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가만히 함께 있어 주는 것

작년에 크리스천라이프에 글을 연재하기로 하면서 처음엔 매달 연재하는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수년간 버스 운전을 하면서 겪은 일이 워낙 많아서 한 달에 한번 글 쓰는 일은 일도 아니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마감시한이 있고 그에 맞춰 정리된 글을 보내주어야 하는 일이 이렇게 쪼이는(?) 일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작년 마지막 원고를 보내고서는 오래된 숙제를 마치는 기분이었지요. 할 말이야 더 있었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자 하였는데,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새해에 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통해 기적의 목격자들, 경험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9년 첫 이야기로는 반려동물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반려동물들에 관한 서론은 다들 너무 잘 아시니 생략하구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나에게는 반려동물, 어떤 이들에겐 반감동물
뉴질랜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친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동물 자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커넬을 이용해야 합니다(물론 장애우 안내견은 예외입니다).

한번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학생 세 명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먼저 한 명이 오르고 뒤이어 다른 학생이, 마지막 학생이 버스에 탔는데 마지막으로 탄 학생의 자세가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봐도 뭔가를 숨기고 보호하는 느낌이 강했었지요. 얼핏 보니 품 안에 너무나도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품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 강아지는 ‘언니, 무슨 일이에요?’하는 눈빛으로 그 학생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귀여움이 뚝뚝 묻어나는 강아지였죠. 정의로운 기사 James는 그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버스에 강아지를 태울 수는 없어. 너희가 원한다면 반드시 커넬 안에 그 아이를 넣어서 버스를 타야 해.”
“우리 3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정의로운 기사 James가 대답했습니다.
“응, 안 돼.”

규칙은 규칙이니까요. 나에게는 한없이 귀여운 반려동물이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러운 생명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여학생들은 무척 실망하며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강아지, 고양이 이런 동물들을 좋아하지만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버스에서는 반려동물과 함께 승차하는 것이 아직은 허용되어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No ticket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올라올 것만 같은 무더운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내버스는 승객들과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정류장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거리를 두어 Timing Point라는 것을 정해두고 시간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날은 다소 한적한 날이었기에 어느 Timing Point에 버스를 대고 배차간격을 위해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날은 덥고 에어컨 없는 버스를 운행 중이었기에 환기를 위해 앞뒷문을 연 채로 대기중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뒷문으로 버스에 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검은 머리를 가진 한 어린이가 올라탄 것 같았지요.

그래서 보호자가 같이 타려나 보다, 왜 그런데 뒷문으로 타나? 규칙도 모르나? 하는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흑구 한 마리가 너무도 당당하게 버스에 올라 버스의 구석구석 청결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덩치도 제법 되는 놈이어서 함부로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뒷문으로 올랐던 놈이 뒷문으로 바로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개를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운전석을 비워두었던 저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이 녀석이 앞문으로 올라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버스의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립니다. 덩치도 큰 놈이라 제가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그 녀석을 잘 달래 내리게 해 주어 다행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지요.

그 녀석 덕분에 버스 운행이 수분간 지연되었어요. 버스를 탈 때는 앞문으로 타시고 요금은 꼭 준비해 주세요.

길을 건널 땐
종점에서 막 출발한 제 버스는 동네 골목 여기저기를 휘휘 돌며 큰 길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 눈 앞에 한 마리의 반려견이 주인과 함께 길 건널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주인과 한가로이 산책하고 있는 중이었나 봅니다. 한데 특이했던 것은 그 주인 아주머니의 수신호였습니다.

아줌마는 녀석보다 한걸음 먼저 나가 계신 상태였는데 녀석에게 등을 보이신 채로 손바닥을 펴 보였더니 이 녀석이 기특하게도 제자리에 쪼그려 앉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줄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그 아주머니가 강형욱 훈련사인줄 알았습니다.

뭐,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잘 훈련된 동물들은 종종 그렇게 하니까요. 제가 주목해서 본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쪼그려 앉은 이 녀석은 다른 상황은 보지 않고 오로지 주인의 손바닥과 얼굴만 번갈아 가며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였습니다.

버스로 지나며 백미러를 통해 지켜보니 버스가 지나가고 주인이 손을 치우자 주인 곁에서 함께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실 길 건너는 거, 그 정도로 똑똑한 녀석이면 혼자서도 눈치 봐가며 잘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과 함께 길을 가는 그 녀석은 절대로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반려견이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주인보다 똑똑하며 주인보다 경험이 많겠습니까? 그 녀석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인의 완전하심을 믿은 것이지요. 주인이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하지 않을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참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저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이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주인의 손과 주인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주인의 결정을 믿고 따른다는 것. 이것이 내 삶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어준 귀중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반려동물을 허락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려동물은 외로운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반려동물을 키우며 사랑을 배우게도 하고, 그 녀석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그런 말을 하더군요. 누군가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고 싶다면 반려동물처럼 옆에 가만히 함께 있어주라고.

어설픈 말로 위로하고 잔소리하고 떼 쓰지 말고 슬프거나 외로운 이들과 함께 있어주고 기쁜 이들을 위해 함께 춤을 춰주고 피곤한 이에게 기댈 자리를 주라고.

오늘도 그 녀석들,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시고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그 녀석들을 통해, 그 순간을 통해 또 한 수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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