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한 울타리 두 친구

“어이구, 저 놈의 염소가 또 휘젓고 다니네.”
눈을 지긋이 감고 꼬박꼬박 졸고 있는 양들을 헤집고 어린 염소가 뿔 달린 머리를 쑤셔댔다. 천방지축 설쳐대는 통에 양들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여야 했다.
“아사셀! 좀 가만히 있지 못해?”
아벨이 소리쳤다. 둘은 친구 사이였다. 아벨이 양 우리에서 태어나던 날, 염소 우리에선 아사셀이 태어났었다.
근데 염소가 왜 양 우리에서 저렇게 뛰어다니고 있는 걸까?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양은 원래 게으른 구석이 있어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운동을 건너뛰기 십상이다. 운동하지 않는 양은 소화불량으로 병들거나 발육이 부진해지기 쉽다. 그걸 욕심꾸러기 장사꾼인 라반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양은 건강해야 했다.
그는 꾀를 내었다. 천방지축 염소 몇 마리를 일부러 양 우리에 넣어두면, 그 놈들이 들쑤셔 양이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해서 집어넣은 염소 중에 제일 극성맞은 놈이 바로 아사셀이었다. 아사셀은 도대체가 제멋대로였다. 양들은 그를 보면 슬슬 피해다녔다. 그러나 그런 아사셀도 친구인 아벨에게만큼은 진심으로 대했다.
“먼지 나잖아. 그만 뛰어다니고 밥이나 같이 먹자.”
밥 먹자는 아벨의 말에 아사셀은 껑충껑충 뛰던 발걸음을‘끽’하고 멈췄다. 때를 맞춰 아벨이 앞발로 마른 풀을 슬며시 밀자 아사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금새 쪼르르 다가와 한 입 가득히 풀을 입에 집어넣었다.
아사셀과 함께 풀을 씹던 아벨이 말을 툭 던졌다. 아벨은 벌써 사춘기가 되었는지, 요즘은 궁금한 게 무척 많아졌다. 특히 어른들이 하지말라고 하는 것은 더욱 더.
“난 바깥 세상에 대해 절반 밖에 몰라. 넌 어때?”
“그게 무슨 말이야?”
뜬금없는 아벨의 절반 타령에 아사셀이 되물었다.
“울타리 안과 밖. 낮엔 울타리 밖에 나갈 수 있지만, 밤만 되면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되잖아. 엄마는 밤 세상을 구경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말라고 신신당부하시지만, 난 그래도 궁금해. 너도 밤엔 나가본 적이 없지?”
그 말에 아사셀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거든. 난 밤에도 나가봤거든.”
“뭐?”
아벨이 무심결에 큰 소리를 터뜨리자 근처에 있는 양들이 모두 쳐다보았다.
“못 믿겠으면 저녁에 날 따라와 봐.”
아사셀은 벌떡 일어서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땅거미가 지더니 이내 저녁이 되었다.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간이 되자 아사셀이 살금살금 아벨에게 다가왔다. 아벨도 기다리고 있던 터여서 금방 따라나섰다.
울타리 문으로 다가서자 문고리에 걸어둔 올가미가 눈에 들어왔다. 아사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올가미를 입으로 밀어올리더니 앞발로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아벨을 먼저 밖으로 내보낸 뒤, 아사셀도 밖으로 나와 문을 도로 닫고 올가미를 다시 걸어놓는다. 척척 해내는 것이 한 두 번 나와본 솜씨가 아니었다. 밖으로 나온 이상, 일단은 울타리를 멀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둘은 밤 공기를 들이키며 시원하게 달렸다.
“너 몇 번이나 나와봤니?”
“몇 번? 하하하. 수를 셀 수 없이. 아마도 거의 매일.”
“그래?”
“아, 이제야 살 것 같군.”
아사셀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유를 만끽하였다. 그런데 거리낌없이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던 아사셀이 갑자기 웬 숲과 맞닥뜨리자 긴장을 하며 멈춰섰다. 그리곤 숲속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왜 그래?”
“몰라. 저 숲이 늘 이상했어. 근데 뭔가 찝찝해서 한 번도 못 들어갔었어.”
“그래? 하지만 우린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돼. 너무 늦었어.”
“아냐. 그동안은 용기가 나지않아서 계속 망설여왔어. 그러나 오늘은 너가 있으니 용기가 나네. 들어갔다가 얼른 나오자. 돌아갈 시간은 아직 충분해.”

아벨은 맘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사셀이 먼저 숲속으로 쑥 들어가는 바람에 엉겁결에 따라 들어갔다. 어쩌면 숲 밖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따라 들어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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