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에 눌려 보신적 있으신가요? 가위 눌림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나요? 2011년에 발표된 한 메타분석 자료에 따르면 약 100명 중 8명 정도는 평생 최소한 한번 이런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과학적으로 그 원인과 메커니즘이 이미 잘 밝혀져 있는 이런 경험에 대해서도 이것이 귀신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위 눌림의 실체가 수면 장애의 한 형태인 수면 마비라는 설명을 드리면 놀라워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신체적 질병인가 아니면 정신적 질병인가
건강과 질병의 모든 면에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지만 각 사람에 따라 또 각 질병적 특성에 따라 한 두 가지의 요소가 더 중요하게 혹은 우선 고려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혹은 정신적 요소보다는 신체적 요소를 먼저 따져보고 그것을 치료하는데 집중하곤 합니다.
그러하기에 만약 매우 영적인 문제를 신체적 문제로 이해하거나 또는 매우 정신적인 문제를 신체적인 문제로 이해하고 풀려 할 때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가위 눌림과 같이 매우 신체적인 질환을 영적인 혹은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치료하려 한다면 어려움에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정신적 질환에 관련해서 특히 자주 생깁니다. 교회 안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언젠가부터 정신병은 곧 귀신들림 때문이라는 이해가 교회 안에 팽배해져 왔고(아마도 중세시대 때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 사냥 때부터가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정신적 질병과 영적인 문제의 올바른 분별요구돼
우리 한국 교회 안에서는 아직도 이런 시각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영적 건강을 잃을 수 있는 것처럼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도 영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정신질환이 곧 영적인 문제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신약에 나오는 귀신 들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정신질환 증상을 보인 사례는 무덤 사이에 거했던 거라사인(마 8:28-34, 막 5:1-20, 눅 8:26-39)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귀신들린 사람들 중에는 간질이나 장님 같은 신체적 증상을 나타낸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신체적 증상조차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귀신들림이나, 본인 혹은 부모의 죄와 상관없이 신체적 질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도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질병을 오직 영적인 문제로 귀결시키고, 특히 정신적 질환을 영적인 문제, 그 중에서도 귀신들림의 결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로 인하여 정신질환 발병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여 정신질환이 만성적인 상태로 진행되기도 하며 또 이로 인해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이 질병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정서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교회 내외에서 고립되는 것 또한 보게 됩니다.
이렇듯 거라사인의 사례를 일반화하여 모든 정신질환 증상을 귀신들림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은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영적 세계가 있으며 귀신들림이 있을 수 있고 또 이런 현상이 정신질환 증상을 포함하여 여러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저 또한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이것을 누가, 어떻게,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느냐는 것일 겁니다.
정신질환과 귀신들림은 다르고 오해가 많아
귀신들림과 정신질환의 구분 방법은 이 짧은 글 안에서 자세히 다룰 수 없기에 저는 아주 간단한 잣대 하나만을 제시하려 합니다. 바로 귀신들림은 매우 희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확률적으로 보았을 때 귀신들림이 의심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정신건강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단순 계산을 통해 유추해보건대 제가 지난 10년간 직접 진료하고 치료한 환자가 약 1500-2000명 정도 됩니다. 제가 직접 진료하지는 않았어도 같은 팀에서 관리하였기에 간접적으로 접한 환자의 수까지 포함한다면 아마 이 숫자는 최소한 4000-6000명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귀신들림이 의심 되었던 사례는 딱 한 명이었습니다. 또한 그 동안 출석했던 모든 교회나 기독교 단체들에서 귀신들림을 의심하였던 사례들 중에 단 한번도 정신질환으로 이해될 수 없는 사례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 임상 경험에만 의존한 매우 ‘비과학적’인 수치이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기독교인 정신과 의사들의 경험과 이야기에 비추어 보아도 결론은 마찬가지입니다. 즉 통계적으로만 보아도 많은 교회들 안에서 ‘귀신들림’이라 명명된 사례들의 대부분은 정신질환을 오해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정신질환있다면 정신건강 검진 받는 것이 중요해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정신질환의 증상이 있다면 제일 먼저 정신건강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료와 치료의 전 과정 가운데 영적 건강 또한 회복 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또 말씀으로 위로하며 권면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치료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야고보서 3:14-16)
바라기로는 이제부터는 귀신들림과 악한 영에 대해 생각할 때 ‘정신병’보다는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전인적인 영향들 -시기, 다툼, 거짓, 혼란, 악한 일들 – 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악한 영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신 것은 그것들로 인하여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현대 의학적으로 이해 가능하고 치료가 가능한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단순히 영적인 혹은 귀신들림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묘하고도 아름답게 창조하신 우리의 전인적 건강의 문제로 바라보고 그로 인해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받고 계시는 분들이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더 쉽게, 더 빨리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