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재정의 80%를 선교비로 사용하겠다.”선교에 집중함으로 부흥을 이룬 어느 교회의 슬로건이다.
이 말을 들을 때, 마음 속에 감동이 있었다. 교회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재정의 필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외부로 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목회자의 비전에 교인들이 따라 주는 것 또한 대단하다.
재정의 80%를 선교에 사용하는 것도 귀하지만, 성도 80%가 직접 선교에 참여 하면 어떨까?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니라 매 년 한 번 이상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고 공동체는 사람의 모임이다. 재정이 가는 것도 귀하지만, 사람이 가는 것이 더 귀하다. 한 번이라도 참여하는 것이 좋다. 계속해서 참여할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런 생각을 막연히 품고 있던 어느 날, 한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그 모임이 우리 교회 성도 80%가 선교에 참여하는 첫 시발점이 되었다.
한 참석자가 말하기를 “로토루아 시내에서 타우포 방향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돌아 쭉 들어가다 보면 마을이 하나 나오는데 그 곳에도 선교가 필요하다.”
중요한 정보를 듣고 마음으로 동의가 되었다. 가슴도 따뜻해졌다. 이 일은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사명감이 일어났다.
선교는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사도행전 16:9)
언더우드 선교사도 그런 경우다. 그는 인도로 가고자 오랜 시간 준비했다. 당시 인도는 중국과 함께 미국 청년들이 선망하는 1급 선교지였다. 그런 그에게 조선이라는 생소한 나라의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에 감동이 왔지만 그는 마음으로부터 조선을 밀어내었다. 감동이 일 때마다‘나는 인도로 갈 것이다.’라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러나 조선으로 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절절한 음성을 듣고 언더우드 선교사는 조선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선교 사역은 한국 교회 부흥의 기초가 되었다.
선교의 다음 단계는 가는 것이다. 선교에 있어 귀가 중요하고 그 다음은 발이다. 들었으면 가보는 것이다.
2012년 12월, 22명의 선교 대원이 <1차 뉴질랜드 내륙 선교> 라는 이름으로 선교의 첫 길에 올랐다. 이후 선교는 지난 해까지 아홉 번이 진행 되었고 매번 선교 때마다 성도 80% 정도가 참여 하게 되었다.
아무나는 아니지만 모두가 할 수 있다
성도 80% 정도가 선교에 직접 참여하면서“선교는 특수한 사람에게 만이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열려 있는 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이제 막 주님을 믿은 초신자도 간다. 청년도 당연히 간다. 어린이 주일학교 아이도 간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 주도, 직장이 있는 사람도 하루라도 휴가를 내고 참석을 한다. 언어가 잘 되는 청년 그룹은 집회에 쓰인다. 그들의 찬양은 감동이 있고 메시지는 신선하다.
장년부는 섬기는 일에 쓰인다. 운전을 하고 필요한 물건을 배치하고, 예배 후 함께 나눌 음식을 준비하는 손과 발 놀림은 봉사에 최적이다.
어린이 주일 학교 아이들은 길에서 복음 전도에 최상이다. 어린 아이들이 전해주는 전도지와 초청을 거절할 강심장은 어디에도 없다.
하나 됨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다. 영적 싸움을 싸우는 공동체는 하나 됨으로 세상을 이긴다. 성도 80%의 직접 선교 참여는 교회를 하나되게 한다. 교회가 세대와 배경을 넘어 하나가 된다.
합심 기도로 준비한다.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세심하게 인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함께 만난다. 실수는 서로 덮어주고 기쁨은 함께 나눈다.
아직은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성도이기에 실수도 있지만 탓하지 않는다. 사소한 기쁨과 수고에도 함께 즐거워하며 격려한다.
우리는 교회이다
교회도 아닌 곳을 보면서 “교회가 어찌 저럴 수 있느냐?”며 세상은 소란스럽다. 80%가 함께 하는 선교는 “우리가 누구인가?” 를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게 해 주었다. 우리는 교회이다. 그리고 교회는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