의 부르심은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다. ‘주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저 순종하면 되는 일이다. 욕심이 들어가면 힘들고 어렵고 무겁지만 빈 마음으로 나아가면 쉽고 가볍고 물 흐르듯 원만하게 흐른다. 주의 일을 힘겹게만 일했던 나에게 이제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주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는 진리를 증명할 시기가 되었다. 그래서 삶이 설레고, 주의 일이 기대된다.

이전 기사금쪽같은 내 새끼
다음 기사즐거운 마켓 구경
최 승관
나는 꿈꾸는 사람이다. 목회 35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꿈을 꾸었다. 3년 전, 조기은퇴 후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현재 Uber Driver로 생계를 해결하며, 글쓰기를 통해 세상, 사람과 소통하는 영혼의 Guider되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