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땅속,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지하철과 기차를 참 좋아했었다.
어디를 가려면 몇 호선을 타야 하는지, 어디에서 갈아타야 하는지, 인천에 살았던 나는 동인천역에서 신도림역까지 1호선 역 이름을 순서대로 줄줄 외우는 아이였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땅 위와 땅속을 넘나드는 철도 위의 매력적인 세계, 그 원조가 바로 런던 지하철이다.
런던의 지하철은 서브웨이(Subway)라고 하지 않고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혹은 튜브(Tube, 둥근 열차 특유의 생김새에서 유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1863년에 첫 노선이 개통되었다.(참고로 1863년의 한반도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 즉위했으니…)
현재 운행 중인 노선들도 대부분 1900년대 초, 중반에 기획되고 만들어진 노선들이다. 실제로 런던 밖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런던의 낮 인구와 밤 인구가 다르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사방에서 몰려드는 기차들과 함께 런던의 언더그라운드는 도시 전체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들이 서려 있다
11개의 런던 지하철 노선 중 처음 타본 노던 라인(Northern Line)은, 타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지구의 핵과 맞닿았나 싶을 만큼 지하로 참 많이도 내려왔는데, 열차 폭이 2.6m 정도로 좁고 출입문 쪽으로 갈수록 둥글게 꺾여 있어서 마치 고개를 숙이고 타야 할 것 같은 이 구조는 참 불편하다 싶었다.
하지만 런던은 템스강 하류의 연약한 지반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에 터널 자체를 철제 구조물로 구성하는 튜브 구조가 불가피했고, 튜브 모양의 열차가 나름 런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모두 긍정적인 부분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열차가 좁기 때문에 한 번에 탈 수 있는 인원은 서울 지하철에 비해 적지만, 런던의 지하철은 대체로 배차 간격이 짧아 좋다.
출퇴근 시간에는 1~2분에 한 대씩 들어 오기도 하고, 앞차가 사람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뒤차가 멀찌감치 거리에서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는 진풍경들을 연출하기도 한다.
몇 개 노선은 불금과 불토에 24시간 운행을 하고 있고, 한껏 취기가 오른 사람들과 아무 주제 없는 이야기를 나눠보는 일도 재미있다.
노선마다 가진 특색이 다르고, 역마다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긴 시간에 걸쳐‘서려 있는’런던의 지하철을 나는 사랑하게 됐다.
지하철역마다 가진 별명이나 입구에 게시해 놓은 ‘오늘의 한마디’ 같은 것들은 유쾌함과 풍자의 절정이고, 심지어 지역별 평균 집값을 보여주는 지도도 지하철 노선도를 중심으로 나오기도 한다.
‘당신의 1년 소득이 최소 얼마가 되어야 아마도 이 역 주변의 집을 살 수 있을 겁니다’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지도를 보며 철저한 현실의 벽을 느껴보기도 하는, 우리네 삶과 너무도 밀접하고도 긴밀하게 상관 있는 런던의 지하철.
그 다음 레벨은 아마도 어떤 역에서 내릴 때 빨리 밖으로 나가려면 열차의 앞에 타야 하는지, 뒤에 타야 하는지 같은 류의 팁일 것이다(역마다 나가는 곳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이제는 가끔 뼛속까지 영국인 상사가 내게 물어보기도 한다.
“크리스, 시내에 있는 이 식당을 가려 하는데 어떤 라인을 타고 가는 게 제일 빠를까?”
동방의 한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바다 건너 뉴질랜드를 거쳐 영국까지 오게 된 한국 사람이 이렇게 성공한 철덕(철도 마니아)이 되어가는 것인지.
뉴질랜드에서 운전하며 편하게 다니던 날들이 가끔 그립기도 하지만, 아직 차 없는 런던의 생활이 딱히 불편하지는 않은 것 같다.(물론 급할 땐 우버를!)
내 생각 레시피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좁은 런던의 지하철은 사람이 많든 적든 언제나 분주하다.
퇴근하신 아버지의 자켓에서 묻어 나오던, 긴 하루 뒤 퇴근하는 사람들의 피로, 삶의 무게, 술 냄새, 먼지 냄새, 매연 냄새 같은 것들이 골고루 섞인 듯한, 어쩌면 노동의 숭고함이 절절히 느껴지던 그 ‘사람 사는 냄새’가 있는 그 공간.
모두의 연결이 잠시 멈추고 나와 한 공간에 묶여버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만 차 있는 공간.
플랫폼을 제외하고는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고독함에 적응하며 철로에 미끄러지는 기차 소리를 듣는 일은 내 생각의 지경을 넓히는 일상이 되었다. 그 리듬에 맞춰가며 앉아 있노라면 마치 시간을 뚫고 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뉴질랜드에서의 삶이 떠오르기도 하고, 저녁에 무얼 먹을지 같은 사소한 결정들도 내린다. 마치 철을 담금질하듯이 내 생각을 담금질하는 시간이랄까.
지나온 일을 반추하다가도, 그 경험이란 뼈에다 생각이란 살을 붙여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 거기에 음악이 더해지면 머릿속은 어느새 우주가 된다. 스스로 철저히 반성하면서도, 나름대로 큰 위로들을 얻는다.
힘든 일 많던 어느 날에도, 야근 후 한숨 푹 쉬며 퇴근하던 그 저녁도, 나는 기차 안에서 ‘한숨’들을 ‘깊은 숨’이 되게 한다. 이렇게 내 생각 레시피는 풍성해져 간다.
내일은 이 재료와 저 재료를 합쳐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처럼, 인생의 정답 없는 수많은 생각이 요리의 재료가 되어 지하철 안에서 굽고, 튀기고, 무치고, 볶는다.
크게 요리할 필요도 없고, 오늘 감당할 만큼의 요리만 하면 된다. 당장 한정식을 내올 만큼의 실력이 안 되어도, 오늘 나물 반찬 하나 간신히 무쳐낸다 해도 충분하다. 나 자신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일이니까.
어쩌면 기도도 그런 것 아닐까, ‘아랍 나라를 주시옵소서!’ 같은 원대한 기도도 좋지만, 때로는 ‘정말 못 해 먹겠어요 주님’이라 투덜댈지언정 정직한 기도가 낫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돌아보면 기차 안에서의 그 짧은 시간이, 메마른 땅 위에 단비가 내리듯 내게 해갈을 가져다 주는 시간이었다. 나를 목적지로 데려가면서도, 내 마음도 생각의 바다 가운데로 데려가 버리는 매일매일 여기서 보내는 시간, 버릴 게 없다.
혼잡함 속의 질서
복잡한 철로 위의 세계에도 법칙이 있고, 나름의 정교한 질서들이 있다. 우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별들의 전쟁 속에서 그저 표류하는 것만 같아도, 나름의 정교한 하늘의 질서 속에서 가고 있음을 잊지 말자.
그래서 나는 내일도 그 속으로 기꺼이 한번 들어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런던의 동맥을 타고서, 어느새 나도 그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