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런던’의 특별함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언제 돌아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이 런던에서 쓰는 마지막 런던이야기가 될 것 같다. 다음 글을 쓸 때쯤이면 아마 나는 가족의 품, 뉴질랜드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런던을 떠나기가 싫다. 1년만 계획했던 런던. 그 1년이 아쉬워 남은 비자 기간을 채워 살기로 했고, 2년을 채운 지금도 여전히 나는 아쉽다.

런던은 내게 참 여러모로 특별하다. 처음 발을 디딘 런던은 너무 바쁘다고 생각했고, 차갑다고 생각했다. 딱딱했고, 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살아보면 살아 볼수록 그런 런던이 내게는 참 특별했다. 배울 것이 많았고 실제로도 나는 많은 것을 얻고 돌아간다. 나는 나처럼 2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이 런던이 주는, 런던에서 배우는 이 특별함을 느껴 볼 것을.

당당함과 자신감 기르기
런던에서 가장 크게 배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당당함’과‘자신감’이다. 처음부터 배울 수 있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처음 런던 생활을 시작했을 때엔 되려 자신감이 떨어지고 내가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런던이라는 도시의 크기만큼 사람도 많았고, 그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도 뛰어난 스팩을 자랑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석사는 기본이고, 박사학위를 공부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미국 유명 대학에서 학사로 수학을 전공하고도 런던의 유명한 대학에서 성악으로 석사를 공부하는 친구도 있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을 다니며 현재 런던 구글 본사에 넘어와 인턴을 하는 친구도 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런던의 콘서트 홀에서 주연을 맡아 공연하는 분들도 있고, 런던의 유명한 아트 대학에서 동양인 최초로 수석졸업을 하신 분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주변에 두니 어느 순간‘아, 나는 내세울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에 비했을 때 너무 작아 보였고,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였다. 남들은 다 뛰어나지만 나는 뒤처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이 그랬다.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로가 하는 일을 존중했고, 서로가 하는 일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나 혼자 부끄러워하고, 나 혼자 내가 약해 보이도록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사람들은 나를 칭찬해주었고, 내가 하는 일을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내 자신이 더욱 내가 하는 일을 알아주고 칭찬하게 되었다.

또한 이 당당함과 자신감은 일을 하며 배우게 되었는데, 주로 동료 교사들의 조언에 의해 세워지게 되었다. 뉴질랜드는 모두가 친절하고, 나누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컸던 것 같다. 경쟁이 있는 듯 하나 없는 듯해서 늘 무엇에 쫓기거나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은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이 도시에서 내가 살기 위해선 나를 내세워야 했다. 뉴질랜드에서도 당당함은 중요했지만 런던에선 적응하기 힘든 당당함 이었다. 거의 자만에 가깝고, 자기중심적인 당당함이 필요했다. 나를 얕잡아보지 못하도록 딱딱하게 굴어야 했고, 작은 빈틈이라도 보여선 안 됐다.

실제로 동료들이 본인들이나 학부모를 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게 너무 웃어서도 안되고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되려 상대방이 그 틈을 보고 나를 무시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미와 친절함이 넘치던 뉴질랜드에서 온 나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 나도, 주변 지인들도 너무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완벽히 런던 사람들처럼은 아니어도, 나도 내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갖추게 된 것은 사실이다.

런던의 인간미
사실 내가 항상 얘기하듯 런던은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 같았다. 사람들은 늘 일에 찌들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만 같았고, 너무 바쁘게 사느라 여유 따위는 찾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을 붙이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만의 인생에 집중하는 것 같아서.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그렇게 그냥 생각해 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연말 뉴질랜드에 갔을 때 뉴질랜드만이 가진 여유와 친절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내심 그립기도 했었다. 그런데 사실 일에 치여, 일상생활에 치여 사는데 급급해 보였던 런던 사람들에게도 ‘인간미’가 존재했다.

펍에서 만나는 영국사람들은 더 했다. 음료수 대신 마시는 맥주 한 파인트와, 날 좋은 날 공원에 나와 푸른 잔디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는 사람들. 각자 키우는 반려동물과 나와 산책을 하거나 노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솔직히 얘기해 보자면 때론 측은해 보이기도 했달까. 매일 매일 평일에, 또는 정말 주말에도 마주치는 일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때에 즐기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여름 가뜩이나 후끈 달아오른 지하철에서 서로 눈인사를 한다거나, 아이나 강아지를 보며 귀여워하고 때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내심 이곳에서 ‘인간미’를 느끼곤 한다.

영국과 런던
흔히 내가 쓰는 글에‘런던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혹여 그냥‘영국사람’이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그렇게 표현하느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영국에 와서 보면 영국사람들도 런던은 마치 다른 나라처럼 본다. 브렉시트만 해도 그렇다. 브렉시트가 처음 터졌을 때 수많은 영국사람들이 찬성했다. 유일하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선 런던만이 반대했고, 심지어 브렉시트가 이루어지면 런던이 따로 독립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

런던은 엄청난 다문화를 자랑한다.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인종들이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 사실 처음 영국에 올 때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수많은 차별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나 처음 일을 시작한 학교에서 동양인이 나밖에 없는 것을 보고 당황하기도 했었다(생김새 때문에 무시당하지는 않을까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되려 나를 궁금해 했고, 나의 얘기를 좋아했다. 나를 응원해주고 되려 가족처럼 챙겨주었다. 다른 영국의 도시들엔 차별이 더 많다고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도 맨체스터에서 한국인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다른 도시에 갔을 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이 또한 모두가 그러하다고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런던이 사람들을 대하기에 조금 더 편한 것은 엄연히 사실이다. 그래서 내게 런던은 참 특별하다. 이제는 제 2의 집이라고 얘기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자꾸‘영국’이라고 얘기하기 보단‘런던’이라고 얘기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 당장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아마 뉴질랜드에 돌아가야 겨우 깨닫지 않을까 싶다. 런던은 내게 너무 많은 기회를 준 곳이고, 내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곳이다. 이제는 많은 지인들이 생겼고, 언제든지 돌아와도 기댈 곳이 있는 곳이다. 뉴질랜드로 돌아가면 나는 런던을 너무나도 그리워할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나’에게 열심히 런던을 전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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