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시월에 인생교실 7학년으로 승급하신 꽃 할매가 계신다. 소시 적에는 모 이름깨나 있는 회사에서 회장님 비서를 지냈다. 깔끔한 외모와 의복 코디는 개성미가 물씬 풍긴다. 주변과의 사귐도 친화적이다. 비서출신이라 행정처리도 일품이다. 컴을 다루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타자실력은 기업에서 숙달된 솜씨라서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2남 1녀인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서 분가했다. 주변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처지이다.
그런데 더 부러워할 만한 일은 좋은 일, 궂은 일에는 늘 꽃 할매가 계신다는 것이다. 손자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할아버지, 할머니 초청 날에도 함께 한다. 한인회의 회장 투표장에도 가신다. 한 표의 행사는 내 주권이란다. 한인 출신 MP의 간담회 상석에도 늘 꽃 할매가 자리를 한다. 장애인 돕기 아트 전시회, 노인경로체육대회, 고국 모 인사의 해외동포방문 간담회에도 참석한다. 주말이면 더 분주하다. 자택 주변의 토요 시장도 물론 관리 구역이다. 주일이면 교회출석도 어김없다. 정장에다가 한껏 멋을 더하는 모자를 눌러쓴 꽃 할매의 모습은 영락없는 은퇴한 은막의 스타이다.
여름 해가 처마 밑에 한참 걸린 저녁이다. 영감님과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꽃 할매는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눈길을 주곤 한다. 후식으로 나온 따뜻한 과일 차를 홀짝이던 할매의 입에서 빛 바랜 성탄절에 대한 회고담이 흘러 나온다.
영감, 기억나시우. 경로교실에 배달된 선물상자 말이요. 한국에서야 성탄절이면 늘 선물이 넘쳤어. 가지각색이었지. 과자, 빵, 케이크, 양말, 지갑, 용돈 등등 아~ 글쎄, 언제인가는 예쁜 벙어리 털장갑을 받고는 얼마나 좋았던지. 눈이 펄펄 내리던 날은 어김없이 벙어리 털장갑을 끼고 외출을 했지. 세상인심이 각박해진 것이야. 사람들의 정서가 메마른 것이야. 아니면 살기가 힘들어 진 게야. 세상이야 어떻게 되던지 간에 변함없는 것이 정인데 말이야.
끌끌 혀를 차던 꽃 할매 입가에 살폿한 미소가 번진다. 아니 그 묘한 웃음의 사연은 무얼까. 아마도 행복한 기억이 꽃 할매를 기분 좋게 하나 보다.
고국에서 한때에는 서민경제를 살린다는 캠페인이 있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쉐프를 초청하여 골목 상가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대박집은 추천을 받아서 대박을 칠 수 밖에 없는 신의 한수를 전수한다. 쪽박을 찰 수 밖에 없는 업소를 찾아 나선다. 그들의 망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대한 따끔한 훈수를 놓기도 한다. 생존의 대결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냉엄한 판가름이 매번 내려 진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회생된 업소가 여럿 나왔다는 후일담이다.
맛집을 순례한 어느 평가단의 리포트이다. 그 비결을 이렇게 들려준다. 첫째는 그들 업소만의 오랜 습관을 고수한다. 시류를 따라 가는 트랜드를 무시한다. 흔히들 성공한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시절에 맞게 변해야 산다고 한다. 위생시설도 실내 인테리어도 기술까지도 포함해서 변화하라고 한다. 그러나 맛집의 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다.
구질구질한 실내의 집기들의 위생상태도 엉망이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몰려 온다. 지루하리만치 긴 줄에 한끼의 식도락을 건다.
둘째의 성공 비결은 처음처럼 이다. 어느 회사의 광고카피의 멘트이다. 한결같음이다. 처음처럼의 지속성이다. 길게는 20년, 더 길게는 30년이다. 이 대 삼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한결같음에는 두 손을 든다. 대단하다는 감탄사와 함께 두 손도 올라간다. 어느 분야이던지 성공한 사람이나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성공한 카테고리에 드는 부류는 한결같음이다.
사람의 본능은 미래보다는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좋았던 기억을 쫓아서 현재에 재생하고픈 바램이 갈망의 대상을 찾게 한다. 오랜 직장생활이나 같은 일의 반복은 권태감을 가져온다. 식상을 가져온다. 이런 권태감이나 식상을 슬럼프라고 한다. 세상은 바삐 돌아간다. 변화도 빠르다. 이런 세태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생존전략은 무얼까.
회사라면 변화의 추이를 관망하고 분석한다. 개인이라면 빠르게 대처하는 순발력도 필요할 것이다. 맛의 대가들이 위기극복을 돌파하는 묘수는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킨다. 한결같음을 유지한다. 처음처럼 고집한다. 이러한 철학과 뚝심이 그들로 하여금 성공으로 이끄는 비결이라고 분석한다.
선물의 미학은 나눔이다. 선물의 나눔은 행복의 미로이다. 행복의 열매는 재생산과 창조이다. 성탄은 선물의 미학을 학습하는 센터이다. 연말연시의 각박한 현실은 빈약한 주머니 사정을 탓한다. 이웃을 향한 시선을 냉정한 현실에 고정하게 한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본다. 사랑의 돋보기로 이웃을 살핀다. 탄일종이 땡땡은 꽃 할매 만의 추억은 아니다. 지구촌 곳곳의 형제자매들에게도 땡! 땡!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