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힘들고 어려워도 사람의 손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일어나야 하리라”
서울 종로에서 서대문을 지나 아현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서남쪽으로 내려가는 나지막한 언덕에 펼쳐진 마을이 보인다. 만리 고갯마루와 대현 고갯마루를 넘어와서도 만나게 된다. 이 마을은 ‘큰 더기(언덕)’이라 불렸는데, 공덕(孔德)이라는 한자음을 빌려 표기했다.
한강을 통해 모든 물산이 마포나루에서 내려 아현이나 만리 현으로 고갯마루를 넘어 종로나 필요한 지역으로 옮겨갔다.
삼밭이 있던 마포나루 가까운 곳에 무쇠솥을 만드는 무쇠막을 이르는 신수동이 있다. 또한 복개 당이 있어 굿을 했다.
토속적인 신앙으로 자리한 굿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신수동 지역은 종교성이 강한 지역이다. 지금도 천주교, 개신교, 민속 종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아현동에서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신수동(新水洞)이 있다면, 왼쪽으로 신창동이 있다. 이 동네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문물이 들어오면서 용산역이 가까워 새 창고를 많이 지어 신창동(新倉洞)이라고 했다. 아무튼, 세상 따라 자기의 손으로 이루는 자수성가(自手成家)보다,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는 신수성가(神手成家)가 되어야 한다.
서울의 풍수지리로 명당은 용산이고, 능선은 복사 골로 도화 또는 도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용산 지역은 일제에 의해 용산역과 기지창으로 바뀌었다. 일제에 의한 전찻길로 인해 마포 종점도 들어섰다. 전쟁 후에는 피난민이 정착해서 서울 곱창 맛집으로 알려진 곱창 식당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시원하게 공덕 나들목이 있다. 군사 정권 시대에는 국군의 날 행사로 여의도 광장에서 시작한 국군의 행진은 마포대교를 넘어 공덕 로타리를 지나 아현동을 거쳐 종로를 갔다. 그러면 학교 수업을 하다 말고 서대문 교차로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다.
공덕 십자로를 동서로 지나는 경의선 철 다리에서 공영 티브이가 국군의 행진을 촬영해서 영화 시작 전에 대한 뉴스로 보여줬다. 지금은 전철 5, 6호선과 인천 공항철도가 다니는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용산역을 출발한 기차는 문산을 거쳐 개성 그리고 신의주까지를 이어 경의선이라고 했다. 전쟁 후에는 용산역에서 문산역까지만 간다. 현재 남북한의 정전으로 인해 대륙과 떨어진 한국은 마치 섬나라와 같은 상황에 부닥쳐있다. 통일되면 부산에서 출발한 철로는 서울을 거쳐 신의주에서 중국을 지나 유럽까지 연결된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의 손으로 이루는 이념과 사상 그리고 주의와 경제 논리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한 통일의 그 날이 속히 와 자유롭게 유럽까지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