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런 초대장을 받았다. 000 귀하, 금번 000 대통령 내외분의 고향 방문에 즈음하여 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아래와 같이 시민간담회를 갖고자 하오니 참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시, 장소, 복장은 정장을 입고 오라는 당부가 있고, 초청자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장이다. 초청장마다 초청자 순서대로 번호가 있는데 이 번호가 한자리이면 그 자리는 틀림없이 로열석이다.
요샛말로 힘 좀 쓰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 그 힘과 재력이 빵빵한 사람일 것이다. 나의 초청장의 번호는 2번이나 3번쯤으로 초청되었다. 이럴 경우에 많은 사람들은 어깨를 으쓱으쓱 하며 흥분해 할 것이다. 그리고 당일 날의 초청은 가문의 영광이라고 난리일 것이다. 후손들에게는 당일의 기념 사진을 가보(家寶)로 남길 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의 1번 좌석 초청을 담박에 거절하고 아예 그런 자리에는 얼굴도 내민 적이 없는 앞 뒤가 꽉 막힌 답답한 꼰대가 있다. 1944년 생으로 만 72세, 남, 이름은 김00 님이다. 1984년 3월에 00고등학교를 설립하여 명문고등학교로 기틀을 세우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91년 9월에 국가에 헌납한다. 당시의 시가로 환산해도 100억원 이상이라고 한다.
명예와 권력과는 아예 거리를 두고 운명을 헤치고 역전시켜서 입지를 개척하고 대성한 인물이다. 지독한 가난 속에 태어난다.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갈 처지도 아니다. 우연히 신문에 자그마하게 난 등록금이 반액인 사립중학교의 학생 모집광고를 보고 입학하여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이다.
할아버지의 친구 한약방에 약국점원으로 들어가서 주경야독 끝에 19살에 전국 최연소 약 종상 시험에 합격한다. 20세 이상만 합격증을 주는 당시의 법에 따라서 1년 후에 합격증을 받고 지방에 약국을 열고는 얼마 후에는 명의로 이름을 떨친다.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재물이 모아지고 수 년 후에는 거부가 된다. 돈이 모이면 정상모리배들이 주변에 모이고 돈푼이나 뜯으려는 돈 파리가 꼬이기 시작한다. 정치권의 회유도 있었고 협박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그는 소신껏 살아간다. 평생 몸에 밴 근검절약은 자동차를 배격한다. 아직도 자동차 면허증이 없다.
자동차 없는 부자. 진짜 웃긴다. 웃다가 보면 이 분의 인격과 돈의 철학에 반하여 존경의 눈물이 난다. 이 멋진 꼰대의 돈에 대한 철학이다.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똑 같다. 주변에 나누어야 꽃이 핀다. 아픈 사람들에게서 번 돈으로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다.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 준다.
지금까지 육영사업, 고전연구사업지원, 지역발전사업, 가정법률사업, 형평운동사업, 자연생명연대사업, 지방문화연구사업,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사업, 소외계층지원사업 등을 지원하며 후세들의 멋진 꼰대로서 보석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플레툰과 7월 4일생을 감독하여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올리버 스톤은 이런 분들을 가리켜‘훌륭 한 영혼을 가진 사람’ 이라 한다. 돈의 철학을 알면서 멋지게 돈을 쓰는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경계한다. 고정관념을 깨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의무감과 부채감이 크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나 삶을 남에게 보이려 하거나 과시하지 않고 그냥 신나게 한다. 남의 갈등이나 불행, 불안을 이용해서 자기가 서지 않는다. 남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산다.
체재 순응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끝없이 개척하는 삶을 산다. 권력에 아부하거나 빌붙지 아니한다. 만남에서 긍정적인 관점을 만들고 나눔의 미학에서 생명의 나눔을 실천한다. 수평선 너머의 구름을 보면서 세상의 기대감을 키우는 분들이다.
꼰대는 호남지방 방언으로 ‘지배자’라는 뜻이다. 기성세대나 선생을 뜻하는 은어이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때에 이를 일컬어서 ‘꼰대질’이라 한다. 잔푼이(잔머리 쓰는 푼수때기)가 판치는 세상이다. 한인공동체에도 검소하고 강직하며 욕심 없는 멋진 꼰대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