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셋째 주 찬송/3장(통2장), 4장(통4장) 성부, 성자, 성령께
오늘은 기독교 최초의 찬송인 하나인‘영광송’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찬송한 기록이 있지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2;14)라는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 찬송들입니다.
‘천사의 찬송’(Angelic Hymn)이라고 하는 이 노래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으로 노래하는 ‘천사의 노래’뒤에 삼위일체에 관한 아리우스 논쟁(Arian Controversy) 후 추가한 “태초에도 그러했음 같이 이제와 영원히 끝없는 세계에 아멘”이 붙은 찬송은 그냥 ‘영광송’이라 합니다.
현재 가톨릭의 미사통상문에서 사용하는 찬송은 ‘대영광송’이라 하고요. 또 ‘대영광송’을 ‘대송영’(Great Doxology)라고도 하고, 짧은 ‘영광송’을 ‘소송영’(Lesser Doxology)라고도 합니다.
2C경에 나온 “하늘 높은 곳에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마음 착한 이에게 평화. 주께 찬양 드립니다. 찬미하나이다. 경배합니다. 영광 드립니다. 주님의 영광을 인하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하나님, 하늘의 왕, 성부의 어린 양,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여, 세상 죄를 지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만 홀로 거룩하시다. 주님만 홀로 구세주, 주님만 홀로 높으시도다. 예수 그리스도. 성삼위 일체께 영광 영원토록 영광. 아멘” 이라는 ‘대영광송’의 가사는 누가 지었는지 모릅니다.
GLORIA PATRI라는 곡명이 3장이나 4장이 꼭 같은데 헷갈리죠? 그런데 3장과 4장의 작곡자는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GLORIA PATRI 옆에 IRREG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불규칙적(irregular)라는 말이죠. 곡명은 같은데 멜로디가 다르니 말입니다.
2장은 1844년 작이고, 4장은 7년 후인 1851년 작입니다. 작곡자 마인케(Charles Christopher Meinke, 1782-1850)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오르가니스트인 올덴부르흐(Oldenburgh)공의 아들로 18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볼티모어(Baltimore)의 성 바울 감독교회에서 봉사한 피아니스트이며 오르가니스트이고, 작곡가입니다.
‘대감사가’(Te Deum), ‘시편송영곡’, ‘찬송가집’(Music for the Church)등을 작곡하여 발간했고, 교향곡도 작곡했습니다. 한때 유럽을 방문했을 때 베토벤도 그의 작품을 보고 극찬을 했다고 하는군요.
3장과 4장은 구조상 리듬이 닮은꼴이죠? 2,4,4,4마디의 불규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2마디 째 “성부성자 성령께”에서 단락감을 가지게 되는데, 2분 쉼표인 이곳에서 충분히 쉬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우리 가사엔 ‘성부 성자 성령’을 한꺼번에 몰아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 영문 가사는“성부께 영광”(Glory be to the Father)하고 난 다음“성자께 영광”(and to the Son), 그리고 “성령께 영광”(and to the Holy Ghost) 하며 따로 따로 찬송하게 되어 있지요.
저 유명한 순교자 폴리캅(Polycap, 69-155)이 화형을 당하면서 불렀다는 ‘영광송’은 정교회 같은 동방교회나 우리 개신교나 가톨릭 등 서방교회에서 모두 공식적인 찬송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배 시작 전이나 마지막에 사용하는 짧은 기도문(Collects)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노래는 시편을 노래한 다음에 후미에 붙여 노래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구도자를 위한 저녁기도’(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K.339)를 보면 매 곡마다 끝에 ‘영광송’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성가대의 찬양곡이나 일부 찬송가에도 보면 끝 절에 ‘영광송’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편에 이어 이 송영을 부르는 교회의 전통이어서, 의식을 중시하는 교회 예배에선 시편교독을 전후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9월 넷째 주 찬송/통합103장, 참 목자 우리 주
우리 찬송가에서 성경구절로 된 찬송 외에 가장 오래된 찬송은 어떤 찬송일까 궁금하시죠? 찬송의 역사는 성경의 역사와 같습니다.
구약성경이 히브리인들의 성경이므로 히브리어로 쓰였잖아요? 구약시대의 찬송이 히브리 찬송이지요.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쓰였기 때문에 찬송 역시 헬라어로 불려 진 것이죠. 이후, 교회의 언어가 라틴어로 바뀌면서 라틴어 찬송이 불려지고, 종교개혁 이후 자국어(自國語)로 부르게 되죠. 그래서 헬라어로 쓰인 이‘참 목자 우리 주’는 가장 오랜 찬송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사자란에 보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c.150-c.220)라고 쓰여 있지요? 알렉산드리아는 BC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인데, 그 때부터 방대한 대도서관이 있고, 플라톤학파, 신플라톤학파, 스토아학파, 에피크로스학파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인 헬라철학의 중심도시입니다.
2C 초 기독교가 들어온 이 후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is) 철학의 중심지가 되지요. ‘헬라신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클레멘트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신학교(Catechetical School, c.190-203)의 교장으로서 그리스의 여러 부문의 학문과 철학, 구약과 신약, 외경, 위경, 영지주의, 이단적인 문서에 있어서도 통달한 매우 박식한 학자였고, 그는 원래 신비주의자였습니다.
크리스천이 된 이후 기독교 진리와 교훈을 헬라철학과 영지주의 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철학의 목적은 선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학은 쓸 데 없는 것이고, 철학이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면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가능하며,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만족할만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볼 때 그의 찬송 시는 헬라 시의 진수와 기독교 신학을 결합시켜보려는 시도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찬송은 서행만 제하곤 모두 헬라시의 운율인 약약강조(anapaest)로 되어 있습니다.
이 찬송은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새 신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그의 저서‘스승’(Paedagogus)의 마지막 부분에 로고스(Logos, 요한복음 1;1)이신‘스승’에게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시를 첨부하였습니다.
이 찬송가는 1846년 미국의 회중교회 덱스터(Henry M. Dexter)목사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되었는데요, 신명기 32장 7절 말씀인 “옛날을 기억하라”는 본문 말씀으로 ‘초대교인들의 뚜렷한 특징 몇 가지’란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 후에 부를 옛 찬송을 찾다가 이 시를 발견하고 영어찬송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곡명 KIRBY BEDON은 “베돈 근처 교회’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버네트(Edward Bunnet, 1834-1923)가 1887년에 작곡해서 같은 해에 회중교회 찬송가(The Congregational Church Hymnal)에 수록하였습니다.
클레멘트의 ‘스승’에서는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 되면 참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실제 생활도 바꾸어야 하는데 먹는 것, 마시는 것, 잠자는 것, 옷 입는 것, 말 하는 것, 소유하는 것, 생각하는 것, 오락 등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비록 여러 차례 번역의 과정을 거친 탓에 원 뜻의 아름다움은 느낄 수 없으나 이 옛 찬송에서 초대 크리스천들의 신앙과 불굴의 용기를 엿볼 수 있어 더욱 가치가 있고, 은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