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태국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태국에서는 처음에 정말 한 달만 있을 예정이었으나 어찌어찌 하다 보니 캄보디아에서처럼 두 달 반을 있게 되었다. 태국은 무엇을 기대해야 할 지 전혀 몰랐던 만큼 생각보다 너무 좋은 곳이었고 또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경험했던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는 내가 특별히 돌봐주거나 조금 더 케어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혼자 하루하루 무엇을 해야 할 지 찾아가는 시간들이 많았다면 태국은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짜여진 시간표로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내가 하면서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이 있다는 안도감이랄까, 어떤 소속감이 조금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이란 참 간사하면서 또한 정말 연약한 존재인 것 같다.

무언가로 나의 가치나 의미를 찾기 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미 가치 있는 존재인데 매일 주어진 일이 없을 때 오히려 더 힘들어 지는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바쁜 현대인의 삶을 살아가다가 이렇게 브레이크(?) 가 걸리는 삶을 살려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태국에 있으면서 힘든 점 중 하나는 캄보디아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이었다. 아이들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온전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가까워지기엔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 꼭 누군가의 탓이 아니라 언어적인 부분도 있고 또한 나이나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인 성향도 있었던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미 친구들이 대학생 나이였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친구들이었기에 같이 교감이 가능했지만 이 아이들은 온전치 못한 친구들도 많아서 돌봄이 많이 필요한 친구들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했지만, 그리고 아이들로 인해 많이 울기도 웃기도 했지만 나의 동역자라 느끼는 사람은 많이 없어서 외로웠던 것 같다.

또한 교회도 한인교회는 두 번 정도 갔었고 본 예배는 항상 아이들과 함께 현지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공동체의 소중함, 그리고 그 간절함이 커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진행되는 긴 예배시간 동안 앉아있는 것은 쉽지 않았고 가끔은 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나 혼자 예배 드리러 간다고 아이들과 간사를 버리고 갈 순 없었기에 결국 끝까지 아이들과 현지 예배를 드렸다.

그래도 감사하게 다른 한국 선교사님들과 밥을 먹으며 교제할 시간이 있었고 거기서 또 뉴질랜드에서 가신 목회자 부부 또한 만나 뵈어 지금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태국에서 함께한 간사가 없었으면 두 달 반은 못 채웠을 것 같다.

선교사님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고 또 여자애들이라 좀 더 세심한 돌봄이 필요해 함께 하게 된 여자 간사가 있었는데 이 간사는 나에게 그리고 내가 의도치 않았지만 나 또한 간사에게 큰 위로가 되었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이 간사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간사는 내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무나 큰 위로로 삼았고 힘이 된다고 했다. 내 능력으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써주신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에 또 한번 놀랐었다. 정말 귀한 인연들 만나게 해주심에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지금도 그 집, 그리고 그 곳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매일의 해프닝 등이 떠오른다. 별건 아니지만 집 앞으로 찾아오던 아이스크림 장수 아저씨도 생각나고, 아이들과 집 가까이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망고를 엄청 사와서 아침마다 먹으며 행복해했던 시간들, 정말 별 것 아닌 것들이었는데 그땐 고민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두 달 반의 여정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떠나면서 나는 사실 여러 가지로 너무 불안했다.‘이젠 정말 뭐 하지?’가 나의 고민이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막상 이젠 돈이 없는 것 같고 용기도 떨어지는 것 같고, 그냥 막연하게 막막했었던 것 같다.

선교지에서는 그냥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지만 이젠 한국에서는 정말 내가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기도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생겼던 것은 아니지만 불안하지만 또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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