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유대인에게 성탄절은 없다

며칠 전 한국에 첫 눈이 왔다고 한다. 기상관측 사상 두번째로 많은 첫 눈이었다고 하니 적지 않은 불편함을 경험했겠지만,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눈이 그립다. 눈 오는 동영상만 봐도, 이야기만 들어도 아이 처럼 설레이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눈을 뉴질랜드 북섬에 살면서 거의 보지 못하니 아쉽다. 정말 아쉽다.

이스라엘 살면서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눈이었다. 간혹 예루살렘에 눈이 오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 가족이 살던 하이파에는 눈이 전혀 오지 않는다.

11월 부터 이스라엘은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드는데, 나름 추운 날씨임에도 눈이 내리지 않아 계속 내리는 비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 비가 한번 정도는 눈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한번은 눈이 너무 보고 싶어 이스라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가장 높은 산 헐몬산을 찾아 갔다. 겨울의 끝자락, 그늘진 곳에 아직도 녹지 않은 초라한 눈밭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뻐했던지. 누군가 버려놓고 간 비닐 봉지를 주워 아이들과 정신없이 눈 썰매를 탔다. 너무 행복했다.

이스라엘에 사는 동안 내 몸은 여전히 한국 계절의 변화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10월은 여전히 덥지만, 내 몸은 가을을 간절히 기다렸고, 12월되면 눈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눈은 오지 않았다.
뉴질랜드에 와서도 눈내리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더욱이, 이 나라는 한국과 정 반대 계절이라 내 몸의 계절은 더더욱 혼란스럽다.

눈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성탄절이다. 소위‘white Christmas’로 불리는 성탄절을 맞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기쁜 날이 된다. 어른이건 아이건, 가난한 자건 부자건,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 버린 눈이 우리 마음에 알 수 없는 기쁨과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성탄절이 없다
예수님이 태어난 땅 이스라엘에서의 성탄절은 어떨까? 그냥 평일이다. 아무 일도 없다. 그냥 학교가고 그냥 직장을 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성탄절에 들떠 있지만, 정작 이스라엘은 그 기쁨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그냥 평일로, 어찌보면 의도적인 평일로 하루를 보낸다.

유대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예수의 탄생을 그들이 즐거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는 성탄절이 정작 성탄절의 주인이 태어난 그 땅에서는 외면당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대부분의 유대인 교회도 성탄절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 하다. 대신 비슷한 시기에 있는 하누카라는 명절을 소중히 여긴다.

유대인들에게 성탄절이 서구 기독교 전통이라 한다면, 하누카는 유대 전통 명절이기 때문이다. 서구 교회 전통처럼 느껴지는 부활절을 지키기 보다, 비슷한 시기에 있는 유대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하누카 명절이 있다
대부분의 유대명절이 성경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하누카는 생소한 명절이다. 하누카 명절이 성경에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22절에 나오는‘수전절’이 바로 하누카 명절이다.

하누카라는 말은‘봉헌’이란 뜻이며, 셀류시드 왕조 때 안티오커스 4세(Antiochus IV)에 의해 더렵혀진 성전을 재탈환하여 하나님께 바친 날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집집마다 창가에 하누카 촛불을 아름답게 켜 놓는다. 8개로 된 촛대에 하누카 명절이 시작되는 날부터 매일 하나의 초를 켜는 일을 8일 동안 한다.

셀류시드 왕조의 안티오커스 4세는 예루살렘을 공략하고 유대인들을 무차별 살육하였다. 이어 성전의 금, 은, 보물을 약탈하고 유대인의 모든 제사 행위를 금지시켰으며, 안식일과 할례를 금하고, 이 법을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내린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헬라 성전으로 만들고, 제단에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동물로 여겨지는 돼지를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
또한 제우스 동상을 지성소에 세워 유대인들에게 그 동상에 절을 하도록 강요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을 경험했다.

성전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유대민족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일이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 예루살렘에서 약 25km 떨어진 ‘모디인’(Modi’in)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 영웅이 등장한다.

제사장 가문 출신 마따디아(Matthathias)가 로마 신상에 절하는 유대인과 로마 군인을 죽이고 아들들과 함께 산속으로 달아난다. 산속으로 들어간 마따디아와 그의 아들들은 3년간의 전쟁 끝에 결국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게 된다.

이들에 의해 유대 독립국가 하스모니안(Hasmonian) 왕가가 세워지고, 그의 아들들 중에 가장 용맹스럽게 싸웠던 셋째 아들 ‘유다 마카비’(Judah Maccabee)의 이름을 따‘마카비 전쟁’이라 부르게 된다.

하누카 명절에 초를 켜는 이유는 마카비가 성전을 탈환했을 때, 성전 촛대(메노라)에 단 하루 정도 불을 켤 수 있을 만큼의 기름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8일 동안 불이 꺼지지 않고 빛을 내 제사장들이 이 기간 동안 성전을 정결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구해낸 마카비를 메시야로 인식했지만, 마카비의 구원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유대인에게 성탄절은 없다.

또 한 해를 보내며
이제 12월이다.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올해도 거의 다 지나가 버렸지만 아쉬운 마음은 없다.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기에. 그 이상의 기대는 욕심이란 것을 알기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글을 쓰는 동안, 이스라엘을 떠난지 너무 오래 되어 생생한 기억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12회에 걸쳐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서의 시간을 돌아 보게 해 준 크리스천 라이프에 감사하다. 또한,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바라기는 이스라엘의 실생활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12월, 16년을 한국을 떠나 살아도 여전히 내 몸은 한국 시간에 맞춰져 있는듯 한다. 눈이 그립다. 온 세상을 햐얗게 밝힐 흰 눈 덮힌 성탄절이 더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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