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 글에서 자녀 양육의 법칙이나, 혹은 나는 이렇게 자녀 양육했다라는 자랑의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민자로서 자녀 양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보려고 한다.
또한 이미 이 땅에서 자녀를 양육하신 이민 선배들의 지혜와 경험들을 소개하고, 나의 경험 역시도 한계가 있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 키위 목사들의 자녀양육의 사례와 더불어 필자 역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개인의 한계와 더 해주고 싶지만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정답을 찾아가려는 몸부림을 보이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딸 아이가 유치원을 입학하고 몇 달 후에 성경구절을 중얼중얼하며 혼자 노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나 대견하고 뿌듯한지 동영상으로 찍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냈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하고 엄마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선물이란다, 영어의 날개를 달고 마음껏 너의 꿈을 펼치거라’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에 갑자기 아이가 문장마다 영어단어를 사용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나 오늘 School 갔는데 Teacher가 homework 꼭 해오래요”
그때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영어를 쓰는 아이를 보며 대견해하고 그저 좋아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다.
집에서 영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한국어만 사용하게 해야 하는지 혹은 영어를 위해서 부모 역시도 아이들에게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 이민자들의 가정이다.
한글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아이가 되도록 양육하고 싶지만, 그 목표는 그저 부모의 소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자라고 학년이 높아짐에 따라서 과제의 수준이나 강도가 높아지지만, 부모의 영어 실력은 현실적으로 제자리일 때가 대부분이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일을 나가야 하고 그렇게 삶의 길이 정해지고 날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관심을 두지 못할 때가 많다.
다른 키위 부모들은 자녀들이 에세이를 쓸 때, 에세이의 방향과 주제를 함께 논의하고 첨삭도 해주지만 영어가 부족한 이민자의 자녀들은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필자가 학부모 상담이 있어 학교를 방문하여 담임선생님에게 자녀의 영어향상을 위해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려고 노력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집에서 가르치는 잘못된 영어가 아이의 영어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집에서는 한글만 잘 가르쳐서 한국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 영어는 학교에서 가르칠 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은 괜찮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말에 반드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하루하루의 바쁜 삶에 잊히기 일쑤다.
부모도 이민 1세대로서 모든 세찬 바람을 맞으며 자녀를 위해 고생하지만, 자녀 역시도 부모가 고생하는 만큼 자기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짐을 지고 열심히 걸어간다.
도움을 받아야 할 자녀이지만 도리어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 자녀이기에 어린 나이에 벌써 생각하는 것이 어른스럽게 부모화 된 자녀들이 적지 않다.
서로의 삶을 바쁘게 살아가다 어느덧 문득 내가 알던 자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발견할 때,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글을 잃어버리면서 깊은 대화라도 하게 되면 아이는 영어로, 그리고 부모는 한글로 대화하며 의사소통에 벽이 생기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자녀들의 정체성 혼란도 자녀 양육 중에 넘어야 할 산 중에 하나다. 키위들과 어울리면서 그저 본인이 뉴질랜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지만,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해 본인이 다른 아이들과 다름을 자각하게 되고 사춘기와 맞물리면서 자신을 찾는 여정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반드시 언젠가 겪어야 할 과정이다.
어느 날 아이가 자기가 어떻게 학교에서 노는지를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놀 때 역할놀이를 하는데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해서 아빠, 엄마 역할을 못하고 멍멍이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집에서 강아지처럼 엎드려서 멍멍하고 강아지 흉내를 내며 본인이 어떻게 충실하게 강아지 역할을 하는지 부모에게 보여준다.
멍멍이 역할만 한다는 말에 속이 상해서 ‘친구들에게 엄마역할도 시켜달라고 해!’라고 말했더니, 딸 아이의 하는 말이 “멍멍이 역할이라도 해서 애들이랑 놀 수 있어서 나는 좋은데~”
멍멍이 역할이라도 감사하게 받아들임으로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안 되는 영어라도 고집을 부려서 부모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맞는지 부모는 고민이 된다.
중요한 것은 강아지 역할을 하든 부모 역할을 하든, 자녀들 역시 이민자의 부모와 같이 그 삶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며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영어를 대신해 줄 수 없다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으로 자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면 된다.
그것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격려의 한마디,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이 가장 아름다운 역할이라는 인정의 한마디면 아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더 최선을 다해 살아갈 힘을 그리고 이유를 얻게 될 줄 믿는다. (참고로 멍멍이 역할은 모든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인기 있는 역할이었다.)
이민의 올바른 모습의 정답이 없듯 이민자로서 자녀양육은 그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방법 외에는 정답이 없다.
인생이라는 것이 정답이 없기에 수많은 변수가 생기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터지기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하되, 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고 행복하게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료키위 목사가 아이의 나이에 따라 부모가 해줘야 할 역할을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0-5살은 무조건 돌보는 역할, 6-12살은 예의와 규율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역할, 13-18살은 배운 규율을 바탕으로 아이의 삶 가운데 스스로 본인이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역할, 18- 결혼 전까지는 독립하여 살 수 있도록 보내주는 역할, 결혼 후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부모가 된 자식과 친구가 되어 서로 의지하고 돌보는 역할이라고 한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이민생활 속에서 자녀양육의 과정 속에 있는 부모들에게 격려를 그리고 이미 자녀를 장성하게 키우신 부모님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